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주일오전 1부 예배

 

순종과 성령

  • 성경말씀 : 사도행전 5:32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6-12

 

2022년 6월 12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도행전5:32

제목 : 순종과 성령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시자 제자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숨어 있던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온 이들에게 다가가 각 지역의 언어들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신 말씀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성령님 임하심의 가장 큰 목적은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유무상통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던 초대교회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던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리되자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제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은혜의 역사가 있는 곳에 사단의 역사도 있습니다. 이 일은 마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이 존재합니다.

제자들은 능욕을 받으면서도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변론을 하였습니다.

행5: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요약하면 복음의 핵심인 예수가 그리스도란 것에 대하여 우리가 증인이요

또한 성령도 증인이시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 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순종과 성령입니다.

순종이 먼저 일까요? 성령의 임하심이 먼저 일까요?

필요한 질문인가 하는 의문이 있기는 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대답을 찾아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믿는 자에게 만이 효력이 있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욜2:28-29에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하신 말씀대로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고 그와 같은 은혜가 주워졌지만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령의 임하심이 먼저이지만 각 사람의 삶에 성령님이 나타나심은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순절 성령강림10일 기도회를 열심히 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이 없는 삶을 여전히 산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을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인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신유와 예언과 능력과 영분별함과 방언과 통역도 그러하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도 맛보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도,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도 그러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에 난감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셨지만 우리의 실상은 잠시만이라도 기뻤으면 좋겠는 것이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지만 하루에 한 번 이라도 제대로 기도하는지 살펴볼 일이고,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지만 우리는 안 좋은 일은 고사하고 좋은 일에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든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며 오히려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자주 기뻐하십시오, 기도하며 사십시오, 감사를 잊지 마십시오’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에 과천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그 음식점 입구 벽에 이 말씀을 큰 글씨로 붙여 놓은 것을 보면서 참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다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어려운 말씀을 어찌하여 이제 믿기 시작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였을까요?

바울의 생각에 초신자인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어떻게 이 말씀들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일까요?

바울 사도께서 좀 무리한 표현을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말씀들을 원어로 살펴보면,

‘판토테 카이레테, 아디아레이프토스 프로슈케스테, 엔 판티 유카리스테이테’는 모두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사의 끝부분이 테로 끝나면 헬라어에서는 명령형입니다.   

명령은 상황을 넘어서서 순종을 요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편에 따라 순종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자신의 삶에서 이와 같은 체험이 있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와 같은 말씀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가능한 듯 보이지만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순종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며 권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주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쓰신 듯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 지금 여기에서 순종하는 것이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지금 여기에서 순종하는 것이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지금 여기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성령님의 역사와 비밀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고린도전서4:9-13에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들이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그리하고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슬프고, 기도가 안 되고, 원망이 된다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울과 복음 전도자들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 하였을 때에 그 안에서 역사하셨던 성령님의 은사와 열매들 그리고 인도하심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곳은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 즉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주 활동무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교회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상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주 같은 일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 같고 신앙생활의 활력을 잃어갑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 뭐 없나하며 억지로 이런저런 일들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즐거움을 채우기 위한 일들입니다.

오래된 표현을 빌면 교회가 구조선이어야 하는데 점차 유람선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벗어나면 세상의 법,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예배드리고, 믿음의 다음 세대들을 교육하는 일을 주로 해야 하며,

교회 밖에서 주님의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고전적으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은혜를 받아 그 은혜를 세상에 전달한다 하는 생각 혹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교회 와서 위로를 받는다는 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일견 그것이 합당한 듯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말씀에의 순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곳은 교회 밖 세상이며 그러하기 때문에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도 그곳이며, 말씀에 따른 은혜와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도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교회는 성령님을 통하여 세상에서 받은 은혜와 축복에 대해 감사하며 간증하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에 가서 간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교회와서 간증함으로 교인들을 격려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세상은 수시로 변하고 세상은 땅끝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곳이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날마다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셨던 것이 아니라 성전 밖에서 그리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기도회와 주일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한 번 기억하며 감사하고 찬양하였으니,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 세상으로 나갈 때 성령 하나님의 은사와 열매와 인도하심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 드립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1
  •  순종과 성령
  • 2022-06-14
  • 방영철 담임목사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