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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야살의 책

  • 성경말씀 : 사무엘하 1:17-27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6-19

 

2022년 6월 19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무엘하1:17-27

제목 : 야샬의 책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 팔레스틴에서 전쟁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통치한지 40년쯤 되었을 때 기원전 1000년경에 부족 연맹체였던 이스라엘이 왕정국가로 되어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2년전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한을 침략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독립 된지 5년, 정부가 수립 된지 2년 후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사무엘상28:4에 보면 블레셋은 수넴에 이스라엘은 길보아산에 진쳤다고 하였습니다.

수넴은 길보아산의 북쪽에 있습니다.

블레셋의 본진은 예루살렘 남쪽 오늘날 가자지구 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미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포위한 상태였습니다. 

육이오전쟁이 발발한지 삼일 만에 북한군은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였으며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진격하였습니다. 당시의 군세는 북한군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을 자신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여긴 사울은 수넴 옆에 있는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 갑니다.

수넴이 이미 블레셋에 점령당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변장을 하고 찾아가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 달라고 하였고 그렇게 나타난 사무엘의 모습을 한 귀신은 사울로 하여금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하고 기진하게 만들었습니다.

부산 일대만 겨우 남은 상황에서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연합군을 파견하기로 결의 하였습니다.

16개국이 전투부대를 파병하였습니다.

프랑스 영국 네덜랜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국 캐나다 필리핀 태국 뉴질랜드 호주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에디오피아 터키 그리스

5개국이 의료지원부대를 보냈습니다

노르웨이 인도 이탈리라 스웨덴 덴마크

20국이 물자를 보냈습니다.

브라질 쿠바 멕시코 이스라엘 파키스탄 레바논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에쿠아도르 엘살바로드 칠레 코스타리카 아이스랜드 라이베리아 파나마 니카라구아 파라과이 페루 우르과이

일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연합군은 사망 40,670명  실종포로 9931명 부상 104,280명 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9월 15일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하였다가 중국군의 개입으로 공방전이 계속되던중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이르게 되었고 오늘까지 휴전상태입니다.

1차대전의 사망자가 대략 1천5백만명으로 추정되고 있고 2차대전의 사망자는 1억3천만명까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육이오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는 4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0세기 이후 양차 대전으로 인한 사상자 다음으로의 큰 희생입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유발 하라리가 쓴 ‘극한의 경험’이 있는데, 각 시대별 전쟁 경험을 문화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1743년 테팅엔전투, 1744년 푸라이부르크 포위작전에 프랑스 군의관으로 참여하였던 라메트리가 쓴 글이 삽입되어 있는데 18세기까지 전쟁 부상자들 중에 몸통이 부상을 당하면 거의 죽었고, 팔과 다리는 절단으로 치료하였는데, 야전 병원에서 주로 그 일을 담당한 이들은 목수, 이발사, 정육점을 하는 이들이었으며 잘린 팔과 다리를 쌓아 놓은 것이 산을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

길보아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가 죽임을 당하였고 사울왕도 전사하였습니다.

왕과 왕자들이 이러하게 되었을진대 이 전쟁에 참가한 대부분의 병사들도 죽임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남편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것입니다.

현충일 기념식에서 육이오 전사자 남편 성복환에게 보내는 구순이 넘으신 아내 김차희여사의 편지가 낭독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 내게 남겨진 것은 당신의 사진 한 장 뿐이다. 뒤돌아보면 그 가혹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무살에 결혼하여 미처 신혼살림을 차리지 못하고 큰댁에 머물며 지내던 어느 날 전쟁과 함께 학도병으로 징집된 후 상주에서 잠시 머물다 군인들 인파 속에 고향을 지나면서도 부모님께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그 심정 어찌 하였을까. 전장의 동료에게 전해 받은 쪽지 한 장 뿐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난 후 몇 달 후에 받은 전사통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이었다" 

"10년을 큰댁에 머물면서 그 많은 식구들 속에 내 설 자리는 없었다. 내가 살아 무엇할까 식음을 끊고 지내면서도 친정엄마 생각에 죽을 수 없었다. 어느 때에는 연금 타러 오라는 통지에도 며칠을 마음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의 흔적을 찾아 국립묘지에 올 때면 회색 비석이 군인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어떤 이가 국립묘지를 구경하러간다는 말에 가슴이 미어진다. 젊은 청춘을 바친 무덤을 보고 어찌 구경하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소망이 있다면 당신의 유해가 발굴되어 국립묘지에 함께 묻히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게 남겨진 것은 젊은 시절 당신의 증명사진 하나뿐인데 그 사진을 품고 가면 구순이 훌쩍 넘은 내 모습을 보고 당신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난 아직도 당신을 만날 날만을 기다린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뜻과 상관없이 그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피해있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탄식하며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 지어다’ 하였는데 이는 그런들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울과 요나단 당신들이 없는데 이슬이 비가 내린들 내리지 않은들 무슨 의미이겠느냐 합니다.

그들을 기리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으며, 그들이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워 주었지 않았었느냐 합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려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와 같이 그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도록 활(케세트) 노래 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었고 그것을 야살의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야살의 책이란 의로운 자들의 책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 책에 기록된 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육이오 전쟁 기간 뿐 아니라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기리며 그 후손들에게 그 은혜를 갚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웠고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땅을 다시 찾았으며 다윗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이루었습니다.

 

육이오 전쟁은 인명의 피해 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생산 시설을 파괴하여 아무런 소망이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들만 파괴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들도 상처를 심하게 입었습니다.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며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상처와 기억에 매여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폐허 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 주셨습니다.

경제로 하면 후진국에서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우리의 도움과 역할을 절실히 요청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치로 하면 2차대전 이후 신생독립국 중에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가 되어 아직 그리되지 못한 나라들의 모범과 희망이 되었습니다.

문화로 하면 세계가 부러워하고 방문하고 싶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나라에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셨고 전 세계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하나의 견해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선은 침략자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지만,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 라는 책에서 신사참배를 하고 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그 의미를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기면서 이 전쟁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그와 같은 악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기억과 기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박인환이 1955년에 지은 검은 강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신(神)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후(最後)의 노정(路程)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驛前)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合唱)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者)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情欲)처럼 피폐(疲弊)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폭음(爆音)과 초연(硝煙)이 가득 찬 

생(生)과 사(死)의 경지로 떠난다. 

달은 정막(靜寞)보다도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룬 

자유의 성채(城砦) 

그것은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었다.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 시에서 저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피하여 열차를 타고 피난을 가고 있는 자들과

그 열차역에서 전쟁터로 가고 있는 병사들 농부의 아들들 즉 병사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독립에 있어서도 이 전쟁에 있어서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검은 강이 흐르고 있고, 반대편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이 아닙니다.

 

기독인의 애국애족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믿는 자의 믿음은 상식 위에 있어야 하며, 도덕 윤리 위에 있어야 하고, 과학위에 있어야 합니다. 애국애족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애국애족이 단순한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함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애국애족이 하나님의 의와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야살의 책 즉 의로운 자의 책에 기록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그들의 죽음을 의로움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으며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은 그 의를 지켜내기 위한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역사책에 애국자로 기록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야샬의 책에 기록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땅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주님의 공의와 정의가 함께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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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살의 책
  • 2022-06-21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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