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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십자가의 도

  •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1:18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3-10

성경 : 고린도전서 1:18

제목 : 십자가의 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은 히타이트 족속이 중심이었는데 이들은 앞서서 철기문화를 사용했으며 한편으론 아주 잔인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쟁에서 적국의 포로들을 뾰족한 나무에 찔러 전시하곤 하였습니다.

고대로마제국은 중범죄자들을 처형하는 방법으로 십자가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토록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십자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5:22-25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정에서 주후 51년경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정중 에베소에서 주후 55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하게 된 주요목적은 고린도교회의 여러 문제들이었습니다. 그 첫째되는 문제는 분쟁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 문제들에 대한 권면으로 제시한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는 고대 로마인들이 중죄인들을 처형하는데 썼던 도구였습니다.

처음에는 수직막대만 있었다가 후에 수평막대가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린다고 하는 것은 고통이었고, 수치였으며, 실패였고,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는 세 가지 의미의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죄로 인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처형된 한 강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23:41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어떤 형태로든 지금 우리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대부분 우리의 죄로 인한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그 강도와 같이 우리들도 그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강도와 같이 십자가를 무시하거나 억울해 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가 있었기에 그 강도는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악인 중에 가장 불행한 자는 시편73:4에 기록된 대로 죽는 순간까지 고통이 없고 힘이 있어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자입니다.

둘째는 억지로 지게 되는 십자가입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였던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 서 있다가 로마 병사에 의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그의 죄도 아니었고 그가 원하던 바도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억지로 지게 된 십자가였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십자가가 다가올 때 무조건 외면하거나 피할 일은 아닙니다.

구레네 시몬은 이 십자가를 짊으로써 초대 로마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내게 어떤 십자가가 예기치 않게 강제로 다가왔을 때 지금 당장은 내가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일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계실 수 있다는 믿음은 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나만 손해라 여기며 분해하고 억울해 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 십자가를 지면 힘이 들기는 하나 어느 정도 인정과 보상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셋째는 자원하는 십자가입니다.

내 죄로 인함도 아니고 억지로 지게 되는 것도 아니라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때로는 하나님을 위하여 때로는 이웃을 위하여 스스로 지는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아주 어려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도 이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고 지신 십자가입니다.

그 어려운 십자가를 지셨건만 고통은 고통대로 있었고, 조롱과 모욕은 계속되었으며, 기적은 없었고 죽음으로 끝난 십자가였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도를 아십니까?” 하고 접근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대순진리회 소속의 전도자들이라 합니다. 1969년 박한경(朴漢慶)이 창시한 종교입니다.

그들을 따라 갔다가 도를 알게 된 이들은 없고 대부분 조상 잘 섬겨라, 제사를 드려야 하니 비용을 내라 등의 얘기를 듣고는 그냥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6세기의 인물로 여겨지는 노자의 도덕경은 道可道 , 非常道 ; 名可名 , 非常名으로 시작합니다.

이를 신영복선생은 도라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로 풀이 했으며, 3세기의 석학 왕필은 말할 수 있는 도와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 구체적인 ) 일이나 형체를 가리키니 항상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 참된 ) 도는 말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 없다 하였습니다.

노자의 도는 이렇게 어렵지만 십자가의 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전하셨을 뿐 아니라 몸소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모르겠다는 고민은 상당부분 알기는 아는데 하기는 싫다는 경우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도란 무엇일까요?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의 길인데 주님 가신 길입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심을 통해 베들레헴에서 골고다까지 이어진 길입니다.

주님은 이 길을 가심에 있어 외롭고 쓸쓸하셨지만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와 같이 멈추시거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시지도 아니 하셨고 뒤돌아보지도 않으시고 끝까지 홀로 가신 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 하신 길입니다.

온전하게 여겨졌던 부자 청년은 근심하여 가지 못한 길이지만 허물 많았던 베드로는 끝내 따라간 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신

길입니다.

주님이 그 길을 가심으로 말미암아 새길 생명의 길이 생겨났습니다. 길은 누군가가 그 길을 감을 통하여 만들어 집니다. 주님이 만드신 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하신 그 길입니다. 우리가 따라 가야할 길입니다.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대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댓가로 인하여 온 세상의 죄가 사해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대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것이었으며 결코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찔리심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고, 그가 상하심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의 도를 알고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대속적 삶 희생적 삶을

살겠다는 결단과 행함입니다.

십자가의 도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 말씀이 이 십자가의 능력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사단 마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는 저들이 승리한줄 알고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도로 사단 마귀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능력도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무기로 삼는 자가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비밀이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의 의미를 알고, 십자가의 길을 가며, 십자가의 능력으로 끝내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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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가의 도
  • 2019-03-15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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