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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우리의 마음

  • 조회 : 184
  • 성경말씀 : 말라기 4:4-6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09-12

 

2021년 9월 12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말라기4:4-6

제목 : 우리의 마음

 

보이는 내가 육신이라면 보이지 않는 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마음은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이라 되어 있고,

부연하여 사람의 내면에서 성품·감정·의사·의지를 포함하는 주체로서, 마음은 지각하고 사유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며 자신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하였습니다.

마음의 구조에 대하여 ‘마음자리’는 마음의 바탕을 나타내고, ‘마음결’은 마음의 움직임을, ‘마음씀’은 마음의 발현을, ‘마음씨’는 마음의 모양을 나타낸다 하였습니다.

마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설명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이자 인간 내면세계의 중심지이며 윤리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주로 사용된 단어는 ‘레브’(leb)입니다.

1.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비밀스런 영역입니다.

잠14:10에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2.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실 수 있으신 분이라 하였습니다.

시51:10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3. 인간의 마음은 감춰져 있긴 하나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그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하였습니다.

잠 27:19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4. 기쁜 마음은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하고(잠 15:13) 건강에도 도움이 되며(잠 17:22) 육신의 생명(잠 14:30)이라고 하였습니다.

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5. 또한 마음은 지혜의 기관이자 뜻과 계획의 자리라 하였습니다.

왕상10:24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렘22:17에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6. 인간의 마음은 이미 부패하여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렘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7. 그런 가운데도 그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 하였습니다.

잠언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신약에서는 ‘누스’(nous, 롬 1:28; 7:23; 고전 1:10)나 ‘프뉴마’(pneuma, 마 26:41) 등이 마음이라고 번역되었는데,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카르디아’(kardia, 마 5:8, 28) 입니다.

‘카르디아’는 내적인 자아를 말하고, 때로는 인칭대명사처럼 사용되었으며 ‘나’를 가리키기도 하였습니다

벧전3:4에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그리고 거듭나기 전의 인간의 마음은 죄가 거하여 지배하는 장소로 악한 생각이 나오며(막 7:21) 불순종하여 회개할 줄 모르고(롬 2:5; 고후 3:14), 굳고 믿지 않으며(히 3:12) 우둔하고 어두워 있는(롬 1:21; 엡 4:18) 상태로 보았습니다.

한편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롬 8:27)인 하나님께서 인간을 새롭게 하는 사역을 시작하시는 곳도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롬 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에 대해서 길게 말씀드린 것은 말라기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의 마음을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말라기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글입니다.

말라기는 나의 천사 혹은 나의 사자라는 뜻으로 

기록연대는 포로에서 돌아온 후인데 소망적으로는 에스라 부흥운동 이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 605 여호야김3년, 597년 여호야긴 즉위년, 586년 시드기야 11년.

바벨론 귀환 – 537 스룹바벨, 458 에스라,  444 느헤미야.

아니면 느헤미야 부흥운동 이후로 볼 수 도 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하여 학개와 스가랴의 스룹바벨의 지도로 성전을 재건하였으나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약속의 백성에게 임하리라는 영광이 임하지 않고 고달픈 생활이 계속되자 그들의 신앙은 약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과 더불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형식위주의 외식주의, 십일조와 제물에 대한 속임수, 율법에 대한 무시, 심령의 강팍함 등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지 말고, 그들의 욕심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그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으로 살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도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있었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원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힐난하였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의 마음이 소망을 잃었고 믿음과 마음이 강팍하여졌고 다른 욕심으로 가득차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이르기를,   

1.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였습니까?

1: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하셨는데,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이 대답은 400년 간의 긴 침묵 후에 사도 요한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 우리가 어떻게 주를 멸시하였습니까?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3.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혔습니까?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4. 우리가 어떻게 주를 괴롭혔습니까?

2: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마음이 괴롭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오히려 역정을 내며 우리가 어떻게 주를 괴롭혔습니까 한 것입니다.

 

5. 우리가 어떻게 주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그들의 말 속에는 이만큼 하면 잘하고 충분히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6.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습니까?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너희가 한다고 다른 이들에게 내세우기는 하나 온전하게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23:23-24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하셨는데,

여기서 정의 긍휼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인데 그것들의 십일조도 하며 살아야하는데 그것들이 더 귀한 것들인데 채소의 십일조는 하고 살면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십일조는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7. 우리가 어떻게 주를 대적하였습니까?

3:13-14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였는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기억하고 너희 마음을 돌이키라 하셨습니다.

말4:4-6에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 시대도 말라기 선지자의 시대와 같은 소망 없음과 마음의 상함과 강팍함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첫째는, 말세지말 어두운 때일수록 더욱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양식이 음식이라면 마음의 양식은 말씀입니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 배가 고프고 화가나고 서로 빼앗으려 하고 남을 해하고 병이 드는 것처럼 마음의 양식을 먹지 못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 하셨으니,  다른 것으로 푯대와 등불을 삼지 말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주님의 발자국을 따라 가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아비는 아비의 마음으로 자녀는 자녀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비의 마음은 자녀를 향해야 하고, 자녀의 마음은 아비를 향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각자가 가져야 할 마음을 있다는 것과 그 마음이 향해야 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믿는 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이 저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한 심령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그토록 강팍한 말들이 나왔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이, 믿는 자들도 상처가 심한 심령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망이 없고, 사랑은 메말랐으며, 믿음은 찌르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손으로, 치유하시는 광선과 부어주시는 기름으로, 생명나무의 열매와 잎사귀를 통하여 우리의 상한 심령도 치유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엘리야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초림하신 예수님을 위하여는 세례 요한이 그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위하여는 성령 하나님께서 그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시는 일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들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들에게 향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온 세상의 마음이 주님을 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말세지말이라 온 세상의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서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먼저 믿은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온 세상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키는 일에 쓰임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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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마음
  • 2021-09-14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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