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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와 사극


시아버지와 사극
- 칼럼

19기 문혜영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랑이라 했나요? 나는 고부간의 갈등보다 시아버지와 다툰 일들이 더 많았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둘 사이에 다툼이 생길까, 다툼이 생기면 그 일을 수습하느라 바빴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 일들은 시아버지와 나를 더 가깝게 만들어 준 추억이 되었다. 시아버님은 관찰력이 뛰어나고 기억력도 좋으시다. 가끔 우리 집에 오시면 집안 구석 구석, 여기 저기 붙어 있는 작은 메모를, 우편물 놓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아버님 오신다고 하면, 뭐 숨겨둘거 없나 돌아보곤 했었다. 그래도 여지없이 발견되었고, 한 소리 들었다. 부담스럽고 무서운 분이었다. 그런 아버님에게 빼놓을 수 없는 소일거리가 주말 저녁에 방영되는 사극 드라마 시청이었다. 보통의 어른들이 그러하듯, 우리 아버님도 사극을 통해 역사에 관한 지식, 세상 사는 이치를 배운다 여기셨다.  
  
결혼 초 시부모님이 몹시 어려울 때, 그 분이 우리 집에 오시거나, 우리가 아버님 댁에 놀러갈 때는 대개 주말이었고, 자식의 도리며 의무인 양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사극을 보곤 하였다. 그 때 드라마가 <왕의 눈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은 좀 작가의 시각이 달라졌지만, 그즈음 사극들은 왕위 쟁탈전을 그리면서 꼭 극중에 왕인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경쟁을 부각시키곤 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왕보다 영민하면 왕은 며느리를 경계하고 어느새 며느리가 권력에 욕심을 가지고 일을 도모하는 장면들이 나올 때면 옆에 있던 애꿎은 나를 힐끗힐끗 살피셨다. 그러잖아도 대학 나온 며느리가 시부모를 우습게 여길까봐 늘 경계하셔서 맘고생 하고 있는데, 이젠 사극까지 보면서 극중 시아버지를 대적하는 며느리가 혹 내 며느리 아닌가 생각하며 살피시는 그 눈길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찾아낸 방도는 그 자리를 뜨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드라마 작가가 보여주는 대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반응할 거라고 받아들이고 계셨다. 잘난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우습게 보고 어떻게든 시아버지 대신 이 집을 며느리 맘대로 말아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 분에게는 진리로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아버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듯하다.  사람들에게는 진리처럼 자리 잡은 생각들이 있다. 주변에서 보고 겪은 일들, 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자주 본 것들을 통해서 얻게 된 삶과 사람에 대한 지식이다. 새로운 상황에 접할 때,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 습득된 우리의 지식은 그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데려다 키운 아들과 자신이 낳은 딸이 서로 좋아하게 된다던지, 데려다 키운 자식이 커서는 결국 그 집안을 망하게 한다든지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누가 입양을 한다하면 여기 저기 걱정하는 소리가 수군수군하였다. 서양 사람들에 비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입양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류의 드라마때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물론 드라마 작가가 이와 유사한 경험지식을 갖고 있었겠다. 그의 의식은 또 오랜 우리 나라의 가족 혈통 위주의 폐쇄적 전통의 뿌리에서 오는 정신적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은 자동적인 것이다. 문제는 수집된 정보에 대한 건강하고 비판적 사고의 준거가 없어 거름장치 없이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다. 그대로 수용된다는 것은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 말초적인 자극이 더 강하게 어필할 때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은 균형잡힌 인간의 필수 요건이어야 한다. 대학 시절 기독교적 세계관 공부는 내게 들어오는 정보들을 내 자신이 어떤 틀로 걸려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가르쳐주었다. 당시 <아웃 어브 아프리카>라는 멋있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때 ivf선배가 알려주었다. 감독이 남편 외의 남자와의 외도를 너무 아름답게 그려서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외도의 죄에 대해 경계심이 흐려지게 만들었다고 가르쳐주었다. 오히려 죄라고 느끼기보다는 아름다운 경험으로 동경하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그런 영화가 미치는 영향은 야동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정보가 내게 오기 전 단계에서 미리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드라마, 광고, 영화, 요즘은 뉴스기사까지. 그리고 내 안에서 정보를 수용할 때도 그것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게, 내가 선호하는대로 취사 선택하고 살짝 변형하기도 한다. 
  
이후로 늘 생각해왔다. 나의 생각과 판단은 어디로부터 습득된 것인가? 무엇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인가? 그 정보들은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 침소 봉대한 것인가? 어떤 목적 하에 왜곡된 것인가? 생각과 판단, 사고과정, 가치관, 인간관, 자연관, 세계관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내가 사고하는 것과 다른 것, 부딪히는 것은 어떤 것들인가? 부딪히고 있다면,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것으로 나의 지식을 교체할 것인가? 신앙 생활 25년동안 계속 해오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보고 실험해보고, 내 생각을 성경의 것으로 교체해가고 있다. 나의 생각을 성경적 생각으로 어렵게 교체한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은 젊은 날 훈련받고 하나님 앞에 열심인 나도 사랑하시지만, 별로 봉사도 성경묵상도 열심히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도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는 남편과 시부모님을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와 사랑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실제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판단은 어디서 습득한 것일까, 무엇에 영향을 받고 있나? 나의 세계관조차도 성경적인가? 성경적이라고 가르치는 것들이 정말 성경적인가?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삶이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 바뀌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님의 강한 은혜의 역사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게 도와주신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님 말씀을 깨닫도록 도와주셔서 우리의 생각을 바뀌게 하신다.바로 그때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살필 수 있다면 그 일은 훨씬 효과적이다. 흔히 은혜로 사람이 변한다고 할 때, 어떤 특별한 상황을 통해 우리의 삶과 생각을 짧은 시간 안에 강력하게 바꾸어 주시는데, 이때조차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포함된다. 단지 외부적 힘에 의해 짧은 시간안에 진행되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뿐이다. 사람만이 자신과 자신의 생각, 마음, 행위를 객관적 관찰의 대상으로 놓고 볼 수 있는 존재다. 나의 생각과 마음이 무엇에 영향을 받아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상당부분을 세상적 사고와 가치에 빼앗기게 된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힘써야 할 일은 만연한 세상 방식대로 생각하는 나의 생각을 찾아와야 제자리에 두는 일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세상에 만연한 생각이 반드시 옳은 생각은 아니다. 크리스쳔에게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방영철

2014-12-05 17:21

세계관을 분별하라, 안점식, 조이선교회 발행. 세계관에 대해서 좋은 견해를 제시해 준 책이었습니다. 세계관의 시작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듯 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haheehong

2014-12-13 07:33

네 부모의 세계관이 말과 행동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에게 전해지지요. 우리 특히 부모가 자신의 셰계관을 점검하고 바른 성경적 세계관을 구축해가는 일은 평생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하신 책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창조, 타락, 구속>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대학때 읽고, 최근에 다시 읽었는데도 여전히. . <하나님의 선교>와 함께요.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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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아버지와 사극
  • 2014-12-01
  • hahee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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