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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눈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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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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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3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시편126:1-6

제목 : 눈물의 전도

초대교회 신앙의 거장 어거스틴(354년-430년) 북부 아프리카의 작은 항구 도시 히포의 감독으로 76세의 일생을 마감했던 어거스틴은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339-397)를 만나 진정한 기독교의 진리를 30세에 깨닫기까지 그는 우여곡절의 삶을 살았습니다.

때론 극심한 정욕의 삶을 살기도 하였고 때론 마니교에 심취하여 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들을 위하여 어머니 모니카는 15년동안 눈물의 기도를 쉬지 않고 드렸습니다.

43세에 기록한 참회록에서 그는 주님을 만나가는 과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계속 밤을 지새우며 눈물의 기도로 나를 덮고 있는 흑암의 세력이 걷히도록 간구했고, 나는 더욱 열심히 교회를 출석했으며 암부로시우스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4:14)을 마셨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눈물은 어거스틴 본인의 눈물로 극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집나간 탕자로 비유하면서 쏟아지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보다 의미 있는 이러한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33세의 어거스틴은 이제 또 다른 눈물을 흘려야만 했는데 열병으로 누운 지 팔일 만에 오십 육 세로 세상을 뜬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동안 부족한 자식을 위해 우셨는데 나는 이제 겨우 어머니를 위해 한 시간 남짓 울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어거스틴을 어거스틴되게 하였습니다.

눈물의 전도가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한 영혼 영혼을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 당한 고난을  우리에게 들려 주고 있습니다.

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精神)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受苦)를 넘치도록 하고 옥(獄)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고후 11:24 유대인(人)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고후 11:25

세번 태장(笞杖)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一晝夜)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危險)과 강도(强盜)의 위험과 동족(同族)의 위험과 이방인(異邦人)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曠野)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兄弟) 중(中)의 위험을 당(當)하고 고후 11:27 또 수고(受苦)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8 이 외(外)의 일은 고사(姑捨)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敎會)를 위(爲)하여 염려(念慮)하는 것이라

사도 바울이라고 이 고난들을 덤덤히 감당하였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도 바울도 아파서 울었을 것이고 힘들어서 울었을 것이고 서러워서 울었을 것이고 야속해서 울었을 것입니다.

또 지난날 자신이 바로 지금 자신을 핍박하는 저들과 같이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것을 기억하며 후회하며 울었을 것이고 그러한 자신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사명을 주신 주님을 생각하며 울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그 눈물이 떨어진 곳마다 빌립보 고린도 데살로니가 에베소 등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죽음 앞에서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멸망당할 예루살렘성 앞에서 저들을 위하여 우셨고 따로 한적한 곳에 기도하시러 가셔서 우셨을 것이고 공생애 초기에 찾아온 가족들을 모른채 하시면서 우셨을 것이고 빌라도의 총독의 뜰에서 베드로가 통곡하기전에 먼저 우셨을 것이고 십자가 위에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면서 우셨을 것입니다. 그 눈물은 우리 모두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심정으로 한 영혼 영혼들을 찾아가시기 위해 온 유대와 갈릴리를 두루 행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시며 죄인 한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 의인 99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

숫자적으로는 성립이 되지 않는 말씀이지만 실제적입니다.

저도 강단에서 보면 교회 잘 나오시는 분들이 99명 앉아 계실때의 기쁨보다 오랬만에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한 교인을 볼때 그런 마음이 들곤 합니다.

전도하려는 마음없이 신앙생활하면 무기력한 믿음이 됩니다.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더 이상 노력할 것도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게 됩니다.

그저 이미 부자가 된 사람이 무엇이 된 사람이 큰 실수하지 않아서 이미 받은 것 잘 지키며 적당히 살자 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전도하려는 마음이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도전적이 되게 하며 목표의식이 있는 신앙생활 날마다 새로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 기쁨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얼마나 기뻣던지 꿈꾸는 것 같았고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포로지에서의 귀환이지만 영적으로는 죄인들이 사단의 사슬에서 돌아오는 것에 대한 기쁨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들의 기쁨은 한 영혼이 사단의 포로에서 돌아올 때 그 기쁨이요 전도자의 기쁨이요 또한 하나님의 기쁨인 것입니다.

이 기쁨이 있기 위하여 저들에게 눈물의 씨앗을 심는 과정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큰 일을 행하신 것에 감사하면서 그들은 그간에 그 잡혀간 곳에서 하나님께 드린 눈물의 기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중에 흘린 눈물의 기도가 저들로 하여금 오늘의 기쁨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후손들에게 들려 주고자 이 노래를 만든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눈물의 씨앗을 뿌림으로 기쁨의 단을 거두는 눈물의 전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하는 과정에서 야속해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회개하며 울고 감사해서 울고 기뻐서 울고 그런 눈물들이 전도라고 하는 기쁨의 단을 만드는 것입니다.

전도는

기쁨이요

은혜를 갚는 길이요

상급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9월부터 11월 셋째주까지 영적추수하는 일에 전심전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경본문 : 시편126:1-6

1.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2. 우리의 포로를 남방시내들 같이 돌리라는 뜻은?

3.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는 뜻은?

4. 예수님께서 전도를 위하여 하신 일은?

5. 나의 영적 추수를 위하여 힘쓸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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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의 기도
  • 200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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