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주일오전 2부 예배

 

어린아이와 같이

  • 조회 : 93
  • 성경말씀 : 누가복음 18:15-17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05-01

 

2022년 5월 1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누가복음18:15-17

제목 : 어린아이와 같이

 

성경에 나오는 아이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출2장에는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이 나옵니다. 그 때 아마 6-7살쯤 되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어 미리암을 헬라어에서 마리아로 음역을 하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아므람과 요게벳이었는데 레위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지 3백년 쯤 되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숫자가 많아지자 이를 두렵게 여긴 애굽은 아주 잔인한 정책을 취했는데 이스라엘 족속의 아이가 태어날 때 남자 아이는 죽이고 여자 아이만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가 태어났기 때문에 모세는 버림을 당해야 할 처지였는데 그 부모들이 그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살릴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애굽의 여인들이 목욕하는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습니다. 애굽의 여인 중에 이 갈대상자 속의 아이를 발견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면 살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출2:4에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로 되어 있는데 그의 부모가 그리하게 했을 가능성이 많지만 미리암이 스스로 한 일이라면 참으로 기막힌 일입니다.

미리암이 그 애굽 여인에게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물었습니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이 엄청난 일을 한 부분을 잘 감당한 아이가 미리암이었습니다.

출15:21에 미리암은 출애굽시 홍해를 건너고 나서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라는 노래를 지었는데 이 노래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만든 노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미리암처럼 지혜롭고 용감했으면 좋겠습니다.

 

왕하5장에도 한 여자 아이가 나옵니다.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 들었는데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하며 편지를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였습니다.

어린 소녀라 하였으니 열 살이나 될까한 아이였을 것이고, 그가 당한 불행과 고통은 태산같이 무거웠을 터인데 아이가 그것을 감당하며 살았고, 나아만이 원수이지만 그와 그 부인과 자녀들에 대한 인간적인 긍휼함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이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이스라엘의 왕에게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아이가 나아만의 가족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의 행실이 그러하지를 못했다면 이 아이가 아무리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나아만이 이 아이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찾으러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아이들도 어려움도 이겨내고 타자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있으며,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고, 타인들에게 인정을 받는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요6장에는 오병이어 이적 기사가 나옵니다.

오병이어는 한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음식의 내용입니다.

그 아이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말씀을 나누고 있는 맨 앞자리에 앉았던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음식이 없어 걱정하는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안드레에게 내어 놓았습니다.

돌로는 떡을 만들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이 아이의 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오천 명이 먹고도 남는 풍성함을 이루셨습니다.

한 아이라고만 알려져 있는 이 아이의 헌신을 주님이 사용하시어 그와 같은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릴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행12에는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나옵니다.

이 아이는 베드로가 옥에 갇혀있고 처형당할 처지에 있었을 때에 아마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많은 이들이 합심해서 그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베드로가 쇠사슬로 묶임과 견고한 갇힘에서 놓여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집에 와서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을 때에 나가서 그의 음성을 듣고는 너무도 기쁘고 놀라와 미처 문을 열어 주지도 않고 집에 들어와 “베드로가 왔다” 고했던 아이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들은 로데를 보고 ‘네가 미쳤다’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가 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느 신문사가 요청하여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제목이 ‘기도 그리고 기도 후’ 였습니다.

로데는 기도 후에 주님께서 하신 일을 믿은 아이였습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기도하고 그리고 기도한 대로 믿고 행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에게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올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도 바쁜 삶을 강요당하고 있어 주님께로 올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어머니 품에 얼마 있지도 못하고 시설로 아침 일찍부터 가야합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되는 경쟁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나고 나서도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여기 저기 다녀야 하는 곳이 아주 많습니다.

교회에 다니다 안 다니는 아이에게 너 왜 교회 안 오니? 묻자 “교회 끊었어요”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교회도 하나의 학원처럼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 부모된 자들은 아이들이 세상의 무게에 치여 교회에 다니지 못할 구조에서 자유케 해 주는 역할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어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아이를 가리키시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하시며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하셨습니다.

엡6:4에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른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어린 아이가 갖고 있는 미숙함입니다. 인내력이 부족하든지 이해력이 부족하든지 지식이 부족하든지 경험이 부족하든지 등등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린 아이들의 순전함입니다. 정결하고, 착하고, 순진하고, 잘 믿고, 잘 받아들이고, 긍정적이고, 잘 잊고, 호기심과 기대를 품고 있고, 자주 웃고, 많은 말을 하고, 자주 행복해 하고, 미리 걱정하지 않는 모습들입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며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한계점은 극복하고 장점은 잃지 않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눅2장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기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셨는데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다 하였습니다.

12살 예수님의 말씀 중에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심이 있고, 나사렛에 이르러서는 부모님께 순종하여 받드셨다는 말씀이 있으며,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예수님을 닮아가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시127:3-5절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셨으니 이 말세지말에 우리의 믿음의 자녀들을 잘 키워야 하겠습니다. 

가슴 아픈 수치이지만 선교학에서 믿는 자가 5% 미만인 곳을 선교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 청소년들의 믿는 비율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일학교를 빼 먹는 것도 문제지만 주일학교만 다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한 아이가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보면 아주 어려운 기대이기 때문입니다. 주일학교가 아니라 주중을 포함한 교회학교 개념을 생각합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근본적으로는 아이가 자라는 곳은 가정인데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교육을 생각합니다. 교회같은 가정 가정같은 교회가 되어서 교회학교와 가정이 합력하여 한 어린 아이를 주님께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조회
  • 1
  •  어린아이와 같이
  • 2022-05-03
  • 방영철 담임목사
  • 94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