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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지식이 자라자

  • 성경말씀 : 호세아6:1-3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6-01-17

성경 : 호세아6:1-3

제목 : 지식이 자라자

제가 초등학교 때 집에서 소를 키웠습니다.

소는 덩치가 크고 눈이 크고 힘이 세지만 온순하고 지혜로운 동물입니다.

소에게 풀을 뜯기기 위해서 산으로 끌고 갈 때면 소 고삐는 제가 쥐고 있지데 정작은 소가 저를 끌고 갔습니다. 어디로 갈지를 소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가 병이 들면 수의사를 불러서 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를 산에다 풀어 놓기도 합니다. 그러면 소가 자신을 치료할 풀을 찾아서 먹음으로 병이 낫기도 합니다.

소가 무슨 학습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 된 것도 아닐텐데 본능적으로 자신의 병에 어떤 풀이 약이 되는지를 알고 있는 듯합니다. 소의 놀라운 지혜이고 지식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인간이 더 지혜롭다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소는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지 말아야 할 풀을 잘 가려서 먹는 방면에 인간은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인간은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먹고야 말았습니다.

그 지식의 열매를 먹은 후 인간이 더 지혜로워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히 어리석어 졌습니다. 지나친 음주나 흡연 마약 그 외의 사실은 독과 같은 것들을 먹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였습니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분별할 줄 몰랐습니다.

인터넷에서 어느 분이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고, 할까 말까 할 때는 하고,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말고, 말할까 말까 할 때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경험상 옳은 것 같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기원전 790-722 사이로 볼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몹시 병들어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호세아5:13에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으나 그들이 그 병과 상처를 치유받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나오질 않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5:14-15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가 참으로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권면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4:6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하고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입니다.

첫째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분별해야 하는 점들이 있지만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그 고난과 고통을 가지고 점집으로 갈 것도 아니고, 바알에게 갈 것도 아니고, 맘몬에게 갈 것도 아니며 바로에게 갈 것도 아니고 무모하게 앞으로만 나아갈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함께 돌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데 살 길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틀과 셋째 날은 아주 가깝게 빠르게 그리고 하나님의 정한 시간에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지체하지 않으십니다.

요원한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주 가깝게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였습니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의 때가 가득하여도 새벽 별은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른 비를 게쉠이라 하고 늦은 비를 말코쉬라 합니다.

이른 비는 우리로는 10-11월로 이 때가 파종기입니다. 이 때 비가오지 않으면 씨앗을 심을 수가 없습니다. 늦은 비는 3-4월 이 때는 결실기입니다. 이 때 비가오지 않으면 알곡이 들어서지 않고 쭉정이가 됩니다.

그러니 비가 미리 와도 안 되고 너무 늦어서도 안 됩니다. 다 때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가 그와 같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알아야 하겠고 그 때에 맞추어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달력만 걸어 놓고 세상의 시계만 보며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달력 하나님의 시계를 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였습니다.

무엇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4:8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셨고, 옛 계명인 레위기 19:18에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셨고, 새 계명인 요13:34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되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아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법에 비추어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다른 필요성과 당위성을 갖고 있다 할찌라도 최고의 법인 사랑의 법에 따라서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공의시며 공의를 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욥기 8:3에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하셨고, 시편 50:6에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셨으며, 잠언 15:9에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하셨고, 이사야 51:4에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하셨고, 예레미야 9:24에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하셨고,

호세아 선지자도 10:12에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하였고, 아모스 5:24에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하였고, 누가복음 11:42에서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셨고, 요한계시록 19:11에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를 바라보아도 그렇고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도 그래도 사랑은 있는데 공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한 손은 사랑이시고 다른 한 손은 공의이신데 말입니다.

왜냐하면 공의를 무엇이 공의인지 알기도 어렵고, 안다 하더라도 사랑은 실천하는데 대적하는 자는 없는 편이지만 공의를 실천하려고 하면 상대가 반드시 있고 그 싸움을 피할 수 없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많은 희생을 치러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대로 사랑은 실천하려고 하고 손해와 이익에 대해서는 결사적으로 싸우지만 공의는 우리와 무관한 영역으로 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경제가 사회가 문제다 라고는 하지만 그 문제를 하나님의 공의에 입장에서는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으며 행함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더욱 알아야 하겠고 그에 대한 마땅한 삶의 태도와 행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좀 더 익숙한 말로 표현한다면 평등하려고 애쓰는 일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일이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며 불의 앞에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며 사는 일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고 우리의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소부재 하심과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지식이 지식으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참으로 공허한 소리일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에 믿음이 더하여 진다면 그것은 세상과 타자에 대한 무한 긍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여기에도 계시고 거기에도 계시며 나에게도 계시고 그에게도 계시며 나에게서 그에게서 그곳에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우리의 삶으로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딤후3:16-17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 3:8에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에 순종할 때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있는 지식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식이 자라자 라는 말씀을 한 가지 그림으로 나타낸다면 성경의 안경을 모습입니다.

그 안경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전능하심을 더욱 보게 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1.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권하는 이유는?(1)

2. 이틀, 셋째 날의 의미는?(2)

3. 힘써 여호와를 알자가 의미하는 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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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식이 자라자
  • 2016-01-22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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