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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사랑의 빚

  • 성경말씀 : 빌레몬서1:17-22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5-12-06

성경 : 빌레몬서 1:17-22

제목 : 사랑의 빚

 

바울과 오네시모가 로마의 감옥에서 만났습니다.

우연처럼 보여지는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고 그 만남을 통해서 오네시모는 그의 이름이 뜻하는 대로 이제 무익한 자가 아니라 유익한 자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만나기 위하여 오신 절기입니다.

태어나면서 부모님과의 만난 그 후에 친구와의 만남 선생님과의 만남 사회적으로 다양한 만남들 속에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만남이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아직도 주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우리들도 더 깊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의 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과 오네시모의 만남이 이루어지기에는 빌레몬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노예 신분이었고 빌레몬은 그의 주인이었습니다.

서로의 관계를 보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육신적으로 빚진 자였고 빌레몬은 바울에게 영적으로 빚진 자였습니다.

물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 빚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18절에 그가 즉 오네시모가 만일 네게 즉 빌레몬 자신에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절에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라 내가 갚으려니와 네기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것입니다.

빚진 자는 그 빚을 다 갚기까지 빚을 낸 자에게 매이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로 인하여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하여 1997123일부터 IMF에 빚진 자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4년 후인 2001823일에 빚을 다 갚고 IMF관리 체제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실질적인 경제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IMF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습니다. 모두가 부당한 일들은 아니었지만 피눈물 나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빚의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빚진 죄인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빚을 지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삶 자체가 빚을 지지 않고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빚에는 사단 마귀의 사슬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빚지게 만들어서 종노릇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의 빚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빚입니다.

로마서 13:8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하셨습니다.

세상의 빚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사랑의 빚은 사람을 살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사랑의 빚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빚 없이 태어날 수도 없고 자랄 수도 없으며 살아갈 수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부터 사랑의 빚을 지지 않고 구원 받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빚진 자로서 빚진 자 답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좀 쩔쩔 매면서 살아야 합니다.

마치 나는 아무에게도 빚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살아왔다고 하는 것은 대부분 몰라서 그런 것이든지 아니면 사실을 부정하는 악함의 결과입니다.

그런 연고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 합니다.

주인인 빌레몬이 노예인 오네시모에게 그리할 이유는 없지만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빚진 자로서 이와 같이 하는 것처럼 당신은 내게 빚진 자이니 나의 말을 듣고 오네시모에게 나를 대하듯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 들은 다 주님께 빚진 자들이니 주님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대하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르기를 오네시모가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내가 갚겠다 합니다.

이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의 불의나 죄 값을 우리 대신 친히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굴욕을 당하셨고 살과 피와 생명까지 다 내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우리의 가진 것을 모두 팔아도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19절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주님께서 일일이 열거 하신다면 누구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마음에 품고 그 뜻을 행동하려 할 때 마귀가 마치 다니엘서에 나오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가 쓰여지는 것처럼 루터가 바라보고 있는 벽에다가 루터의 은밀한 죄들에 대하여 열거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루터는 부끄러워서 너무도 부끄러워서 나같은 인간이 어떻게 이 거룩한 일을 할 수 있으랴 하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 때 주님의 십자가가 떠올라서 그 때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20절에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하셨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한 말이지만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간다면 주님께서 그로 말미암아 기뻐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32-34에서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하셨는데 이것은 장가가거나 시집가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는 말씀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사라집니다.

나를 위한 기쁨 나를 위한 평안이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부분적이고 순간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기쁨은 완전하며 영원합니다.

어떡하면 그리할 수 있습니까?

주께 하듯 하면 됩니다.

어떻게 주께 하듯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빚진자 임을 알고 인정할 때에 그 힘을 오히려 얻게 됩니다.

그 은총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1. 내게 하듯 하라 하심은?(17)

2. 내가 갚겠다 하심은?(19)

3.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라 하심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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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빚
  • 2015-12-11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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