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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복음을 자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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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6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로마서1:8-17

제목 : 복음을 자랑합시다

우리는 지금 2000년 전의 편지를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전달자는 놀랍게도 뵈뵈라는 여인이었습니다.

물론 이 편지는 바울이 로마의 신자들에게 쓴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오고 오는 교회들에게 쓰신 것이고 오늘 그 편지를 우리가 읽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광동교회에게 쓰신 편지이기도 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편지를 쓰는 58년 쯤 이전에 누가 로마에 복음을 전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우리를 앞서 인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에도 보면

행 11: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患難)을 인(因)하여 흩어진 자(者)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道)를 유대인(人)에게만 전(傳)하는데 행 11:20 그 중(中)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人)에게도 말하여 주(主) 예수를 전파(傳播)하니

행 11:21 주(主)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主)께 돌아오더라 행 11:22

예루살렘 교회(敎會)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에 가기 전에 이미 복음이 안디옥 지방에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왔지만 그 이전에 이미 수 많은 복음의 씨앗들이 뿌려졌고 자라고 있었고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일본을 거쳐서 1885년 한국에 들어 왔는데 일본에서 이수정이란 분이 우리말로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한국최초의 교회도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한 새문안교회가 1887년에 세워지기 전에 1879년 만주에서 로스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전도를 하던 서상륜이란 분에 의해 1886년 황해도 솔내에 솔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면 우리가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경우는 아주 드믑니다. 누군가 먼저 복음을 전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분들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 때에 복음의 열매가 맺혀 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우리 뒤를 이어서 복음의 증거자들을 보내실 것을 믿으며 낙심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이 그 어려운 중에도 믿음을 지켜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 교회를 보시면서 비록 부족하지만 이 시대에 믿음을 지켜 나가고 있고 또 주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파하시는 여러 성도님들을 보시고 바울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리라 믿습니다.

마땅히 그리 되어야 할 일이지만 주변의 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에 대하여 이런 저런 연유로 고마워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하나님께 참 감사하고 있습니다.   

로마에는 이미 믿은 소수의 신자들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불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과 합력하여 그들에게 복음의 빚진 자로서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된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전 1:23에 이르신 대로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人)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異邦人)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은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한 자였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다만 무모하게 보였을 뿐이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바울에게도 예수는 부끄러운 자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그러한 예수가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바울의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 경우에 복음을 부끄러워합니까?

처음에 전도를 받아 교회를 다니는 분은 성경 찬송 가지고 다니는 것을 숨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방에 숨겨 다니기도 하고 누가 어디 가냐고 물으면 그냥 우물쭈물하면서 저기 간다고 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공공의 장소에서 식사를 할 때 식사기도 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한다던지 기도하지 않는 것처럼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봉사를 하다가도 후회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전도를 하면서 부끄러워합니다.

지하철에서 전도하는 자들에게는 눈을 찡그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도 입을 열어 한 마디도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세상의 경쟁에서 뒤쳐졌을 때 손해를 보았을 때 그 사실을 부끄러워합니다.

이 역시도 현실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만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부끄러움을 당했을 때 그렇게 한 자신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바울처럼 복음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자랑해야 하겠습니까?

복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 믿는 다는 사실을 자랑해야 하고,

내가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모든 삶을 자랑해야 합니다.

혹 내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세상적으로 보아 손해를 보든지 실패를 겪었다 할지라도 그렇게 된 사실에 대해 자랑해야 합니다.

전도의 관점에서 보면 전도하지 않는 것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 복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자랑하는 자를 주님께서도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삼상 2:30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前)에 네 집과 네 조상(祖上)의 집이 내 앞에 영영(永永)히 행(行)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決斷)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尊重)히 여기는 자(者)를 내가 존중(尊重)히 여기고 나를 멸시(蔑視)하는 자(者)를 내가 경멸(輕蔑)히 여기리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자랑하며 사는 삶이 믿음의 삶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였습니다.

이 믿음의 삶을 위하여 하박국은 갈대아인의 강한 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 냈으며,

바울은 율법주의자들과 싸웠고,

루터는 카톨릭 교권자들과 맞서 종교개혁이라는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있지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으로 자랑하며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본문 : 로마서1:8-17

1. 로마서의 저자와 수신자 전달자는 누구입니까?

2. 바울이 로마에 있는 기독신자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3. 바울의 기도에서 쉬지 않는 것은?

4.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5.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할 때는 어느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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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을 자랑합시다
  • 200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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