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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 성경말씀 : 빌레몬서1:17-22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5-11-29

성경 : 빌레몬서1:17-22

제목 :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도움을 받아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 되리라 기대를 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바울로 인하여 소요가 일어났고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거의 죽게 될 지경이었는데 로마의 천부장이 그를 구해내서 총독에게 보냈고 총독은 까닭도 없이 2년 동안이나 가이샤라에 구금해 두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호송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감옥에서 2년을 보내게 됩니다.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중에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서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 집에 노예였습니다.

노예제도가 가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주어진 상황이었고 빌레몬의 인격으로 보아 오네시모에게 가혹하게 하지 않았을 터인데 오네시모가 다른 생각을 품고 도망을 하였습니다.

추노라고 하는 연속극에서처럼 도망한 노예는 붙잡히면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때였습니다.

그러한 오네시모가 사람들을 숨고 피하고 하면서 살다가 소아시아의 골로새 지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로마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거기서 어찌된 연고인지 바울이 갇혀 있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바울로 인하여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란 이름은 유익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을 만남으로 인하여 무익한 자였던 오네시모가 이제는 이름 그대로 유익한 자가 된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방글라데시를 다녀왔습니다.

방글라는 언어의 명칭이고 데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방글라를 쓰는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방글라가 영어 BANG로 시작하기 때문에 제 성이 BANG이어서 동행했던 분들이 고국 방문하러 가는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하였었습니다.

인도, 네팔, 중국,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방글라데시는 남한 면적보다 강원도만큼 큰 국토에 인구는 14천만이 살고 있는 이슬람국가입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지구상에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 속하고 있습니다.

오후 예배 때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좀 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현재의 IS 사태 등을 보더라도 그들이 종교를 잘못 만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잘 만나야 하고 좋은 만남이 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연은 없다는 것이 우리 믿음의 전제라고 한다면 바울과 오네시모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는 바울과 골로새에서 로마로 가는 오네시모가 그 작은 공간에서 그 길지 않은 시간 가운데 만난 것입니다.

교회는 참으로 특별한 만남의 장소입니다.

교회만큼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없습니다.

교회는 나이와 성별과 지역과 지식과 소유와 권세와 건강 이해관계 등 서로를 만나기 어렵게 하는 수많은 요인들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나게 된 곳입니다.

어느 가수는 노래하기를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 하였지만,

교회 안에서 우리의 만남은 태초로부터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인줄로 믿습니다.

굳이 운명과 섭리의 차이를 논한다면 운명은 이 일의 주체가 누군지도 알 수 없고 그 결과도 변복될 수 없는 일이라 한다면, 섭리는 이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결과도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으나 상황적으로는 사람들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하니 우리의 만남은 아주 오래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님 안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그 엄청난 역사가 어찌 될찌가 오늘 우리 손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며 소망하고 사모할 일인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만남은 가나안 정복이라는 열매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과 다윗의 만남은 서로에게 가슴 아픈 일로 변하였고 그 후손들에게 큰 고통의 씨앗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꼭 그래야만 되었던 운명은 아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꼭 배신자가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배신자가 된 것입니다.

이번 저의 방글라데시 여정에서도 다양한 이슬람인들을 다양한 상황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상대방과 악수한 자신의 손을 자신의 심장에 갖다 댑니다.

저는 그 몸짓에서 아주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악수를 하고 가슴에 손을 대면서 그 짧은 순간 악수로서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바울은 바울의 사명을 다하였고,

오네시모는 오네시모대로 잘못을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유익한 자가 된 것입니다.

만남의 결과는 어느 한 쪽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상호간의 선한 역사의 열매입니다.

바울은 그 열매를 10절에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 하였고, 12절에 그는 내 심복이라 하였는데 심복의 본래 의도는 심장입니다. 즉 오네시모가 바울 자신의 심장이라 한 것이며, 16절에는 형제라 하였습니다.

바울과 오네시모의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 열매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내 심장, 내 형제가 뜻하는 일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교회에서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귀한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섭리와 은혜가 함께 하시는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유한하지만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만남을 통하여 주님께서 이루실 귀한 열매들을 사모하며 살아간다면 꼭 그와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빌레몬에게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하였습니다.

우리도 서로를 주님께서 생명의 동역자로 만나게 해 주셨음을 알고 믿고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1. 어떤 상황인가요?

2. 빌레몬을 대하는 바울의 마음은?

3. 내게 주시는 말씀은? 

  




  • 번호
  •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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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 2015-12-02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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