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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주님이 쓰시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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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디모데후서 2:20-22

제목 : 주님이 쓰시는 그릇

오늘 몹시 추운 날씨입니다.

나무는 겨울을 푸른 잎으로 나는 것과 가을이 되면 잎을 다 떨구는 것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사시사철 푸른 나무들은 겨울이 되면 스스로 부동액을 만들어 가지와 잎에 공급함으로 얼지 않고 겨울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한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도 부동액이 있어서 아무리 혹독한 시련이라도 견디어 낼 수 있는 사시사철 푸른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청년 때 여수에 있는 애양원을 방문했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애양원은 음성 나환자촌입니다. 한센씨병을 앓고 치료가 된 분들이 모여서 사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했던 수련회 행사 중의 하나였었습니다.

조를 짜서 각 방을 찾아가서 함께 얘기도 나누고 준비해간 선물도 드리고 하였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자신의 사물함에서 뭘 꺼내셨는데 보니 병으로 된 콜라와 초코파이 한 개 였습니다. 아마도 누가 와서 준 것을 잘 두셨다가 찾아와 준 것이 고마워서 대접하려고 주시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병을 심하게 앓으셔서 병과 과자 봉지를 잘 집지도 못하는 보기에 정말 흉한 손으로 건네시면서 먹으라고 하시는데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콜라는 유리로 되어 있고 초코파이는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니 먹어도 문제가 없다

그러면서도 먹어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지는 기억이 생생한데 그 뒤로 그것을 먹었는지 끝내 못 먹었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사실은 의학적으로도 깨끗한 것이었고, 그분들도 상대방이 꺼려할 것이라는 것을 사실은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무어라도 주고 싶어서 그렇게 고이고이 두었던 것을 많은 생각 끝에 내놓으셨을 것이니 그 얼마나 귀한 음식이었겠습니까?

그 깨끗하고 귀한 음식 앞에 그리하였었던 기억이 오래도록 지금까지 빚으로 남고 있습니다.

때로 그 기억과 함께 내 손을 보면서 내 손은 깨끗한 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 건물의 외형을 보면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그 중에서 노아의 방주 모양을 형상화한 건물들이 있고 또 기도하는 손을 본떠 교회를 지은 곳도 많이 있습니다.

길 건너편에 있는 큰 은혜교회당이 그렇고 강남에 있는 청운교회도 기도하는 손의 모양입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유럽에서 활동하던 가장 유명한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erer)였습니다. 뒤러의 그림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현재 독일 뉘른 박물관에 있는 기도하는 손인데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 희생한 친구 프란츠 나이스타인(Franz Knigstein)의 손이라고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이웃을 위해서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그림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한 그 손이야말로 가장 귀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손일 것이고, 그러면에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못 박히신 예수님의 손이야말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손일 것입니다.

 

근자에 우리는 몇몇 분들이 자신의 재산으로 재단을 만들어서 사회에 내 놓았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는데 큰 틀에서 박수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뭔가 불편함이 있는 적어도 감동은 없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지만 그 중에 귀히 쓰임을 받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말씀하시며,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쫒으라 하셨습니다.

깨끗지 않은 마음으로 의를 말하면 그것이 위선입니다.

깨끗지 않은 마음으로 믿음을 말하면 그 믿음은 파선합니다.

깨끗지 않은 마음으로 사랑을 말하면 정욕이 됩니다.

깨끗지 않은 마음으로 화평을 말하면 이간질이 됩니다.

그러나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바라보면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그리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받을 그릇이 없음이요,

다른 하나는 그 그릇이 더러움이요,

또 다른 하나는 그 그릇에 다른 것이 가득 담겨 있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깨끗한 그릇이 되겠습니까?

첫째는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정결해야 합니다.

생각이 모여서 마음이 되고 마음이 움직여서 행동이 됩니다.

그런데 생각이 우연히 아무 연고 없이 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듣느냐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것 보고 좋은 것 듣고 좋은 것 먹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피조물의 탄식을 지난주에 설교한 이후 지난 한 주간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아서 깨끗해 진 것이 아니라 고기를 삼가야 한다는 말씀을 순종함이 나를 조금 더 정케 하였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죄가 인간을 부패하게 합니다.

죄는 모든 것을 오염시킵니다. 그러므로 깨끗해 지기 위해서는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밧세바와의 범죄 후에 다윗이 회개의 기도를 드리면서 시편 51:4에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하였는데 이는 사람한테는 죄를 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의 사함이 주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사함을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이사야 1:18의 말씀처럼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하시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환경이 깨끗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2:7에 롯도 의인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의인 롯도 주변 환경이 더러우니까 그것을 끝내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정 할 수 있으나 먹물이 튀는 곳에서 흰옷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혼자만 깨끗하게 살 수 없습니다. 깨끗한 세상 공의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시대의 믿음이 타락했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살기위해서도 정결한 믿음의 세상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주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재질이 무엇이냐 크기가 어떠나 장식이 아름다우냐 격조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냐를 가장 우선해서 보실 것 같습니다.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으면 주님께 귀히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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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이 쓰시는 그릇
  • 201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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