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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적은 무리여

  • 성경말씀 : 누가복음12:22-34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6-02-14

성경 : 누가복음 12:22-34

제목 : 적은 무리여

 

레위기 2523절에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특히 땅을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희년이란 제도를 만들어 주셨고 희년이 되면 본래의 땅의 주인에게 사용하던 땅을 다 돌려주어야 합니다.

본래의 땅의 주인이란 처음에 땅을 분배받은 자나 그 후손을 가리키지만 의미상으로는 하나님입니다.

즉 일정기간 땅을 사용하다가 때가 되면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지금의 이란 땅인 페르시아만에 있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그 땅을 떠나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지가 어디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네게 지시할 한 땅이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때가 대략 기원전 2000년 정도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곳은 이미 가나안 족속과 블레셋 족속이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 땅에 살다가 기원전 1800년 경에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애굽에서 400여년을 노예로 살다가 기원전 1400년 경에 출애굽을 하게 됩니다.

40년 광야를 거쳐서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고 살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가나안 족속의 죄가 관영하여 그 땅에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족속이 그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도 8백여년 그 땅에 살다가 기원전 586년에 나라가 망하면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갑니다.

다시 그 땅으로 돌아오는 데는 70년이 걸렸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오면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렀던 노래가 시편 126편입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 꾸는 것 같았도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와서 약 6백여 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여자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신 말씀처럼 주후 70년 경 성전은 무너졌고 백성들은 로마에 포로로 잡혀하고 남은 자들도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

그 후로 약 2천년을 나라 없이, 그 땅에서 살지 못하다가 1948년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하며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8십여년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 그 땅의 원주민이었던 팔레스틴 사람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지금의 땅에서 계속 살아갈 자격이 있는 것인지 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기시감이 들곤 합니다.

 

땅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한반도라는 땅입니다.

대표적으로 쿠르드족, 아르메니아인들은 지금도 자기 땅으로 인정받는 땅이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면서 학살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이 있어야 하고 땅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비록 이 땅에서 계속 살아오고는 있지만 때로 땅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없었을 때에는 땅의 주인으로 살지를 못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이 힘이 겉으로는 경제력 정치력 혹은 군사력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인들은 땅도 풍요로웠고 성도 튼튼하였으며 인구도 많았고 외적의 침입에 무너진 것도 아니었지만 하늘에서 유황불이 떨어져서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땅을 지켜내는데 필요한 힘은 의인 10명이었습니다.

그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서 죽었거나 계속 살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잠언10:29에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하셨습니다.

잠언21:30-31에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으로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일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삶 속에 묻혀 있다가도 정말 중요한 일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 순간 !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구나!” 하는 경탄을 하게 됩니다.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제멋대로 되어지는 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 그 일은 하나님 뜻대로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나가 감당할 수 있는 말씀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첫째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미리 염려하며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당장 없음에 대한 걱정을 포함하여 일 년 후 혹은 십년 후에 대한 걱정을 포함하는 말씀이며, 더 좋은 것을 이기적으로 바램에 대한 욕심을 보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 이기적 욕심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전능하심을 믿으며 살라 하셨습니다.

까마귀를 보고 백합화를 보라 하시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셨습니다.

아무 노력도 안 해도 된다는 말씀이 아니라 매 순간의 삶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며 살라 하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셋째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하셨습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 풍년을 만나 저장할 곳이 없자 자신만을 위한 더 큰 창고를 짓고자 했던 어리석은 부자와 같지 않는 삶이고, 사렙다 여인이 한 줌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먼저 엘리야를 위하여 떡을 만든 것과 같은 삶을 말씀하심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그리고 이러한 자들로 인하여 그 땅에서 살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식으로 표현한다면 이러한 백성이 열 명만 있으면 그 땅에서 그 백성이 살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는 이민규 교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글 중에 미국과 한국에서의 한 통계자료를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기독교가 다수인 나라에서는 더 많이 예배드리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성경 본다는 것이 더 윤리적이고 더 양심적이고 더 상식적인 삶을 산다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당혹스런 내용이었지만 경험적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그 분의 주장은 예배나 기도나 성경이 무용하다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통해 그래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언제나 소수이더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오늘 말씀을 하시면서 적은 무리여 라고 하신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의 구분은 나 자신도 혹은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마지막 심판의 날에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바라고 기도하기는 우리의 믿음과 지식과 섬김이 더 자라나서 주님이 주신 땅에서 우리가 살 자격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1. 예수님의 당부는?(22)

2. 예수님의 약속은?(31)

3. 적은 무리여라고 하셨을까요?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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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은 무리여
  • 2016-02-19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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