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주일오전 1부 예배

 

다시 초대교회로!

  • 성경말씀 : 사도행전 2:43-47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07-04

 

 

 

 

2021년 7월 4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도행전2:43-47

제목 : 다시 초대교회로

 

오늘이 2021년 하반기 첫 주일입니다.

상반기를 마치는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드리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맥추절은 칠칠절 오순절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부활절 지나고 나서 50일 정도이기 때문에 대략 6월 하순이 됩니다.

한 해의 절반을 은혜 가운데 지냈습니다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 교회는 따로 이 절기를 지키지는 않지만 기억은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대신 그 해의 표어와 지침에 관한 말씀을 다시 한 번 설교하는 예배를 드려 왔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 앞에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앞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를 뒤돌아보고 결단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올해에는 우리 모두가 서로 반갑게 악수하고 포옹하며 인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교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월 첫 째 주 주님의 성찬을 고대하며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한 몸으로 여기고 더 귀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신년 첫 주일에 말씀드린 소원이었는데 아직까지는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올해 우리에게 주시는 표어는 다시 초대교회로 이며 지침은 기사와 표적의 교회, 마음을 같이 하는 교회, 칭송을 받은 교회입니다.

지난 해에 우리 교회의 표어가 소금과 빛 되는 교회였는데 해마다 표어만 세우면 뭐하냐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표어를 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표어를 세우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이 이 땅에서는 공동체성이 있고 한 몸 됨이 있지만 마지막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철저한 개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 다녔다고 구원받고 상급 받는 것도 아니며,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철저히 단독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21:22에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네게 무슨 상관이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표어를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사명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남은 반년을 더욱 귀히 여기며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고,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으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온전한 절대적 규범의 교회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주님의 뜻을 이룬 교회입니다. 그렇지만 부분적으로 초대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들이 바라봄의 대상으로 삼고 추구하고 나가야 할 교회입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교회는 근거 있는 혹은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올해 다시 초대교회로 란 표어를 중심으로

기사와 표적이 있는 교회, 마음을 같이하는 교회, 칭송받는 교회의 지침을 세웠고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이 시대를 감당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 기사와 표적의 교회

기적과 우연의 경계선이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고 누군가에게는 우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기적이 있고 사람이 이루는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기적을 사람이 이룰수 없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이적을 하나님께 미루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 교회에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나길 원하고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기사와 표적입니다.

기적중의 기적은 하나님이 믿어지는 기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셨는데 이 말세에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 말세에 예수님을 잘 믿을 뿐 더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이웃에게 전하여 전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점점 더 수축되어 간다고 하는 이 때에 300 기드온의 용사가 세워지는 기적이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축복의 기사와 표적입니다.

올해도 계속될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국내적으로도 전세계적으로 어려운 여건이 계속될 터이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과 돕는 자들의 복이 충만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기적이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셋째는 인내의 기사와 표적입니다.

욥이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인내의 기사와 표적이었습니다.

야고보서 5:11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잘 되는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하는 삶을 살지만 한편으로 고난 가운데 믿음으로 인내하는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욥의 처와 같이 세상 사람들은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할 상황에서도 그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삶을 통하여 이루어내는 기사와 표적이 있습니다. 

 

나. 마음을 같이하는 교회

첫째는 낮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낮은 마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마음입니다.

빌립보서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신 그 마음입니다.

상선약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의 속성을 찬미한 것인데 그 속성으로 물은 상대방과 같아집니다. 낮은 곳으로 흐름으로, 막히면 돌아감으로, 더러운 것도 받아 줌으로, 어떤 그릇에도 담김으로, 바위도 뚫음으로, 폭포에서 뛰어 내림으로, 바다로 유유히 나아감으로 그러하다 하였습니다. 물을 통해서도 주님의 마음을 나타내신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주님의 낮은 마음을 갖고 있어야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부드러운 마음이어야 합니다.

굳은 마음은 형체가 고정되어 있어서 다른 마음과 같아지기가 어렵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나의 마음을 바꾸어서 상대방의 마음에 맞출 수 있어 마음이 같아질 수 있습니다.

에스겔36:26-27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셨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주의 영이 임하신 마음입니다.

성령님과 관련하여 몇 가지 권면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임하심은 기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기도가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임하심은 말씀선포와 관련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선포하던 중에 성령님의 임하심이 그러합니다.

성령님의 임하심은 말씀을 순종하는 중에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5:32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셨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말라 하셨고, 성령을 소멸치 말라 하셨으며,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 하셨습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주의 영으로 된다 하셨습니다.

에베소서4:3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임하심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 졌으면 합니다.

 

셋째는 경중을 구별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같음을 크게 무겁게 여기고 우선해야 하는데 육적인 일을 우선하고 중하게 여김으로 교회의 하나 됨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는 다면 그 외에 다른 것들은 단지 작은, 다른 것 정도로 여겨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도 선악의 문제는 있지만 이데올로기나 당파나 하는 차이는 서로가 인정하고 그런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가로막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28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다. 칭송받는 교회

첫째는 교회적으로 칭송을 받았으면 합니다.

어느 교회는 교회를 재건축할 때 그 인근 주민들로부터 상당한 반대를 받았던 교회가 있습니다. 건축과정에서의 소음 분진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앞으로 교회가 세워져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재건축 과정에서도 주변의 민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축하하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주변과 소통하며 소금과 빛의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초록가게 지역아동센터 열린교회 지역의 일에 협력함 등을 통하여 그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마을오케스트라 마을밥상 마을쉼터 등을 통하여 그 사명을 계속해 나가고자 합니다.

 

둘째는 교인들이 칭송을 받았으면 합니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저 교회 다니는 사람입니다’ 하는 말은 신용카드와 같았습니다.

교인들은 그들의 정직성과 신실함을 교회 밖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실례로 그 말로 가게에서 외상이 가능했고 거래에서 담보물이 될 수 있었고 중매 때 인정받는 이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에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며 사는 분들도 많이 있고 드러내지 않고 주님이 원하시는 착한 행실을 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문제가 개인적 차원의 경우도 있지만 한국교회적 차원의 문제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에 치우쳐 경건한 삶의 문제가 약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거듭남 구원 다음으로 이어지는 성화의 단계에 대한 애씀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좋은데 삶은 그렇지 않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하였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믿음과 행함이 구별될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우리의 삶이 믿음에 가까이 있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 쓰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점점 더 그리스도인다운 그래서 그로인해 칭찬받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내 밖에다 무엇을 하는 일,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것은 오히려 쉬울 수가 있습니다.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나를 변화시켜서 그 모습을 주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셋째는 기독교 전체가 칭송을 받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교회하면 우선 개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교회에 대해 신경 쓸 여유도 없고 그런 생각체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회는 만물위에 교회이며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이듯이 온 우주적 통전적 하나의 교회입니다.

코로나 초기에 신천지로 말미암아 많은 비난이 있었는데 세상은 신천지와 교회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사랑제일교회도 그러하였고 몇몇의 교회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세상은 어느 교회의 잘못으로 보지 않고 모든 교회의 잘못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다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교회만 잘하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잘할 수 있도록 칭찬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을 다하여 합력해야 합니다.

한 교회내의 교인들도 상하좌우 마디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교회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재난 앞에 우리들은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하나님이 실수하신 것이거나, 하나님이 선하시지 않다고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시고,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는 만족하거나 감사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지금 기도 가운데 마치 코로나19만 종식되면 천국이 올 것 같이 말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환경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합니다. 

변화된 나로서 코로나19 이후 세계를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하24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리신 역병의 심판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였는데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이스라엘이 80만 유다가 50만이었습니다. 전체인구로 하면 700만 정도 되는 숫자였습니다.

이는 다윗이 감사치 않음과 교만을 나타내는 일이었는데 이로인한 심판이었습니다.

이 역병으로 죽은 자들이 7만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윗은 회개하였고 그로 인해 역병이 그쳤습니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윗의 삶에서 세 가지 단계가 있었습니다. 이 계시적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보입니다.

첫째는 개인적으로는 회개함이었습니다. 

다윗은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 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회개와 함께 우리의 삶에서 이 미련한 일들에서 돌이킬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를 들면 일회용품을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일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공의를 세움이었습니다.

다윗은 제사를 드리는데 사용될 여브스족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과 소와 도구들을 값을 주고 사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값을 치르지 않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을 수 있음이 공의입니다.

예를 들면 약한 자를 무시하지 아니하고 나보다 약한 자의 권리가 무시됨을 보고 분노하는 일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림이었습니다.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였고 화목제는 그로 말미암는 평화로 인한 감사였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예배가 좀 더 온전해 지며, 우리의 예배가 주변인들에게 평화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러한 역사들이 이루어진다면 이 땅에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하시는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2021년 에벤에셀로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는데 남은 하반기에 여호와이레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1
  •  다시 초대교회로!
  • 2021-07-07
  • 방영철 담임목사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