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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보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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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요한복음1:43:51

제목 : 보았노라

케네스 블랜차드가 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에서

이 책의 주인공 웨스 킹슬리는 회사의 중역으로 회사와 가정에서의 인간관계로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플로리다에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씨월드 해양관에서 범고래의 멋진 쇼를 보게 됩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그 쇼에서 무게 3톤이 넘는 범고래들의 멋진 쇼를 보고 어떻게 범고래로 하여금 그렇게 멋진 쇼를 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범고래 조련사인 데이브는 웨스에게 범고래와의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다르지 않으며, 멋진 쇼를 하게 만드는 비결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라고 말해줍니다.

그 이후로 그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 그리고 일에도 성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 타인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제대로 된 칭찬을 하기 위해서는 그 타인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애정이 있어야 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다른 의도를 담고 있는 칭찬은 불신의 벽만을 높이게 됩니다.


칭찬반응의 반대도 있는데 그것을 이 책에서는 '뒤통수치기 반응'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긍정적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가 중요하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정과 직장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긍정적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칭찬과 격려를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오히려 우리 삶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 반응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입니다.

되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가정과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하고 있을 때는 무관심하다가 잘못된 일이 생겼을 때만 흥분하고 질책합니다. 저는 이것을 예언자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제서야 “ 그것 봐라 내가 뭐라 그랬느냐?”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를 때 뒤통수를 치듯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뒤통수치기 반응'에 둘러싸인 환경에서는 결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열정을 바치지도 않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왜곡되고 병들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칭찬하는 은사가 있는가 아니면 뒤통수치는 은사가 있는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칭찬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나다나엘은 회의와 불신의 사람에서 예수님께 대한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셔서  나를 좇으라 하셨습니다.

빌립을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 빌립은 그 기쁨을 자신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찾아 가서 전하였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빌립이 와 보라 하며 나다나엘을 강권하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도는 바로 이 말입니다. 와 보라!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기를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평범한 말씀 같지만 이보다 더 큰 칭찬의 말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보고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칭찬이랴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당신은 참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없지 않겠습니까?

당신 참 집사답다, 당신 참 권사답다 당신 참 교사답다 하는 말은 큰 칭찬입니다.

거기에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셨는데 진실한 사람이라는 말씀이니 그런 말을 들으며 산다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무엇을 잘한다 못한다 안다 모른다 능력이 있다 없다 이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행 11:24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聖靈)과 믿음이 충만(充滿)한 자(者)라 이에 큰 무리가 주(主)께 더하더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나다나엘과 바나바는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셨습니다.

당시에 무화과 나무 아래에 앉는다는 것은 기도와 묵상을 의미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앉아 기도와 묵상을 하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고 또 무엇을 기도하고 묵상하고 있었는지도 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내가 너의 그 좋은 모습을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삼은 보았노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도된 일 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이 드러날 때 더 큰 감동이 있습니다.

예수님 보시라고 기도하고 묵상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 모습을 예수님이 보셨다 하니 나다나엘의 마음에 오히려 감동이 온 것입니다.

제가 다른 교회에 있었을 때 한 권사님과 오해가 있었습니다. 상당히 불편한 관계가 되었는데 새벽기도 때 제가 그 권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리를 마침 뒤에서 그 권사님의 시어머니가 들으셨던 모양입니다. 그 시어머니가 그 권사님에게 그 기도를 전했고 그 권사님이 마음이 풀어지셨는지 비싼 밥을 사시길래 잘 얻어먹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좋은 모습을 보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도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고전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하였음이니라

고전 16: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者)들을 알아주라 하였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다른 사람의 허물과 실수는 눈감아 주고 잊어버리고 작게 보아 주고 반대로 좋은 점 긍정적인 점 잘한 일 선한 일은 보았다 해 주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리하시기 때문입니다.

민 23:21 말씀에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悖逆)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하셨고

다윗은 시 32:1에서 허물의 사(赦)함을 얻고 그 죄(罪)의 가리움을 받은 자(者)는 복(福)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아마도 나다나엘의 기도와 묵상은 오실 메시야에 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나다나엘을 알아주시자 그는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이 고백은 베드로가 저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한참 뒤에나 하게 된 고백이었습니다.

칭찬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도구입니다.

혹 아홉 가지 허물이 보이더라도 한 가지 좋은 점이 보이거든 그것을 먼저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한 가지 칭찬이 아홉 가지 허물까지도 좋은 보석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시기 질투하는 마음으로는 남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자기 욕심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면 남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는 남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애써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이시라면 이 상황에서 무엇이라 칭찬하실까 생각하시고 그렇게 칭찬하시며 살아가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실 때에 여러분을 칭찬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 잘했다 참 잘했다 나도 너를 칭찬하노라! ”


칭찬하는 전통이 있는 광동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1. 빌립이 예수님에 대하여 나다나엘에게 증거한 내용은?

2. 이에 대한 나다나엘의 반응은?

3.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4. 예수님께 대한 나다나엘의 고백은?

5. 내가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할 대상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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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았노라
  • 200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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