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주일오전 1부 예배

 

긍정하는 믿음

  • 성경말씀 : 누가복음 13:6-9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7-17

 

2022년 7월 17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누가복음13:6-9

제목 : 긍정하는 믿음

 

어제부터 유치부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축도를 하기 위해 갔었는데 성경학교 주제가 찾았다 하나님의 나라 이기에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니? 묻자 한 아이가 손을 들고 구름 위에요 하였고, 다른 아이는 천국에요 하였는데 한 아이는 우주 밖에요 하였습니다. 우주를 알고 우주 밖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천국은 우주라는 차원과는 다른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답을 해야 할 차례인 것 같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계신 모든 곳 이란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우주를 말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그러면 하나님은 코로나에도 계시나요?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더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그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그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 하나님이 나를 알고 사랑하신다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아주 곤혹스러운 질문을 일컬어 신정론이라고 하고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바로 이 질문을 아이가 코로나에도 하나님이 계시나요? 라는 표현으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저의 대답은 많은 설명이 더해져야 하지만 코로나에도 하나님이 계시단다 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이 오늘 설교 제목 긍정하는 믿음의 근거입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나무로서의 가치는 없고 포도열매를 맺음으로 여러 가지 주요한 식물이 됩니다.

포도나무를 심는 곳은 햇빛이 잘 드는 곳입니다. 가장 좋은 땅에다 포도나무를 심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포도나무를 들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하셨습니다.

감람나무도 감람열매와 기름을 얻기 때문에 많이 재배하는 나무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감람나무가 많이 있고 그 기름을 짜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그곳에서 마치 감람열매가 으깨어져서 기름이 나오듯이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상수리나무는 비교적 키가 큰 나무로서 열매보다는 나무 자체에 가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참나무(알론)와 테레빈나무(엘라)를 모두 상수리나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천사를 영접한 곳,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던 곳, 다윗이 골리앗과 대치하고 있던 곳, 압살롬의 머리가 걸렸던 곳의 나무를 상수리나무라 하였지만 실제로는 테레빈 

나무로 열매가 붉은 색을 띄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무화과는 이스라엘에서 흔한 나무로 무화과는 가난한 자들의 양식이 되는 열매였습니다. 

베다니가 가난한 자들의 집이고 벳바게는 무화과나무의 집이라는 뜻으로 모두 가난한 자들의 동네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주간 중에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머무셨다가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무화과 나무를 보고 시장하신지라 열매를 얻을까 하고 가셨는데 열매는 없었고 잎만 무성했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포도원의 주인이 어떤 연고인지 무화과를 포도원에 옮겨 심은 이야기입니다.

옮겨 심은지 3년째인데 올해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자 포도원지기에게 명하기를 찍어 버리라 어찌하여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하였습니다.

포도원주인이 보기에 이 무화과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는 나무이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를 좋은 땅의 포도원에 둘 이유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포도원지기는 

우선 올해에는 그대로 두어 기다려 달라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찍어 버릴 것이 아니라 한 해만 더 기회를 주라 하였습니다.

올해에 자신이 더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서 열매를 맺게 해 보겠다 하였습니다.

다음해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때에는 찍어 버리소서 하였는데 그의 마음속에는 틀림없이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하는 확신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무의 전문가로서 본래부터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문제가 있어 이리하고 있는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로젠탈 효과(Rosenthal Effect)는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로버트 로젠탈 교수가 발표한 이론입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20%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고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IQ가 높다.’라는 교사의 격려가 큰 힘이 되어 명단에 있는 학생들은 8개월 후에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훨씬 높아졌다고 합니다.

 

교회에 도움을 청하러 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배가 고프다 하며 먹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단순한 요청이 있고,

어디를 가야하는데 차비가 부족하다는 등의 사유를 말하며 도와 달라는 경우가 있고,

내가 어려우니 당신들이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며 요구하는 때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그래도 진심이 있고 더하여 살려는 의지를 말하면 주는 자의 마음이 가볍기는 합니다. 현재의 상황은 어렵지만 그래도 긍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희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제조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 General Electric Company)의 전 회장 잭 웰치(Jack Welch)는 어린 시절 사람들이 우려할 정도로 말을 심하게 더듬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웰치야, 네가 말을 더듬는 이유는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입이 그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너는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야!”라고 항상 그를 격려했었다고 합니다.

 

긍정하는 믿음은 긍정의 근거가 심리적 요인이거나 인간의 잠재력에 있지 않고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세 명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마가복음5장에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습니다. 회당장은 유대 사회에서 권위와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자신의 12살 된 딸이 죽어가자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자기 집에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간구하였습니다.

죽어가는 딸을 둔 아버지의 그 모습에서 긍정하는 믿음을 보시고 아이를 살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여름성경학교에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계시다 해서 점심 시간에 인사를 하였습니다.

만나 뵈니 코로나 전에도 최근에도 몇 번 교회에 오신 분이었는데 광고시간에 유치부 여름성경학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아이를 데리고 오셨다 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이례적이어서 사연을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하였었습니다.

“우리 애도 구원 받아야 하쟎아요” 그 말도 저를 놀라게 한 말이었습니다.

누가복음7장에서는 죽어 장사 중에 있는 한 청년을 살리셨습니다.

나인이란 성에 살고 있던 청년이었는데 그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사람들이 청년의 관을 메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고 계시니 그 뒤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하는 무리들이었을 것입니다.

죽은 자가 청년이고 그의 가족은 어머니 한 명이니 초라한 장사일 가능성이 많은데 많은 무리들이 그 장사에 함께 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 있었던 긍정성이었을 것이고 또한 그 어머니의 눈물을 보시고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1장에서는 죽어 장사 지낸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면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셨고 그 말씀대로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누군가가 죽은 자를 살리심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 긍정하는 믿음을 보시고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의 긍정이 하나님의 역사를 불러오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우리의 긍정이 충분히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긍정의 믿음에도 우리의 최선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에 비추어보아도 당연한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을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렇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였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였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났을 때에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를 숨겼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 하였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다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하였습니다.

포도원지기의 긍정의 믿음은 무화과나무를 두루 파고 거름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주인의 뜻을 거스리면서까지 주인에게 자신의 삶을 담보로 담판을 짓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이웃을 대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뇌에만 있다고 합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유롭게 한 면이 있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질병을 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타자를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사람이라면 긍정하는 믿음의 사람은 거듭난 새사람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이웃 나와 세상 사이에 계시니 이웃과 세상을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합력의 대상으로 사는 삶이 긍정의 믿음입니다.

야곱과 에서가 서로를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고 살았는데 얍복강의 기도 이후 서로를 하나님의 얼굴같이 보고 사는 것이 긍정하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심이 바로 세상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의 믿음입니다. 

다음해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포도원주인도 좋아하고 포도원지기도 힘을 얻고 많은 이들이 그 무화과 열매를 함께 먹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우리의 심령에 교회에 고난의 땅들에 이루어지길 간구합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1
  •  긍정하는 믿음
  • 2022-07-19
  • 방영철 담임목사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