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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경인물 연구


성경 : 요1:19-28
말씀 : 세례 요한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본성이 악한 사람도 있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능숙하게 처리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어떤 사람은 겸손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무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바람직한 인간은 능력이 있으면서도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참 어렵습니다.
성경을 통하여도 이런 사람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전에 사울은 겸손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자  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된 사울은 능력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한 선지자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 입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드러운 옷을 입고 일생을 살아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소명의식을 깨달은 순간부터 그는 평생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언제 그가 어머니 엘리사벳에게 임했던 소명을 깨달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젊은날 부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낮에는 따가웁고 건조한 그곳, 밤에는 춥고 바람이 부는 광야에서 그의 전 생애를 살았습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그곳에서 그는 오직 한 사람을 만날 준비를 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입었던 약대털옷과 그가 먹었던 메뚜기와 석청은 인간에게 익숙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이에게 임할 의에 흰옷과 생명의 떡을 위하여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인기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땅에서 그는 가장 인기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헤롯의 딸 살로메가 당시의 영웅을 사모하던 풍습에 따라 선택한 인물이 요한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내 요한이 거절하자 그를 옥에 가두게 하였고 그래도 거절을 당하자 살로메는 요한의 목을 베어 차지하였다고 할 만큼 당시의 가장 선망의 대상이던 청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의 가장 존경받던 선지자였습니다.
그에게는 권능도 있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그의 외침은 많은 이들을 회개의 자리에 서게 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세리들도 군병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겸손하였고 자기의 자리를 지킬 줄 알았습니다.
그는 "나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 일뿐이라고 스스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말씀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단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높은 위치에서 존경받고 있을 때 그는 자기를 가리켜 말하기를 "나는 내 뒤에 오시는 이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를 때 그는 멀리서 홀로 초라하게 걸어오고 있는 한 청년을 가리키며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며 자신의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렸습니다.
그토록 착하던 사울을 증오의 사람으로 만든 말이 단 한마디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을 만만"이란 여인들의 창화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제자들이 와서 이르기를 선생님 당신을 따르던 자들이 모두 저쪽의 청년에게 가나이다 했을 때에도 그는 말하기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한 특이한 그런 존재 자체였던 것은 아닙니다.
헤롯에 의해 사해근처 외로운 동굴에 갇혀 있었을 때 그는 제자들에게 청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이리까?"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끝까지 감당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를 가리켜 이르시기를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처럼 능력 있게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면서도 끝까지 겸손한 주님의 일군들이 됩시다.

 

성경 : 누가복음 5:27-39
제목 : 세리 마태
마태는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알패오의 아들로서 세리였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포주 창녀와 함께 부정한 자로 분류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9:9-11.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당시에 로마는 식민지에서 인두세 토지세 통행세를 받았는데 원활한 징수를 위해서 조세권을 유대의 고관들에게 넘겼고 유대의 고관들은 또 조세 징수원들을 채용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세리들이었다. 이들은 앉아서 통행세를 받던 세리도 있었고 각 집을 돌아다니면서 일하였던 세리도 있었는데 마태는 전자에 해당한다.
세리들은 본래 세금보다 더 거두어 일부는 자신이 갖고 나머지는 고관들에게 넘겼고 고관들 역시 그러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원성이 높았다.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서 나를 쫒으라 하시자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쫒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다 마태와 같이 응답한 것은 아닙니다.
눅9:57-62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마태의 응답이 신비적인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마태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것이고 마태는 그 사실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쫒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부름을 받았다면 이런 믿음으로 응답하시겠습니까?

마태는 자신이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였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눅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소금처럼 할일은 소금처럼 하고 빛처럼 할 일은 빛처럼 하여야 합니다. 마태의 이 행동은 후에 삭개오의 결단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눅5:30-32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주님께서 의인들과는 상대를 안하시고 죄인들과만 상대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실 로마서 3:10의 말씀대로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셨습니다.
다만 의인인줄로 착각하는 죄인과 죄인인줄로 인정하는 의롭게 될 자들이 있을 뿐입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그 사실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데 스스로에게는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동족에게 빚을 지고 산 마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께로 부름을 받고나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이 변화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실로 인해서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렇게 결점이 오히려 주님의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 사실은 많이 있습니다.
우선은 바울이 전도 여행중에 받은 그와같은 핍박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자신이 그와같이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었기 때문입니다.
고후11:24-27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베드로 역시 그의 예수 부인이 끝내는 순교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임명희목사님의 절망과 암흑의 삶의 경험이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준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마태의 펜과 마음을 사용하셔서 마태복음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도 마태는 자신의 겸손과 자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마10:2-4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다른 이에게는 이름 앞에 아무런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은 마태는 자신을 가리킬때는 세리 마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랑되신 주님과 함께 참으로 기뻐한 자였으며,
그는 새포도주를 새가죽부대에 넣고 살아간 자였습니다.

 

성경 : 눅1:1-4
제목 : 전도자 누가
1.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에 누가가 썼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증거는 사도행전의 기록자가 바울과 자신을 가리켜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행16,17,20,21,27,28) 이 우리가 골 4:14, 몬 24, 딤후4:11 에서 누가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사도행전 29장을 씁시다.
2. 누가는 의사였다.
-골 4:14 사랑받는 의원 
-바울이 주께 세 번 기도하였을 때 주님께서 보내준 동역자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동행을 시작하여 마지막 로마의 옥에까지 동행.
-우리 모두 전문가가 됩시다.
3. 누가는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이방인의 구원을 바라시는 예수님을 이해하고 전했던 사람이다.
-눅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눅 17장의 감사할줄 아는 문둥이 그는 사마리아인
-주님의 뜻을 깨닫는 자가 됩시다.
4. 죄인들과 버림받은 친구로서의 예수님을 이해한 사람
-마태(사자-메시야-유대인), 마가(사람-예수의 전기-로마인), 요한(독수리-고매한 사상-전 세계), 누가(송아지-희생양-헬라 그리스도인)
-바리새인시몬의 집에서 눈물과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씻은 여인을 기록(눅7)
-매국노란 오명을 쓴 세리장 삭개오에 대한 기록(눅 19장)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 18장)
-회개하는 강도(눅 23)
-돌아온 탕자(눅15)
-소외된 자들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대합시다.
5. 끝까지 충성한 사람
-딤후 4:11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에게

 

성경 : 마가복음 14:51-52
제목 : 전도자 마가
1. 마가의 첫 번째 등장 그리고 첫 번째 실패
막14:50-52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 가롯 유다가 제사장들의 종들을 데리고 온 것은 마가의 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미 유월절 만찬이 끝나고 겟세마네로 간 것으로 알고 그리로 달려가자 잠자고 있던 마가는 옷도 입지 못하고 홑이불을 걸치고 따라갔다가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의 첫 번째 실패입니다.

2. 저자 마가의 집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집회소였다.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 저는 여러분의 집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복있는 장소로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3. 당시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었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디옥 교회는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보냈습니다. 그 때에 마가가 바나바와 사울을 따라 안디옥으로 왔습니다. 
행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 마가는 주님의 일을 위하여 집과 가족을 떠난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4. 바나바의 생질로서 바울과 바나바의 첫 번째 전도여행에 동행했었다.
그러나 그는 밤빌리아에서 혼자 돌아오고 말았다.
행13: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 마가가 무엇때문에 밤빌리아에서 전도 여행을 멈추고 버가로 가지 않았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단순히 고생이 될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바나바가 다시 마가를 전도 여행에 동행자로 삼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가는 바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조금 주의 깊게 읽어보면 13장 초반까지는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되고 13장의 구브로섬 바보에서부터는 바울과 바나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장 13절에는 바울과 그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마가와도 연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가는 이 전도 여행을 당연히 바나바가 주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때 성령충만의 역사가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바울이 그 모든일을 주관해 나가게 되자 마가는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가의 두 번째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2차 전도 여행 때 이 일은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행15:37-40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 아무튼 마가는 다시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전도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6.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교회에 편지할 때 마가는 바울과 같이 있었다.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 그는 이제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7. 빌레몬서에서는 바울이 마가를 동역자라 이름하고 있다.
몬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 그는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8. 바울의 최후의 편지에서 바울은 마가가 필요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그는 최후의 바울에게 필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9. 마가는 또한 베드로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이라 불렀다.
벧전 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 역할을 하였으며, 즉 마가복음이란 베드로의 설교가 주 자료가 된 가장 생생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다.

마가복음의 기록연대는 베드로의 사후에서 예루살렘 함락전으로 67-70년 사이로 보여진다.
이 당시 마가는 로마에 있었는데 로마는 네로의 박해로 인하여 교회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져 있었을 때이다.
베드로전후서와 함께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으로써 시험과 환란을 감당케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마가는 두 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고,
이방인 전도라는 바울의 선교관에 반대했던 그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성경 : 고전11:1
제목 : 전도자 바울
사도 바울의 4 차례에 걸친 복음 전도여정과 많은 서신서들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위대한 사도 바울'이라 하여 그를 높이며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豫定)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 3:1-13)하며 이 모든 역사하심은 영원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豫定)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의 일생을 살펴보며  그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합니다.

       1. 모태로부터 택정(擇定)함을 입은 사도 바울
혹자들은 대개 예수교를 핍박하던  유대교인인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계기를 인하여 개종하여 복음사역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내 어머니의 태(胎)로부터 나를 택정(擇定)하시고 은혜로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갈 1:15-16)라는 고백을 통하여 이미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豫定)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참고: 갈 1:1)

       2. 사도 바울의 인간적인 배경과 회심
사도 바울은 길리기아의 수도인 다소에서 출생하여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는 베냐민 지파 유대인으로,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음으로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빌 3:5) 그러기에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당할 때에도 증인들의 벗은 옷을 지키고 있었습니다.(행 7:18)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던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행 8:1-2)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하늘로서 빛이  비추자, 사울은 땅에 엎드러지게 되고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라는 주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흘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사울에게 예수님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擇)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9:15-16)라고 하시며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보내어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합니다. 이에 사울은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하며 유대인들을 굴복시킵니다.
이렇게 회심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7-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

       3.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로 파송됨(1차 전도여정) - 구브로와 소아시아전도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서  일 년간 복음을 전파하자, 예수의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고,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이 두사람을 따로 세워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행 11:26,13:3) 이에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마가라 하는 요한을 수종자로 두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곳에서 거짓 선지자 박수를 소경되게 하는 표적을 행하고 주의 도를 증거합니다.  다시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자, 요한(마가)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라고  복음의 진리를 명쾌하게 증거를 합니다.  이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作定)된 자들은 다 믿게 됩니다.(행 13:48) 그러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비방하고  경건한 귀부인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자,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게 됩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자,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여 주셨습니다.(행 14:3) 하지만 믿지 않는 유대인과 관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치려 하자, 루스드라와 더베로 도망가 복음을  전하며,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표적을 행하게 됩니다.  이에 무리가  '신들이 우리의 형상으로 내려왔다'하며 두 사람을 쓰스와 허메로 여겨 제사하고자  할때, 바울은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成情)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  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저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행 14:15-17)라고 하며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합니다.  이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는 수난을 겪은 바울은 다시 일어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안디옥으로 되돌아 오게 됩니다.(행 14:19)

       4. 2차 전도 여정 - 소아시아 재방문과 유럽전도
다시 2차 전도 여정을 떠나려 할때,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마가가  자기들을 떠나 버려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 서게 되어,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게 됩니다.(행 15:37-41) 이 사건 역시 하루 속히 복음을 전파하려는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는 바울에게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에 바울이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가자,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는 환상    을 보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자신들을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는(행 16:6-10), 사도 바울은 서쪽으로 행하여 드로아에서 배타고 마게도냐 반도의 빌립보에 이르러 됩니다. 바울이 강 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자,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있어 주께서 그 마음  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시므로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사도 바울을 자신의 집에 유하게 합니다.(행 16:11-15) 바울은 계속하여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적지 아니한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믿게 됩니다.(행 17:11-12)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우상이 가득함을 보고는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主宰)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22-31)라는 명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곳에서 교회를 세우지는 못하였습니다.   이후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이달리야에서 새로 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되고, 장막 만드는 업이 같아  함께 거하며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말씀을 가르치게 됩니다.  또한 바울은 이 곳에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쓰게 됩니다.

       5. 3차 전도 여정 - 갈라디아지방과 에베소 사역이 중심임-구제금을 걷어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체포당함.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방문하고 난 후에, 에베소에 가서 3 년을 지내며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강론하게 됩니다. 또한 바울은 이 곳에서 고린도 교회에게 보내는 서신을 기록합니다. 점점 주의 말씀이 힘을 더하여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된 후에,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내가 거기 갔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이에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2-24)라는 자신의 결심을 고백합니다.  가이사랴에서도 반대하는  제자들이 바울이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행 21:14)라며 반대를 그치게 됩니다.


       6. 로마 전도 - 전도여행으로 갈 줄 알았는데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됨.
예루살렘에 돌아와서도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였고, 이에 유대인들의 송사로 인하여 가이사랴에 보내져 총독 베릭스 앞에 서게 되었고,  2 년동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어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의 예수님께서 예언하신대로(행  9:15) 총독 베스도와 헤롯 아그립바왕 2세와  버니게 앞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고는 자신이 '로마 사람'임을 밝히고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를 하게 됩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라는 크신 위로를 하여 주십니다.(행 23:11) 하지만 악의에 찬 유대인 40 명이 매복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천부장은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여 총독 벨릭스에게 무사히 보내며,  '유대인의 송사는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라는 솔직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행 23:12-29) 이윽고 사도 바울은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의 손에 맏겨져 배 타고 이달리야로 행선하게 됩니다.(행 27:1) 바울이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예언하지만,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항해하다가, 그레데 해변  가까이에서 '유라굴로'라 하는 광풍을  사흘 동안 만나 배의 기구를 다 버리게 됩니다.  광풍이 그대로 있어 절망하는 뱃사람들에게 바울은 밤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라는 위로로써 안심시켜 줍니다.  14일 후에 바울은 같이 배를 탄 사람들에게 '배만 상하고 생    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을 것'으로 위로하고 축사하고 떡을 나누어준 후에, 멜리데 경사 해안에 276 명이 무사히 상륙을 하게 됩니다. 그곳 토인들이 불을 피워 동정하던  차에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으나  조금도 상함이 없자, 신으로 여깁니다.  또한 바울은 보브리오의 부친의 열병을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는 표적을 행합니다. 바로 이 두 사건은 마가복음  16:18절의 예수님의 예언(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얻은즉 나으리라)이 그대로 성취되는 놀라운 사건인 것입니다.     드디어 로마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가이사의 송사를 기다리며, 하숙 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증거를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흩어질 때에, '그런즉 하나님이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라는 증거를 합니다.(행 28:23-28) 사도 바울은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를 금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행 28:30-31)  로마 감옥에서 바울은 빌립보서와 빌레몬서와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옥중서신을 기록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안에서도 그는 말하기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하였고, 갇힌몸이면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고 고백하였습니다.

       7. 그의 마지막
(딤후 4:6) 관제(灌祭)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期約)이 가까왔도다 
(딤후 4:7) 내가 선(善)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後)로는 나를 위(爲)하여 의(義)의 면류관(冕旒冠)이 예비(豫備)되었으므로 주(主) 곧 의(義)로우신 재판장(裁判長)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主)의 나타나심을 사모(思慕)하는 모든 자(者)에게니라 

베드로 대 성당은 크고 웅장하지만 바울 성당은 작고 아담합니다. 특히 진입로가 플라타나스 나무가 양쪽으로 500메타 정도 나 있는 아주 아름다운곳입니다.  그 성당 터에서 바울이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돌기둥에서 도끼로 목베임을 당했고 그 목이 세 번을 튀었는데 그 곳이 모두 분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 주님께서 바울을 택하셨을까?

1. 탈것이 있는 나무 
-가말리엘 문화, 율법적 열심, 
2. 영적인 겸손의 조건들
- 생전에 주님을 뵙지를 못함
- 육체의 가시
-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경험 - 자신의 핍박을 이겨낼 수 있는 근거가 됨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3.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냄
-바나바와 안디옥 교회를 섬겨 그리스도인이라하는 칭함을 받음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합당한 결론에 이르게함
  ; 우상의 더러운것, 피를 먹지 말 것, 목매어 죽인 것, 음란
-마가와 화해하고 그를 데려 옴
  ; 딤후4:11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누가와 끝까지 합력함
4. 온전한 일군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성경 : 행16:1-5
제목 : 동역자 디모데
1.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루스드라에서 자랐다(행16:1, 20:4). 
; 행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2. 더베와 루스드라에서의 1차 전도여행 때 바울 일행을 보았을 것임

3. 그는 어려서부터 유대인의 신앙안에서 자랐으며 성서를 배웠다. 
; 전통있는 믿음 -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 성경을 어려서부터 배움 -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예화) 자녀들의 잘못을 잠언의 말씀을 통하여 꾸짖고 격려하였던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4. 바울의 제자가 되어 그의 제일 사랑하는 제자로서 제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바울을 따르기 시작하였다(행16:1-3). 

5. 그는 긍정적인 믿음의 소유자였다.
; 고후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6. 그는 연단받은 일군이었다.
; 빌2;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7.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과 같이 여겼으며 또한 그는 인정받는 자였다. 그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하여 마게도냐(행19:22), 고린도(16:10), 에베소(딤전1:3)등지에 바울의  파송을 받아 가기도 하였다. 
; (고전 4:17)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
(딤후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8. 디모데에 관한 걱정은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그의 연소함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건강이었다.
; 딤전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 딤전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9. 바울이 첫 번째 죄수로 로마에 있을 때 그는 함께  있었다.
; 몬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10.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었다. 
;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예화) 당신의 믿음이 년조로 보아 장성한 지경에 이르렀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믿음의 자녀가 있습니까?

11. 디모데는 바울의 동역자였다.
; (롬 16: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행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성경 : 요한복음 20:24-29
제목 : 도마

의심을 통하여 확신에 이른 믿음의 사람
도마라는 이름은 쌍둥이라는 뜻인데 그의 부모나 어린시절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도마에 관한 첫 번째 기록은 나사로의 사건과 함께 나옵니다.
요11장에 보면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이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나사로는 베다니에서 두 동생 마리아와 마르다와 함께 살던 자로 예수님께서 몹시 사랑하시던 자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요단강 동편으로 피신을 가 계셨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이 도에 지나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또 이 일을 통하여 제자들이 믿음을 갖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고난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결코 알수가 없습니다.
마치 슈퍼컴퓨터의 계산 과정을 산수를 겨우 알기 시작한 초등학생이 알려고 하는 것과 감히 비교한다면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잃은 곳에서 다시 찾으려 하고 심은 곳에서 거두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정식은 아주 복잡하고 그 차원이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우리가 알수가 없습니다. 다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유명한 교부 철학자는 우리는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하여 믿는 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나사로에게 가시려고 하자 제자들이 적극 만류하였습니다.
얼마전에 돌로 치려하던 자들이 있었던 그 곳으로 간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이때 도마가 나타나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였는데 이 말은 여러 의미로 들리기는 하나 그래도 도마의 결단과 용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을 때 이 때도 도마가 나타나서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알겠삽나이까? 물었습니다.
도마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하는 자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수 있는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8장으로 가면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그래도 베드로는 칼을 빼어 항거를 하였지만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한 도마를 포함한 다른 제자들은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4절에 보면 안식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그 자리조차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홀로 불신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할수만 있으면 믿는 자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의 사람으로 있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격려를 받으며 그렇게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에 믿는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8일이 지난후에 그 때에는 도마도 함께 있었는데 그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가 대답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도마에 의해 처음으로 나온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셨습니다.
도마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복된 믿음인지도 알게 해 주셨습니다.

후에 요한은 디베랴 바다에 서 있는 제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시몬 베드로 다음에 도마를 기록함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그후 도마는 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소중한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는 도마복음을 남겼으며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도마는 회의를 통하여 온전한 믿음에 이른 자입니다.
도마를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믿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 : 사도행전 11:19-26
제목 : 바나바
하나님의 은혜로 성숙한 사람은 어떤 대인관계를 보여 주는가?
그는 구브로에 살던 레위인이었으며,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행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들이 그를 권위자라고 불렀는데 이는 son of encouragement라는 뜻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때 교회를 박해하던 다소의 청년 사울이 회심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가 알만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회심을 믿으려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행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그러자 사울을 찾아간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믿어주었습니다.
행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다른 사람을 믿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 임했던 박해로 말미암아 흩어져 수리아 안디옥까지 갔던 성도들은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행11: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예루살렘 교회는 누구를 보낼까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중에 바나바가 적임자로 생각이 되어 그를 보낸 것이지요.
바나바는 보냄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가서 다음과 같이 사역을 하였습니다.
행11: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아마도 그의 구브로라고 하는 이방 지역에서 살았던 믿음의 체험에서 나온 권면이었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그는 안디옥에서 큰 사역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한계랄까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자 그는 주저없이 다소로 사울을 찾아 갔습니다.
행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그리고 그와 합력하여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모인 무리를 그리스도인 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행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곤란한 소식을 듣자 각 지역에서 모금을 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 예루살렘에 전달을 하였습니다.
행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유명한데 그들 스스로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교회였는데 어느 정도 서게 되자 그들은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이 때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가 바나바와 사울이었습니다.
행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바나바와 바울은 1차 전도 여행을 하고 나서 예루살렘 공의회에 가서 이방인들에 임한 구원과 그 은혜를 역설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인의 구원을 인정하였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벗겨 주었는데 그 결정을 또한 바나바와 바울을 통하여 전달하였습니다.
행15: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2차 전도여행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로 인한 의견차가 생겨나 갈라서게 됩니다.
이 일에서 바나바는 마가를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바울을 비난하거나 그의 길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는 바울이 앞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을때는 바나바와 바울이었지만 사역이 시작되자 성령이 바울에게 강하게 역사하셨고 그로말미암아 바나바는 바울이 주도하는 사역을 하였지만 한번도 바울의 사역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냈다.
2차 전도여행에서 구브로로 출발한 것을 끝으로 바나바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고 있지 않은데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것 처럼 바나바는 비록 그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착한 사람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관용의 사람으로 권위자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성경 : 요한복음13:21-30
제목 : 가롯 유다
유다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이었던 것과는 달리 유대 예루살렘 남쪽의 작은 마을 출신이었습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그는 도시 사람이요 그러므로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지 그는 예수 전도단의 회계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찌보면 예수님께서 나름대로 인정한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가 된 것입니다.
유다의 배신을 어떤 분은 위로로 삼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배신을 당하셨다는 혹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제자들 가운데도 그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당한 배신 혹은 나의 실패에 대하여 좀 면죄부를 주자는 그런 의미인 모양입니다.
또 어떤 분은 배신자 유다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다고 하면서 유다의 배신에 필연성을 두려고 합니다. 예정이 아니냐 하는 것인데요 그것은 예정을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십자가의 길이 가롯 유다를 통하여서 라는 것은 아닙니다. 유다가 그런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정론과 운명론은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유다를 가리켜 저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하셨지 않습니까?

본문을 따라서 유다의 배신을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잡수시기를 그렇게 원하셨는데 이는 성찬의 은혜와 은사를 주시기 위함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통하여 제정해 주신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은혜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만찬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일이 있습니다.
발을 씻기는 것은 물론 종들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결례를 행하는 일로 율법적으로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중에 아무도 그 일을 자원하는 자들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직접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머쑥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해야되는 일인데 주님께서 하시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베드로는 자기 발은 안된다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만일 그렇게 된다면 너와 나는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하시자 자기의 발을 내어 놓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가롯 유다의 발도 씻겨 주셨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마음 그리고 발을 씻김을 받는 가롯 유다의 마음은 도대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이와 같은 비슷한 설정이 시저의 암살사건에도 있었습니다.
어떤 연구에 의할 것 같으면 시저는 자기가 암살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로원으로 가면서 경호원도 데리고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기를 배신할 배신자들중에 브루투스가 있을것은 생각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브루투스 너 까지도... 였다고 합니다. 시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자가 자신을 배반할 줄 모르고 그 일을 당하였지만 주님께서는 그 일을 이미 아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 말씀에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삼하15장에 나오는 다윗과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관계속에서 이어지는 배신의 일에 관한 시편41편 9절의 발뒤꿈치를 들었다는 말은 짐승이 뒷발질을 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주인을 배신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가롯 유다에게 사인을 보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다! 돌이켜라! 지금이라도 돌이켜라! 그런 주님의 묵언의 말씀입니다.
그래도 유다가 침묵을 하고 있자 주님께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셨습니다.
이 때 유다의 마음이 얼마나 뜨끔하였을 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당혹스러웠고 궁금하였습니다.
참다못한 베드로가 직접은 물어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품에 있던 요한에게 말씀하신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물어보라고 머릿짓을 하였습니다.
요한이 주여 누구오니이까?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은 요한만 들을 수 있게 하신 말씀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시고는 곧 한 조각을 찍으셔서 가롯 곧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셨습니다.
이 때도 유다는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그래도 유다는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조각을 받고 곧 아무 말도 없이 나갔습니다. 
나가니 밤이었다고 기록한 요한은 알았습니다. 빛 되신 주님을 떠나는 자는 결국 어두움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그 상황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고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다는 의심받을 사람이 아니었었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유다를 주님을 배신하는 자로 만들었을 까요?
요12장의 말씀을 보면 돈이 원인인것 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요12:3-6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돈이었습니다. 돈과 돈에서 파생되는 일들이 그의 믿음을 병들게 하였던 것입니다.
유다가 배신의 댓가로 받은 것은 은 30세겔이었는데 은 한 세겔은 노동자의 4일치 품값입니다. 30*4*100,000 = 12,000,000 정도 되는 돈입니다.
때문에 교회 일을 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가롯 유다와 같이 교회 돈에 손을 댈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서로 믿고 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교회 공금을 손을 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잘 발각이 되지도 않습니다. 물론 많은 액수는 아니지요. 그러나 그것이 사단에게 빌미가 되어 망하게 됩니다.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가 돈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하셨는데 여기서 마귀가 유다에게 넣어준 생각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가서 이룬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일에 대한 성경의 가장 언급은 오병이어의 사건직후에 나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오병이어의 사건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6: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그렇다면 적어도 오병이어의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그 무엇이 유다로 하여금 예수를 파는 자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 삼으려 하였다는 것이요 예수님은 그것을 극히 경계하셔서 피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다름 아닌 유다의 마음속에 누구보다도 그 생각이 강렬하게 자리잡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군중들처럼 이 땅의 메시야로 바랬던 것입니다. 바랬다기 보다는 그렇게 믿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 자신이 누리게 될 영화를 꿈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 더 가롯 유다를 긍정적으로 다룬다면 그는 유대인 모두가 그와 같은 영광을 누리는 꿈을 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반되게 십자가를 말씀하시고 무력하게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겠지요 그래서 특별한 상황을 연출하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면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키셨던 그 주님의 능력이 적들을 향해서 발휘되리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의 무리들을 이끌고 온 것입니다.
그래야 이제까지의 고생을 만회할 수 있는 자리가 자기에게 주어질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력하게 잡혀가셨고 또 재판을 받으시고 사형판결을 받으셨고 그렇게 처형될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계속 무력한 모습만을 보이고 계신 것입니다.
유다에게는 모든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그에게 얼마의 돈은 사실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27:3-5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주님을 따르던 제자중에 가장 엘리트였을 그였지만 주님의 말씀을 가장 이해하지 못한 제자가 또한 그였습니다.
그는 후회는 하였지만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서 그는 배신자 유다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게 되었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 십자가의 길을 잘못알고 따라왔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은 하늘의 신령한 것을 팔아 이 세상의 것들을 사서 먹고 사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주님을 팔아먹고 배신하는 자들이 됩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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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성경인물 연구
  • 2006-04-21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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