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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성경말씀 : 요한복음21:15-17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5-06-14

성경 : 요한복음21:15-17

제목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3세기에서 17세기까지 100여 차례 창궐하였던 흑사병은 중국 등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인구를 1/3 이상 죽음에 이르게 한 전염병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극도의 두려움이 엄습하였고, 이 두려움은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극단의 이기주의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신의 진노로 알고 극단의 회개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내일에 대한 기대대신 오늘을 쾌락으로 살려고 하는 모습들이 있었고,

한편으론 환자들을 돌보며, 시신들을 장사지내며 그렇게 희생적으로 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종말론적인 삶이란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또 하나의 현상은 희생양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나그네들이나, 문둥병 환자들이나, 유대인들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이 병을 옮기는 자들이라는 소문을 만들어내며 저들만 제거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희생양을 통하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19239월에 있었던 일본의 관동대지진후에 있었던 조선인 학살도 그와 같은 일들이었습니다.

감기라는 영화에서는 괴 바이러스에 감염된 분당지역을 폐쇄시키고 폭격기를 동원해 모두를 완전히 태워 죽이는 결정을 합니다.

분당인구가 50만 명인데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은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그 희생을 강요하거나 폭력으로 그리되게 만들어 왔습니다.

레위기 16:21-22에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 지니라 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아사셀의 염소라 하였습니다.

희생양의 본래 뜻은 거룩한 대속의 의미인데, 오늘날의 희생양은 다수와 폭력에 의해 강요된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

희생양을 억지로 만들면 더 큰 악(변종)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스스로 희생양이 되면 많은 악들을 멸할 수 있게 됩니다(백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주님의 보혈이라는 백신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 흑사병이 감소되고 사라졌을까 함에 있어서도 그 동안에 인간에게 항체가 생겨나서 그리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면역력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기심은 면역력을 약하게 만들지만 희생은 면역력을 강하게 만듭니다.

자기만 살겠다는 공동체는 그래서 무너지고 희생자들이 있는 공동체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입니다.

장소는 갈릴리 호수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다시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믿음으로 사는 곳이라면 갈릴리는 본래의 삶의 자리입니다.

베드로가 더 이상 믿음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하고 익숙한 본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귀한 것이기는 하나 저절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고 애쓰지 않고는 댓가를 치르지 않고는 유지할 수 없는 삶입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베드로에게는 모든 사람이 모두 주님을 배신할 지라도 자신은 결단코 그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의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일이 있었고

예수님의 재판과정과 십자가를 지시는 과정에서 한 번도 나서지 못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무덤에 장사지내는 일에도 참여하지를 못하였습니다.

빈 무덤을 보고 와서도 이상하게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두 번이나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셨지만 베드로는 어찌할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한 베드로를 돌이키게 하신 것은 사랑의 회복이었습니다.

예수님께는 베드로에게 하실 말씀이 많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의 비겁함에 대한 서운함, 그의 믿음 없음에 대한 나무람, 그의 배신에 대한 책망, 아니면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더 가르치실 말씀 등등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씀들을 하시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로 하여금 세 번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고백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30여년이 지나서 쓴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랑은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이번 메르스로 인한 재난도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그 어떤 재난들이라 할지라도

다른 것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겨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따르는 그 서로 사랑을 통하여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고통이 오더라도 그 고통으로 인하여 이웃을 탓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이웃들을 위하여 그 고통을 감싸 안으며 그 모든 사실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살아감을 통하여 이기게 될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관련 정보에 유념해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결코 무모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가장 지혜로움입니다.

예를 들면 손을 씻는 일입니다.

마태15:2에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역병 발생율이 낮았는데 그 이유 중에는 어느 민족보다 손을 열심히 씻었다는 점을 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침할 때를 대비해서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책임감을 가지고 지켜내는 일입니다.

둘째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고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 돕는 일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고통가운데 있는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들지 말고 도와야 합니다.

셋째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서 죽어가던 자들에게도 놋뱀을 바라보면 살리라는 말씀을 주셨고

그리한 자들은 살았습니다.

전문지식은 의사들에게 맡길 일이고, 이런 저런 소식들은 언론기관들이 할 일입니다.

우리들이 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함이 있고, 우리의 회개가 있으며, 어려움을 당한 자들에 대한 긍휼함이 있을 것인데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이런 유들이 나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1.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질문은?

2. 베드로의 대답은?

3. 나에게 물으신다면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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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2015-06-17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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