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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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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고린도전서13:1-13

제목 : 사랑은

최근에 한 유명세를 타는 목사님이 미국의 집회에서 스님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는 사실이 방송에 알려지면서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불교권에서는 이 말을 손팻말이나 현수막에 써서 시위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일간지에서는 목사님 부처 믿고 사람이 되세요 라는 제목의 독자칼럼을 내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우선 그 집회가 어떤 집회였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보통 생각할 수 있는 부흥회 성격의 집회였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흥회가 공공집회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신앙이라는 전제를 가진 집회임을 고려할 때 이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특정인들 즉 기독교인들 간의 말이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며느리들끼리 모여서 시어머니를 흉보았던 말을 가족들이 다같이 모여서 음식 먹는 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인용하는 것은 표현자체는 사실이라 해도 그 의미는 이미 왜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스님들 들으라고 그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말을 이어가는 중에 그런 표현이 나왔을 것입니다. 이 말의 배경에는 스님들에게 이 말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전제를 가지고 말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미를 준 것은 사실입니다.

사단 마귀가 이것을 교묘히 이용하여 분열과 갈등을 책동하고 기독교를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스님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이 틀린 것인가 하면 기독교 교리에서는 옳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기독교 진리임을 생각할 때 틀리지 않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도덕적 향락이나 마음의 평안 기복적 신앙 정도의 종교가 아닌

창조와 종말과 구원을 다루는 종교라면 당연히 배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 누구라 할지라도 창조주는 오직 한분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주 안에 종말과 구원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종교는 궁극적인 배타성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도 되고 너도 된다는 말 어느 종교를 믿어도 구원을 받는 다는 말은 일견 보기에 관용적인것 같고 좋아 보이지만 진실성은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런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금의 사태들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기독교에도 복음전파에도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예수님이라면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생각해 보다가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 합니다.

13장 전체가 사랑은 이러하다 하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1-3절은 사랑으로 하지 않은 일은 어떤 것이라도 무익하다 하셨습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무익하며,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있어도 무익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찌라도 무익하며,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여도 무익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무익하다 하셨습니다.

진짜 그러할까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하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그러하다 하시니 달리 이유를 댈 필요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일은 본인에게도 대상자에게도 하나님께도 무익하다는 말씀입니다.

8-13절은 사랑은 최후이며 최고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며,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사와의 대화에서 사랑이 최고의 계명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이라 하셨고 이 계명을 지키면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4-7절은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15가지 모습으로 되어 있는데 15가지가 사랑의 모든 모습이 아니라 적어도 사랑은 이러한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 모두 말씀드리는 것은 차후에 기회가 있을 것이고

오늘은 복음전파에 있어서 사랑의 문제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절 말씀에 사랑은 오래참고 하셨습니다.

복음전파에 있어서도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 내가 전하는 복음을 당장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원망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을 전해 놓고 내일 결실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을 받은 사람이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오래 참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당장 변하지 않더라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다려 줄 주 아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3장의 무화과나무 비유에서도 포도원 주인은 찍어 버리라 하였지만 과원지기는 한 해를 더 기다려보자 하였습니다. 

새벽기도에서 고린도서를 읽고 말씀을 나누었는데 바울은 참으로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오래 참았습니다. 그에게 사랑의 은사가 있음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셨습니다.

마지막 유월절의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에서까지 제자들은 누가크냐?로 논쟁하였으며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하고 말았고 베드로조차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심으로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전도할 때 오래 참아야 합니다.


5절 말씀에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도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부분적으로 전략적으로 예의를 무시하고 해야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의를 무시해서는 아니 됩니다.

기독교의 선교과정에 있어서도 기독교가 힘이 생겼을 때 극단적으로 갔을 때 예의를 무시하였습니다.

선교대상자를 무시하고 얕잡아 보고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것 주겠다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든지

어리석고 미개하게 여기는 일이 그런 모습들입니다.

이번 사건도 그러한 면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만일 상대방이 힘이 있는 자였다면 그런 조롱적인 혹은 가볍게 보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무례히 함은 자신의 힘을 과시할 때 나오는 현상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담아야 합니다.


6절 말씀에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셨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일중에 폭력을 사용하는 일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 의롭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보면 힘을 통한 선교를 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그러하였고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핍박받는 종교로 시작이 되었는데 힘이 생기자 이내 핍박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 선교가 좋은 열매를 맺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26:53에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求)하여 지금(只今) 열 두 영(靈) 더되는 천사(天使)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하셨는데 끝내 힘을 이용해서 예수님의 뜻을 이루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는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힘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힘을 잘못사용하게 되면 불의한 일이 됩니다.

최근에 기독교는 힘을 통하여 몇몇 것을 지키기도 했고 얻기도 했지만 보다 더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시는 바와 같이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은 12장 은사에 관한 말씀의 연장입니다.

12장 마지막에서 여러 은사들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고전 12:31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恩賜)를 사모(思慕)하라 내가 또한 제일(第一)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13장의 사랑에 관한 말씀인데 이는 사랑이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은사라는 말씀입니다.

오래 참을 수 있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게 됨이 사랑의 은사의 연고라는 말씀입니다. 은사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들은 성령의 역사로 인한 은사를 통하여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은사로 말미암지 않은 일들은 심지어 자기의 모든 것으로 구제한 일이라도 자기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 일이라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한 일이라도 무익한 일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말로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대로 하나님께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시고

주시는 은사에 따라 특히 사랑의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일을 힘껏 감당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3:1-13

1. 사랑은 어떤 은사입니까(고전12:31)

2.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무익한 일이라 하신 것 3가지만 든다면?

3. 폐하여 질것과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8절)

4.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 3가지만 기록하세요.

5. 내게 가장 있어야 할 사랑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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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은
  • 200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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