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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 성경말씀 : 마태복음 11:25-30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5-08-02

성경 : 마태복음 11:25-30

제목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곤고함 그 자체였습니다.

국가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습니다.

마태5:41 누구든지 너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로마의 식민지로서의 유대인들의 곤고함이었습니다.

13장에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 이란 말씀도 거룩한 성전 안에서 제사를 드리다가 로마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고,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명의 말씀도 그와 같은 강제 노역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율법주의의 형식 속에서 진리와 멀어지고 있었고 자유함이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세리들까지 동원한 로마의 수탈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인듯합니다.

한 아이의 삶을 따라가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품에 오래 있지를 못하고 타인의 손에 맡겨지고 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과도한 학습을 요구받고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세계 속으로 편입되어 좌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인데 아이들에게 놀이가 없습니다. 놀라고 해도 놀 수 있는 환경자체가 없습니다.

그러하니 인터넷의 게임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중학생은 고등학생이 되기 위한 준비의 단계이고, 고등학생 때는 대입을 위한 준비의 때이고, 대학생 때는 취업을 위한 준비의 때입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극히 제한적입니다. 대단한 용기와 모험을 해야 이러한 삶을 벗어날 수 있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때고 그 자체를 위한 목적적 삶이 없습니다.

무엇에 쫓기듯이 밀리듯이 어쩔 수 없이 살아지고 있습니다.

취업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억지로 휴학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도 많고,

취업이 되어도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갈리며, 고용불안은 너무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수고를 넘어 포기에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삼포세대'(三抛世代: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넘어 '칠포세대'(七抛世代: 연애, 결혼, 출산, , 인간관계, , 희망 모두를 포기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평균수명은 늘어만 가는데 노후 준비 없는 채로 살아내야 하는 긴 세월이 가장 무거운 짊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인의 10대에서 30대까지의 사망 이유 중 최다는 자살이고,

40-70대는 암이라 합니다.

버티지 못하면 자살하고, 버티면 암이 걸리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만 이러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수고와 무거운 짐이라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나라들도 많이 있고,

오늘 먹을 식량이 없어서 굶주림 속에 있는 이들도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수고와 무거운 짐의 기원을 살펴보면,

인간들이 선악과를 범함으로 시작된 일입니다. 인간들의 지혜가 만들어낸 결국입니다. 전 세계가 그러합니다. 이제는 유럽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말 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고 스스로 왕을 세움으로 인한 일입니다.

마지막에는 적그리스도를 전 세계의 왕으로 삼을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에 종노릇함으로 씌워진 굴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내용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 우리의 욕망입니다.

그 욕망이 무엇인지를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사단 마귀가 주는 거짓과 이간질과 두려움에 매임으로 인한 일들입니다.

이는 실제로는 수고와 무거운 짐이 특별하게 심한 것이 아닌데 자신 만 유독 그러한 것 같이 스스로를 속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여왔지만

인간 삶의 곤고함은 더욱 더하여져만 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경제는 더욱 발전하여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소외와 수단화는 인간의 삶을 더욱 의미 없게 만들고 있고 생명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메마를 대로 메마른 생명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세상의 지혜 있다 하는 자들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하셨는데,

인간 안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인일 뿐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자들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의 해결은 오직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로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주님께 배우면 쉼을 얻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세상 지식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배움을 통하여 쉼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8:31-32에서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배우기 위해서는 주님의 멍에를 메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멍에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님께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

첫째, 주님께로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곤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 모두도 주님께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의 삶의 문제를 주님께 아뢰는 일 즉 기도하는 일입니다.

둘째, 주님의 멍에를 메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멍에란 주님의 사명이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사명 없는 삶에 주님의 안식은 없습니다. 주님의 멍에가 가벼운 것은 주님께서 함께 져 주시는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주님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주님, 생명수이신 주님, 참 안식이신 주님, 참 자유함이신 주님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에게 안식이 있습니다.

주님께 배운다고 갑자기 고된 환경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환경에 눌려 살았다면 주님께 배우면 배울수록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와 같이 되게 하시는 주님을 통하여 주님이 말씀하신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 하셨으니 그 말씀을 듣는 세상 사람들은 교회로 올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하여 그들에게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적문이 있는데,

우리 광동교회는 복음주의 신앙위에,

노아의 방주와 같이 생명을 구원하는 교회,

에덴동산과 같이 안식을 누리는 교회,

소금과 빛 같이 봉사하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입니다.

우리의 안식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성되겠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누려야 할 안식을 누리는 우리 광동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은총을 우리 광동교회에 베푸실 줄로 믿습니다.

 

  

 

1.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2.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3. 왜 주님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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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02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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