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죄를 지고 가심
2024년 3월 17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요한복음1:29-34
제목 : 세상 죄를 지고 가심
천연두(마마, 두창, 역질)는 유럽 지역에서만 18세기 이전까지 매년 400,000명을 죽였으며,
흑사병으로 인한 누적 사망자가 3억명 정도인데 천연두는 10억 정도라 하니 그 피해가 가장 큰 질병이었습니다. 참고로 코로나19 사망자는 약700만명 이라 합니다.
두창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천연두는 감염자가 호흡이나 기침으로 공기 중에 내뿜은 바이러스로 감염되기 때문에 전염성이 높았습니다.
감염자의 30%가 사망하였고 어린 아이들은 80% 이상의 치사율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살아남았다해도 실명, 신체 뒤틀림, 곰보 자국 등 심각한 휴유증을 남겼습니다.
우두 백신을 만든 이는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인데 그는 1796년 자신의 11개월 아들에게 백신을 접종해 안전성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이 백신으로 말미암아 천연두가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에는 1880년 경부터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 1980년부터 발병사례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다는 것은 죄의 바이러스로부터 온 세상의 생명을 구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백신을 전달하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본질적으로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죄인이 되었다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살펴보면 그 누구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를 범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범함으로 인간이 죄인이 되었으며,
이를 로마서5:12에서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준 앞에 죄가 없다 할 이가 없습니다.
로마서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셨고,
로마서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신앙적 표현이 아니라 지구로 대표되는 우주적 현상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고백에서부터 믿음의 삶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이 망각되거나 부정되면 창세기4:9에서 가인이 하나님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한 것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삶이 됩니다.
그는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으며 자신의 행위를 마땅히 여기고 있습니다.
죄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그런 자격도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부터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구원이며 그 방법은 용서받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으로서만 죄의 값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죄의 댓가는 벌금형 신체형 목숨형이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아주신 것이 대속입니다.
대속은 죄의 값을 내가 치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타자를 통해서 치를 수 있게 하심입니다.
이 뜻을 드러내게 하신 것이 구약의 제사제도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쓴 논문이 ‘율법에 있어 제의법의 역할’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율법을 범함으로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할 때 속죄제를 드림으로 가능케 하심이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속죄 제물로 짐승을 마련하여 제사장 앞으로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 죄인으로 하여금 그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게 하고 자신의 죄를 전가하게 한 후에 그 제물을 도살하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번제단에 태움으로 그 죄인의 죄를 용서하신 일이었습니다.
그 죄인을 대신하여 짐승이 대속제물이 된 것입니다.
레위기16:8-10에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하셨습니다.
이 일은 욤키프르 즉 대속죄일에 있었습니다. 종교력으로 1월 1일에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한 염소가 지고 여호와 앞에 대속제물이 됨이며,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또 다른 염소가 지고 광야로 가서 그 죄의 기원인 아사셀에게 그 죄를 되돌림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기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수세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행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기 위하여 그에게 나아가고 계셨습니다.
저 멀리서 예수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세례 요한에게 다가가고 계셨고 아마도 요한은 성령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한의 눈에 자신에게 다가오고 계시는 예수님이 저 죄인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끌려갔었던 어린양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사야53:6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질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세례 요한보다 더 잘 말씀한 이는 없는 듯 합니다.
그러한 세례 요한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눅7:28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하셨습니다.
속죄제의 제물들도 아사셀의 염소도 타의에 의해 끌려온 제물들이었지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이 길을 가셨습니다.
요8: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 지시고 가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사실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속죄제를 통한 대속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한 번에 영원한 대속이 되었습니다.
그러하니 우리들은,
첫째,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주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는 먼저 계신 분 즉 선재 하신 분 하나님이십니다.
선재는 창세기의 브레시트 즉 만물을 창조하시기 시작한 태초가 아니라 요한복음의 아르케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계시기 시작한 그 때를 가리키는 태초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특징은 동일본질(호모 우시아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뜻입니다. 그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성령께서 머무시는 분이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그분만이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땅끝까지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속죄제를 드렸던 이들이 자신들의 죄를 속죄 제물에게 손을 얹어 전가하였듯이 우리의 죄를 주님께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동물의 피가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거기에까지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속죄물을 사서 제사장에게 가져가 그 제사에 참여 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진심으로 회개하고 이 일들을 통한 죄사함을 믿을 때에만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을 것입니다.
회개하면 용서받는 것이지 저절로 당연히 죄사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하니 우리들도 구체적으로 우리의 죄를 진심과 믿음으로 회개하는 일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주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으니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들도 누군가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믿음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용서 받은 죄인으로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누군가가 버린 휴지를 대신 줍는 일, 누군가가 한 거짓말을 대신 바로 잡는 일, 누군가가 한 강도짓에 쓰러져 있는 이를 대신 치료하는 일, 누군가의 빚을 대신 값아주는 일, 누군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감싸주는 일,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맡아 감당하는 일들이 그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그 죄를 사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그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