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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종교개혁

  • 성경말씀 : 로마서 1:16-17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10-31

2021년 10월 31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로마서1:16-17

제목 : 종교 개혁

 

매해 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이고, 올해는 504주년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몸부림을 친 일입니다. 

주전 8세기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 있었고, 7세기 요시아의 종교개혁이 있었으며,

5세기 에스라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갈 길을 잃고 있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고 율법의 근본정신을 회복하며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으라 하심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주도하는 형식적인 신앙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었으며, 유대인들의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벗어나 유대인과 이방인이 더불어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하며 기업을 물려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새로운 각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끝내 거부하고 제 갈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믿는 종교입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습니다.

유대교와 구분하여 그리스도교라고 불렸습니다.

초대교회를 거쳐 주후 66년 경 로마 황제 네로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용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림으로 중단 되었습니다.

주후 379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화 시켰습니다.

이제 로마 제국 내에서는 기독교만 믿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갔으며 지상뿐 아니라 황제의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핍박받던 종교에서 핍박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양적으로 팽창하였고 모든 교회당이나 예배 형식들이 화려해졌고 교회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그리스도교는 1054년에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로 갈라졌습니다.

동방교회의 대표를 총대주교라고 하였고 서방교회의 대표를 교황이라 불렀습니다.

서방교회에서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자들을 프로테스탄트교, 개신교, 신교라고 불렀으며,

남은 자들을 가톡릭교 구교라 불렀습니다. 가톡릭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천주교라 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은 서방교회(Western Christianity)가 프로테스탄트교와 가톡릭교로 갈라진 사건입니다.

교황제도가 시작된 6세기부터 종교개혁의 16세기까지를 중세 천년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교는 발전한 면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부패하고 변질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14세기 초에 영국에서 존 위클리프(1320-1384)가 이러한 교회에 대한 개혁을 선포하였습니다.

위클리프의 주장은 그 이후 종교개혁자들의 추구했던 개혁의 근본이었습니다.

위클리프는 교황이나 교회가 영적 한계를 벗어나 세속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그 어떤 권위보다 성경이 우위에 있으며, 교황이라 할지라도 성경의 권위 아래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교황제도는 무너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1215년 가톨릭교회가 라테란 공의회를 통해 확정한 화체설을 부정합니다. 위클리프는 화체설을 미신이나 가현설과 다르지 않으며, 성육신을 부정하는 비성경적 가르침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4년 전 어거스틴 수도회의 수도사인 마틴 루터는 그의 나이 34세인 1517년 10월 31일 독일 마인츠의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마인츠의 신임 대주교를 향해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해 붙였습니다.

이 당시 힘이 약해진 교황은 루터를 직접 처벌하지 못하고 카예탄 추기경을 특사로 보내 루터를 심문하고 회유하려 했지만 루터는 교황보다 공의회가 더 높으며 모든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최종적인 권위는 교회가 아닌 성경이어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3대 정신 중에 하나인 ‘오직 성경으로’입니다.

루터가 사역하고 있었던 비텐베르크 어거스틴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을 위한 기도 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루터는 로마서1:17에 있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까지의 하나님의 의는 심판하고 정죄하고 벌을 내리시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었는데

탑의 체험이후 루터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의 였습니다. 이 의를 통하여 죄사함과 구원이 가능한 의 였습니다.

에베소서2:8에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사랑가운데 이루어 놓으신 의로서 루터는 이것을 ‘오직 은혜’라 하였습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예식, 성자들의 공덕 등 사람의 의가 하나님의 의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 외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구원이 없다는 말씀이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믿음’은 이 하나님의 의 즉 오직 은혜를 나의 것으로 하는데 있어 오직 믿음이 있을 뿐이지 다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고행이나 공덕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가톨릭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에 인간의 욕심이 덧붙여지거나 섞여지기 시작하였고 그것들이 부패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부패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종교개혁주일을 지내면서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서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은

첫째는 신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가치와 규범을 성경에서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카톡이나 경험이나 주식 시세표나 부동산 가격이나 진영논리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믿는 자들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후 원치 않게 생겨난 폐단이 있다면 소위 값싼 은혜, 값싼 구원입니다.

입으로 아멘, 믿습니다 만 하면 그것으로 다 된 것처럼 여기는 일입니다.

믿게 된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삶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역설적으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위해 내가 치르는 댓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문제는 믿는 자들의 도덕 윤리 차원의 문제입니다. 잘 믿기는 하는데 덕이 되지를 못해 이웃에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치 저 유대교인들이 그러했던 잘못을 되풀이 하는 듯한 그런 모습들의 문제입니다.

 

셋째는 종교개혁운동은 한 번에 그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며, 자기만을 고집하고 상대를 부정하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다원화된 세상에서 사랑을 바탕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종교개혁이후 사랑 없는 진리 싸움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교는 가장 잔인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 그 근본에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큰 틀에서 보아 종교개혁은 교황 아래에 있던 성경을 교황 위로 올려놓으려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교황과 사제들의 손에 있었던 성경을 모든 믿는 자들의 손에 있게 함으로 모든 믿는 자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함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을 읽게 되면 교황이 위인지 성경이 위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목숨을 걸고 라틴어로 된 성경을 자신들 민족의 언어로 번역 하였습니다.

어느 면에서 종교개혁은 성경번역의 역사였습니다.

피에르 발도(Pierre Waldo, 1140-1205)는 프랑스 리옹출신으로 그는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었으며 화형 당했습니다.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1384년)는 영국출신으로 영어로 성경 번역 하였고 병사 후 유골이 불태워 졌습니다.

얀 후스(Jan Hus 1369–1415)는 체코 프라하 출신으로 체코어로 성경 번역하였고 화형 당하였습니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라틴어를 쓰기에 성경을 번역할 필요는 없었지만 당시 부패한 교회를 향해 설교하다 순교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Luther, 1483~1546)는 독일출신으로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 하였습니다.

 

종교개혁 504주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려다가 화형 당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말로 된 성경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도 성경번역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이 내 자신의 신앙고백의 언어로 번역되는 일입니다.

기록된 말씀이 나의 말로 번역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심령을 울리고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삶입니다. 

그것이 종교개혁 504주년 우리의 종교개혁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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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
  • 2021-11-02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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