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주일오전 1부 예배

 

십자가에서 남기신 말씀

  • 성경말씀 : 누가복음 23:26-38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3-17

성경 : 누가복음23:26-38

제목 : 십자가에서 남기신 말씀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예수님은 그 처형장소인 골고다까지 자신이 질 십자가를 지고 가셔야 했습니다.

이 길은 약 1.5Km 정도이며 비아 돌로로사 즉 슬픔의 길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꾸 쓰러지시자 구레네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습니다.

백성과 및 예수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그리고 골고다와 무덤에까지 따랐던 여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이켜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울 수밖에 없는 때가 너희에게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골고다에 이르게 되자 집행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올렸는데 요한복음에 보면 그 때 두 손과 양발에 큰 못을 박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는 두 행악자를 처형하기 위한 십자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죄패가 붙어 있었는데 유대인의 왕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셨고 우리의 왕이시며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

 

"잠시 밖으로 나갔다오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1912317"로렌스 오츠(Lawrence Oates)가 마지막 남긴 말이라 합니다.

영국인이며 스코트의 남극 원정대 대원으로 동상에 걸린 자신의 발 때문에 일행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을 알고 탐험대 전체를 위험에 몰아넣을 수 없다고 판단, 스스로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는데 그가 눈보라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전 원정대의 대장인 스코트에게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대원들도 죽었고 기록만 남겨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로렌스 오츠에 대해서 더 이상 아는 것은 없지만 그의 마지막 말을 통해서 그가 어떤 삶을 산 사람이었을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유언을 남기게 될까요? 어떤 유언을 남기려 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여섯 시간 정도 고통을 당하시다가 운명하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일곱 말씀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간순서대로 추정하여 보면

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인데 이는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저들에 해당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 나누어서 제비 뽑아 가지려 했던 로마 군병들, 구경하는 백성들, 비웃는 관리들, 희롱하는 군인들 등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자와 같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죄를 용서 받은 자로서 타인을 용서해야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게 해를 끼친 타인을 용서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은 창조되었지만 진화론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론적 속성에서 나에게 해를 끼친자는 나의 생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에 용서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용서의 상황이 주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하는 것으로, 약자가 강자를 용서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구조를 만들려 합니다. 이것은 또다른 악입니다.

그러므로 피해를 극복하지 못한 자에게 용서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스데반도 그러하고 손양원목사님도 그 권능을 받으셨기에 그리 용서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가 용서해야 할 자들이 있는 것과 같이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할 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가 용서해야 할 일들도 있지만 그만큼 내가 용서받아야 할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용서의 과정속에서 반드시 깨닫고 경험해야 할 일들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용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만 있고 우리의 용서가 없다면 그 용서는 무효하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용서가 어렵지만 그 어려운 순간은 잠깐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라는 영화에서 누가가 곧 네로의 공연장에서 짐승과 군사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할 이들에게 한 말입니다.

아주 잠깐일 것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영원한 하나님의 품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니 그 잠깐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말씀은 네가 오늘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며 회개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함께 처형을 받고 있던 한 행악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놀랍게도 그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저들의 대화를 듣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행악자는 다른 행악자와 같이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지 않았고,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하며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였습니다.

이것은 회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회개한 자 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 행악자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오래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하니 우리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말고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미루다가 회개치 못하고, 어떤 일은 기억하지 못해서 회개하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 말씀은 여자와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며, 직접적으로는 효도입니다.

양육강식은 본능이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는 인격이고 신앙입니다.

자식사랑은 본능이지만 부모에 대한 공경은 인격이고 신앙입니다.

어느 방송을 보다 보니까 출산과정에서 뇌가 손상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야기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10살 쯤 되었는데 지능도 아주 떨어지고 거의 누워서 있어야 되는 정도이고 거기에 더해서 식도로 음식을 삼키는 기능이 안 돼서 코에다 기계장치로 죽을 밀어 넣어 먹여 주어야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니 그 애 엄마가 늘 곁에서 그 아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 주고 있는데 그래도 감사로 그래도 기쁨으로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격이나 신앙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 중심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놓으신 본능입니다. 만일 인격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그 분은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 이미 이르신 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 공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격이고 신앙입니다. 기독교는 자녀를 사랑하라는 종교가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종교입니다. 십계명의 중심에 부모 공경이 있고, 가상칠언의 말씀에도 그러합니다.

 

네 번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성도의 견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외치심이 불신앙이나 원망처럼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들리지 않고 이런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하나님 어디계십니까? 지금 여기에 있다!

하나님 나를 버리셨습니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 어찌 그리 무능하십니까? 이것이 나의 전능임을 네가 알고 있지 않느냐!

너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 내 능력이 아니라 네가 십자가를 끝까지 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능력이라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음을 의심치 말라는 말씀입니다.

 

다섯 번째 말씀은 내가 목마르다입니다.

십자가는 목마른 곳입니다. 새벽부터 긴 시간 재판이 있었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심한 채찍질이 있었습니다. 그 육신적 목마름과 함께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하신 그 목마름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와 그 구원을 위한 목마름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원하셔서 그 의를 이루시고자 하는 목마름에 들어가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불의함에 처해진 경험을 하고 나서야 의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의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자신이 혹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 불의함을 당하고 나서야 의를 찾게 됩니다.

믿는 자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목마름이 있는 자가 생명수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섯 번째 말씀은 다 이루었다 하심입니다.

테텔레스타이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하나도 이루어 놓으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십자가 자체가 실패처럼 보입니다. 십자가는 부끄러움 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훈련시키신 결과가 다 수포로 돌아간 듯 보였습니다. 갈릴리 어느 작은 지역도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이스라엘 내의 적은 무리들에게만 전달되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다 이루었다 하심은 주님께서 하실 일은 다 마치셨다는 의미입니다.

나머지는 너희들의 몫이다 부탁하심입니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말씀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 하심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떤 여정을 거친다 하여도 마지막에 이 기도를 할 수 있다면 감사할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는 다고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종명 하는 것이 이 세상의 복이라면 하나님 품으로 가는 것은 영원한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어서 그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딴 생각하고 살다가는 이 기도를 하지 못하고 마지막을 맞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항상 주님을 기억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상칠언의 말씀이 들려지는 그리고 그 말씀에 합당한 대답이 있는 앞으로 남은 우리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1
  •  십자가에서 남기신 말씀
  • 2019-03-22
  • 방영철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