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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나오미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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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룻기1:19-22

제목 : 나오미의 고난

후쿠시마 원전의 제어가 불가능해져 720여명의 직원들이 대피한 15, 남은 직원 중 한명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혼자 나가버릴 수는 없다.” 저는 이 기사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말했을 남편의 입장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고, 그 말을 전화기로 듣고 있어야 하는 부인의 입장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부디 또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이 좋은 결과로 바뀌어서 이전보다 더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고통은 죽은 자의 몫이고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혹독한 고난의 세월을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죽음의 의미를 가슴깊이 받아들이게 된 것은 저희 할머니의 별세이었습니다.

그 느낌은 이제 어디에 가서 그분을 만나야 하는가? 였습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컸습니다. 꼭 만나야 하는 분인데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은 돌아가신 분의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기간인데 그 과정도 없이 가까운 가족 사랑하는 이들이 사라졌을 때 그것을 통해 오는 쓰나미와 같은 무게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 저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고난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와 같은 고난에 우리가 예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다가 먼저는 욥기로 갔지만 다시 룻기로 가게 하셨고 그 안에서 나오미의 고난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선은 나오미의 고난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흉년이었습니다.

그 흉년이 얼마나 심했던지 고향을 등져야 했으며 심지어는 이방의 땅에 가서 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가족의 죽음이었습니다.

모압에서 사는 동안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 그의 심장이 무너지고 두 아들이 죽었을 때 그의 두 다리가 무너졌을 것입니다.

셋째는 피붙이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그래도 남은 혈육이 있다면 소망이 되고 삶의 이유가 되었을 터인데 그 마저도 없이 홀로 남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닥친 고난은 참으로 무겁고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었습니다.

 

다음은 고난의 이유입니다.

룻기에서는 왜 나오미에게 이와 같은 고난이 임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그와 같은 흉년이 임했는지, 왜 그들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는지, 왜 그의 남편이 죽었는지 그리고 두 아들까지 그리되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아무런 자손이 없었는지.

사실 고난의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억울하고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수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에 답답해하고, 알면서도 인정하기 어려워 괴로워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고난의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죄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는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불평하고 원망할 수가 있습니다.

나보다 더 악인으로 보이는 자들은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생겼는가 하는 생각은 명백한 원망의 이유가 되기는 하나 그러나 나 자신을 살펴보았을 때 내 고난의 이유가 없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둘째는 연단의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훈련이 되지 않기에 마치 쇠를 풀무에 집어넣어 담금질을 하는 것과 같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 119:67에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셋째는 대속적 고난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하여야 할 고난을 내게 감당케 하시는 고난입니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려는 고난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 고난의 경우가 있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이 그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사 53:5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였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말한다면 저들은 그래도 대처할 능력이 있기에 앞으로 세계에서 원전을 사용하는 자들이 당할 고난을 미리 대신 당함으로서 경계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난의 문제를 대하는 나오미의 모습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고자 합니다.

첫째 나오미는 20절에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였다 합니다. 21절에는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하며,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다 합니다.

이것이 원망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음을 저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나오미는 19절 말씀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 고난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더 멀리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품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셋째 그는 자신을 20절에 이제 나오미 즉 희락이라 칭하지 말고 마라 즉 괴로움이라 불러 달라 합니다. 그는 광신자와도 같지 않고 자신을 속이는 자와도 같지 않습니다. 이는 오늘의 삶을 인정하며 그 위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22절에 나오미가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다는 말씀과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다는 말씀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 고난의 후에 무엇을 예비하고 계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나오미의 가족들은?(2)

2. 나오미의 고향은?(19)

3. 나오미의 뜻과 마라의 뜻은?

4. 고난에 대한 나오미의 태도는?

5. 고난에 대한 나의 이해는?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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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오미의 고난
  • 201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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