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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임마누엘!

  • 성경말씀 : 마태복음1:18-25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12-12




2021년 12월 12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태복음1:18-25
제목 : 임마누엘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소개하는 본문 마태복음1:16에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하였습니다.
요셉을 소개함에 있어 마리아의 남편이라 하였고,
요셉이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를 낳은 것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나시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18절에 설명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하였습니다.

누가는 이때의 일을 누가복음1:26-45에 더욱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의 대답은 솔직하면서도 공손하였습니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기꺼이 순종할 것을 고백하자 천사가 떠나갔습니다.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하나님이 말씀대로 거기에 엘리사벳이 있었고 그의 입을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이 과정에서 요셉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침묵의 순종을 이루어가고 있었습니다.
19절에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서 성탄 연극을 하면 요셉 역에는 대사가 없었습니다. 성탄 사건에 늘 그의 자리가 있었음에도 그는 침묵하며 성탄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던 인물입니다.
동승교회가 해마다 하고 있는 ‘빈방 있습니까?’ 제목의 성탄 연극에서는 유일하게 요셉의 대사가 나오는데 그 말이 베들레헴 한 여관 앞에서 ‘빈방 있습니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는 요셉의 모습은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 지나치지 않다 여겨집니다.
아마도 요셉을 따랐을 것으로 여겨지는 한 수도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마을에 홀로 사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이 임신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상대가 누구냐고 심하게 모욕적으로 추궁을 계속했습니다.
어떤 연고인지 여인은 상대를 말하지 않으며 그 괴롭힘을 견디고 있다고 결국은 그가 수도사라고 하였습니다.
여인이 말한 수도사는 그 마음에서 신망을 얻고 있던 이였습니다. 일이 이리되자 온갖 비난이 이젠 수도사에게 향하였습니다.
수도사는 자신의 거처를 여인의 집으로 옮기고 그 여인을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럴수록 마을의 비난은 확신을 더하여 수도사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까지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를 지나자 수도자는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제서야 여인은 마을 앞에 자초지종을 고했다고 합니다. 너무도 견디기 어려워서 수도자님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고민하고 있던 요셉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고 의의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였습니다.
요셉은 이 일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는 것으로 마치려 한 것인데 주의 사자는 마리아를 네 아내로 데려 오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 왔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는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였습니다.
온전한 순종을 행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빌립보서2:5-8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을 미리 보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마태는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은즉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첫째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즉 메시야의 탄생의 의미에서 죄사함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바랬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탄 사건을 회복시킬 이 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한 나라나 민족의 흥망성쇠를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닙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13-14에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부분적이고 제한적이지만 흑암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 흑암의 권세는 사단 마귀의 권세이며 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범하게 한 원인이며, 가인이 돌을 들어 동생 아벨을 치게 한 이유였습니다. 몇 일 전 미얀마에서는 일단의 군인들이 한 마을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체포한 이들을 집단으로 폭행하여 거의 죽음 직전에 놓이게 하였고 나중에는 산채로 불태워 학살하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14살 아래의 아이들도 몇 있었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도망할 수 없었던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흑암의 권세가 만들어 낸 일들입니다. 흑암의 권세는 결국 우리를 죄짓게 만들고 그리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 처하게 합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시기 질투하게 만들고 분열하게 만들며 두렵게 만들어 죄의 종노릇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영원한 파멸로 지옥으로 빠트리려 하는 이들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이 흑암의 권세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폐하시고 생명의 성령의 법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속량이며 죄사함입니다.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임은 함께의 뜻이며, 마누는 우리와의 뜻이고, 엘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으로 주전 8세기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가 연합하여 유다를 침략해 왔을 때 유다왕 아하스는 막아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7:2.  어떤 사람이 다윗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그들에게 보내시어 그들의 뜻은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하스는 불신 가운데 두려워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징조라도 보여줄 터이니 구하라 하셨지만 아하스 자신의 불신을 감추면서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노라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않겠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네가 백성들을 괴롭히더니 이제는 하나님을 괴롭히느냐 하며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징조를 주실 것이라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처녀를 통한 한 아이을 탄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구원이 임할 증거로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사야7:14에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한 것입니다.
이사야 본문은 이 아이가 태어날 것임과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며, 그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 즉 열두 살이 되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하셨고 역사는 앗수르에 의해 그리 되었습니다.
마태는 유다왕 아하스 때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된 말씀의 성취를 바라보며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으로 실현되고 그 당시 남유다에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세상에 이루어질 것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셋째 말씀대로 임마누엘로 성탄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풍랑 이는 갈릴리의 바다에서 제자들을 찾아와 주셔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고, 벳새다 들녘에서 주린 이들과 함께 하셨고, 사마리아의 나환자들과도 함께 해 주셨고 세리와 죄인들과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무덤 속의 나사로와도 함께 해 주셨으며, 십자가에서 두 강도와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부활승천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하셨으니 천국에 가는 그 길에도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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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마누엘!
  • 2021-12-15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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