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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상 얻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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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고린도전서9:24-27

제목 : 상 얻는 자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이 대회의 이름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북동쪽에 위치한 엘리스 지방의 올림피아에서 처음으로 대회가 열린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방인이나 노예 여자들은 참여할 수 없었고 오직 그리스 자유인 남자들만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근대 올림픽은 19세기 말에 보블전쟁에서 패해 낙심해 있었던 프랑스 젊은이들을 위해 프랑스의 남작 피에르 드 쿠베르탱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그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서 1894년 국제올림픽협회가 창립되었으며, 2년 뒤인 1896년 4월 6일에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제1회 현대 올림픽 경기가 개최되었습니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는 승리자에게 월계관을 주었다고 합니다.

본문의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배경도 그 당시의 올림픽의 모습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고린도교회가 처해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고민 거기에 더해서 고린도 교회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는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저 올림픽의 경기장에서 경기하고 있는 경기자들과 같이 그렇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감당하라고 권면하시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 말씀은 바울 사도 자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이와 같은 자세로 해 나가겠다는 스스로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시절을 쫒아 과실을 맺음같이 저절로 당연히 잘되어져야 할 것이 교회인 것 같은데 바울 서신에 나타난 초대교회들부터 기독교 2천년 역사속의 교회들이 그렇게 저절로 잘되지는 않고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이는 아마도 하나님 나라의 전진기지로서 교회를 대적하는 사단 마귀들의 시험과 대적이 늘 있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은혜가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사단 마귀의 시험과 대적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승리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께서는 몇 가지 권면을 하시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하였습니다.

달음질 하는 선수는 출발 신호가 나면 바로 출발해야 합니다. 누가 빨리 출발 총성이 났을 때 출발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려지기도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자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였다 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하였을 때 바로 순종하고 시작해야지 상급을 받게 됩니다.

신앙 양심이 있기 때문에 안한다고는 않는데 항상 다음에 해야지 하는 것 때문에 결국은 불순종하게 됩니다.

달음질 하는 선수는 똑바로 달려가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는 아니됩니다.

그래서 실제 운동장에서는 각 선수가 가야할 길에 선이 그어있고 그 선을 범하면 실격이 됩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벧세메스로 갔던 젖먹이 소는 법궤를 끌고 갔는데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벧세메스로 곧바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도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향해서 그렇게 가셨습니다.

우리가 이 신앙의 길을 끝까지 곧바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선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교리 혹은 신조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에는 하나님에 과한 선 예수님에 관한 선 성령님에 관한 선 교회에 관한 선 성도의 믿음과 구원에 관한 선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도 모르실거야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도 어찌 하실 수 없을 거야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공의시다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모든 것의 시작이며 마침이십니다.

이 선들은 우리가 가야할 믿음의 길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 그 선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달음질 하는 선수가 상을 받기 위해서는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아무리 처음을 잘 달렸다 해도 중간을 잘 달렸다 해도 종반을 잘 달렸다 해도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무효입니다.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저는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만 어느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 자신이 어느 분의 임종을 지켜봤는데 마지막에 가서 믿음을 부인하고 죽는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도 주님의 부름을 받고 3년간의 공생애를 잘 감당해 왔는데 마지막에 가서 그만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혹 중간에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영광의 상을 위하여 그렇게 달려가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록 이상을 넘어서던지 지역 예선의 어렵고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올림픽의 메달이 아니라 단지 참가하기 위해서도 그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4년여의 시간을 올림픽을 위해서 절제하며 훈련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체급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먹는 것을 절제하며 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기량이 있다하더라고 일단 계체량을 통과하지 못하면 경기를 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저절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씀생활이 저절로 되고 기도생활이 저절로 되고 예배 생활이 저절로 되고 구제와 봉사 생활이 저절로 된다면 성령의 열매들이 저절로 열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저녁에 늦게 자는 것을 절제해야 하고 새벽에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절제해야 합니다.

구제와 봉사를 하기 위해서도 나에게 경제적이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나를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을 절제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자신이 사도이므로 다른 사도들처럼 사도권을 다 쓸 수 있지만 복음의 열매를 위하여 절제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절제함을 통하여 상을 얻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 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의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한다 하는 말씀은 아마도 권투를 하는 모습같이 보입니다. 

권투하는 자가 허공을 쳐서는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관악중학교에서 양궁 연습하는 것을 보니 양궁 표적판의 직경 6cm의 10점 과녁은 70m 거리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목표점을 바로 조준하고 활을 당겨 10점짜리 점수를 만들어 내곤 하였습니다.

만일에 대충 과녁을 향해서 쏜다면 결코 그러한 성적을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몸의 급소들은 모두 갑옷과 방패로 가리고 오는데 단 한곳 투구로 가려지지 않은 이마를 발견하고 그곳에 물맷돌을 명중시킴으로 골리앗을 무너트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물맷돌이 갑옷에 맞았다면 골리앗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해 다윗이 오히려 해를 받았을 것입니다.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와 목표를 정확히 하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우선은 적과 아군을 분명히 구분해야 하고 적의 실재와 약점을 찾아서 공격해야 합니다.

사단 마귀도 궤계를 써서 적과 아군을 혼동케 만들고 자신의 위치와 모양을 바꾸어가며 대적해 오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파벌을 만들어서 서로 싸우게 만들었으며 유대인들로 하여금 율법에의 열심을 통하여 오히려 복음을 대적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27절 말씀에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 하셨는데 이는 이 영적 싸움의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싸움은 상대방과 하는 것이지만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경기하는 자들도 보면 결국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 선수들이 상대방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 밀의종교의 교리처럼 감추어져 있거나 신비한 것이거나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만물 속에도 깃들어 있듯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 들어있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바람직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바로 될 수 있는 길도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도 어렵고 복잡하고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저 경기하는 자들의 모습에 나타나고 있는 일들을 적용하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달려가고 그렇게 절제하며 그렇게 방향을 잡고 이 일들을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승리의 길을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이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셔서 썩어질 면류관이 아닌 썩지 아니할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본문의 수신자와 발신자는?


2. 달리는 자의 모습을 통하여 주시는 권면의 말씀은?


3. 싸우는 자의 모습을 통하여 주시는 권면의 말씀은?


4. 내가 절제해야 할 모습들은?


5. 내가 얻고자 하는 상은?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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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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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상 얻는 자
  • 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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