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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겟세마네 기도

  • 성경말씀 : 누가복음 22:39-46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4-03

 

2022년 4월 3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누가복음22:39-46

제목 : 겟세마네의 기도

 

1805년 독일의 프로이센에서 태어나  1898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한 뮬러는 10세가 되기도 전에 부모님의 돈을 상습적으로 훔치는 탕자가 되었습니다. 19세가 될 때까지 거짓말과 술을 통해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형무소에 갇히기도 하고, 두 차례 무서운 질병을 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기도 모임을 통해서 그의 삶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서를 통해서 용서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고, 그 이후로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선교 저널을 읽는 가운데 고아들에 대한 선교를 생각하게 되었고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애슐리에서 고아원을 세워 2천명이 넘는 고아들을 기도로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는 시편 68:5의 말씀을 통해서 66년 동안 고아들을 양육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2천 명이 넘는 고아들에게 하루 세 끼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생애를 통해서 5만 번 이상 기도의 응답을 받았으며, 그 일을 통해서 15만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 시간 기도한 후에 네 시간 일하는 것이 기도 없이 다섯 시간을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였고, 기도한 후에 응답을 기대한다는 것은 곧 그의 믿음이 살아 있다는 표현이며 증거이다 하였습니다.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는 바른 동기로부터 시작되는 기도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시간이나 형식보다 그 동기를 눈여겨보십니다.

그의 모든 기도의 동기는 하나님 중심이며,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나타내고 높이기 위한 데서 나왔다 하였습니다.

뮬러는 응답 받는 기도의 조건 둘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는, 알고 있는 모든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 마음에 죄악을 품고 하는 기도는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우리의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욕을 위하여 쓰려고 하나님의 선물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록하며 기도하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럼으로 기도의 결과를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다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기도 응답에 대한 숫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의 송구영신 예배 때 감사의 기도와 소원의 기도에 대한 간증들도 그와 같습니다. 

뮬러의 기도 특징 중에 중요한 요소는 바로 기도와 더불어 "응답의 기대"를 계속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뮬러는 응답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을 무시하는 것과 같음을 인지했습니다. 응답에 대한 기대가 죽어버린 기도만큼 무기력한 기도는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생명력이 없는 기도일 뿐이다 하였습니다.

 

성경은 기도의 책이라 할 만큼 많은 기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와 아론과 훌이 르비딤 산 정상에 올라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장면은 역사를 통해 계시하신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120여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흘 동안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있던 중에 성령님이 강림하셨고 성령충만을 받은 그들이 나가서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며 또한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의 기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제 날이 밝으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그 저녁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만찬을 나누셨던 예수님과 제자들은 양문을 통하여 2km 길을 걸어서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종려주일의 길을 반대로 걸으셨습니다.

감람산은 해발 815m이며 성전산이라 불리는 예루살렘은 해발 750m 정도 되는 위치입니다.

감람산 겟세마네는 중턱에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도 올려다 보셨을 것이고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골고다 언덕도 바라다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날이 밝으면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도 심하셨기 때문에

마26:38에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라고 까지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지만 그들은 모두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밤에 겟세마네의 기도를 승리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감당하실 수 있었고 끝내 사명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는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39절에 보면 습관을 따라 하신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기도와 관련한 말씀들이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1:35에는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하신 말씀도 있고,

눅6:12-13에는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요17:20에는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하시는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도 늘 기도가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기도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낙타무릎의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낙타가 무릎을 꿇고 앉느라 생긴 굳은살을 말하는데 늘 기도함을 통하여 생기는 기도의 흔적을 일컫는 말씀입니다. 

습관은 오랜 반복의 결과입니다. 한 번에 한 순간에 습관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습관은 만들어지기가 어렵고 반면에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반면에 나쁜 습관은 몇 번을 통해서도 만들어지며 한 번 잘못된 습관은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기도할 수 있지만 기도의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습관을 따라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44절에 보면 힘쓰고 애써하신 기도였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하셨습니다.

겟세마네라는 말은 틀이라는 뜻의 게트와 기름이라는 뜻의 쉐멘이 합쳐진 말로서 기름틀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은 감람기름을 짜던 곳이었을 것입니다. 감람 열매를 기름틀에 넣고 압력을 가하면 열매가 으깨어지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기름만이 나오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의 몸이 감람열매와 같이 으깨어지시면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와 비슷한 것이 걱정 근심, 바램과 욕심입니다. 그저 막연히 그리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 그런 마음을 갖고 산다고 그것이 기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힘쓰고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기도를 거룩한 노동이라 하였습니다. 아무 힘도 들지 않게 노동을 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없을 것입니다.

하기 싫더라도 하는 것이고, 땀이 나도록 하는 것이며, 견디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는 것이 기도이며,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더하게 해 주시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렇게 기도하시는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 

 

셋째는 42절에 보면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신 기도였습니다.

만일에 기도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별것이 아닐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무엇이 이루어져야 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로마신화에는 디오니소스 신으로부터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던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을 구했던 프리지아의 왕 마이더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만지는 것마다 금이 되자 그는 매우 기뻐했으나, 음식이 모두 금으로 변해서 먹을 수 없었고, 자신의 딸마저 금이 되고 나서야 자신이 구해서 얻게 된 것이 축복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도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제가 어떤 일이 있어도 순종 하겠습니다 하는 서원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내가 하나님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겠사오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은 한 가지 였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셨던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다른 것이었을까요?

결코 그러하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하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기도가 뜻하시는 바는 무엇일까요?

알고는 있으나 행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몸부림이요 고통입니다.

우리도 표현하기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하며 기도하지만 사실은 몰라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알고는 있지만 그 사실을 대면하기가 두려워서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감당하기가 두렵고 힘이 들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같은 말을 수 없이 반복하시면서 두려움과 싸우고 또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기도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현실이 되어 다가 왔을 때 마가나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하지 않으셨고, 베드로처럼 부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가야바의 재판에서도 빌라도의 심문에서도 오히려 진리를 가르치시는 자가 될 수 있으셨고,

십자가에서까지 자신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용서를 비는 기도를 할 수 있으셨습니다. 육신의 고통을 다 감당하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며 이 땅에서 마지막 가셔야 할 지점까지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의 사명을 지켜내셨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마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가장 크게 무겁게 들리는 때를 우리가 지내고 있습니다.

하여, 우리도 내일 새벽부터 두 주간동안 기도회를 갖고자 합니다.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할 때마다 왜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가벼울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기도를 위한 기도이어서, 우리의 삶과 사명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겨서, 마귀의 속임에 속아서, 기도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으로 여겨 그리하게 되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기도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승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번 새벽기도를 통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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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겟세마네 기도
  • 2022-04-05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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