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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조회 : 3
  • 성경말씀 : 마태복음16:21-27
  • 설교자 : 방영철목사
  • 설교일 : 2024-03-10

 

2024310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태복음16:21-28

제목 : 나를 따를 것이니라

 

최근에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윤춘호, 푸른역사)를 읽었습니다.

 

178327세 조선 사대부 이승훈은 부친을 따라 북경에 갔다가 그곳에서 프랑스인 그라몽 신부에게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1784년 조선천주교회를 창립하였습니다.

천주교 선교사가 들어와 복음을 전해 교회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 백성이 외국에 가서 복음을 받고 돌아와 전도를 한 것입니다.

1885년 아펜셀러와 언더우드가 일본을 거쳐 조선에 들어올 때도 1883년 일본에서 세례를 받은 이수정이 중국어를 한글로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와서 선교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상례인데 우리나라 선교의 역사는 구교도 신교도 특별하였습니다.

조선천주교회는 기적적으로 사제도 없이 급성장을 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엄격한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 어떤 정식 외국인 사제들이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승훈은 1795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들어올 때까지 가성직제도를 운영하여 자신과 다른 10명을 임시성직자로 세웠습니다. 10명 중에 다산 정약용이 있었고 그는 이승훈의 처남이었습니다.

1800년에 서학과 천주교 남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정조가 죽고 순조가 왕이 되었는데 어린 관계로 정순왕후가 섭정을 하며 노론이 다시 득세하고 서학과 천주교 남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801년은 신유년이었습니다.

신유박해의 국문장에 서학 삼흉으로 지명된 이승훈 정약종 정약용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승훈은 배교후 참수 되었고,

정약종은 정약용의 둘째 형인데 끝내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망나니의 칼춤이 시작되었을 때에 정약종은 나지막하게 이승훈에게 말합니다.

매형, 지금이라도 회개하시고 천주님께 돌아오세요 그럼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요그 때 이승훈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합니다.

정약용은 믿음을 부인하고 장기로 유배형을 받았다가 황사영 사건으로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정약용은 국문장에서 자신은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였을 뿐 믿지는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큰형이 정약전인데 그도 믿음을 부인하고 신지도로 유배형을 받았다가 황사영 사건으로 흑산도로 유배되었고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남긴 책은 자산어보입니다.

정양용의 이복형 정약현의 사위가 충청북도 제천의 배론[舟論]에서 백서를 쓴 황사영입니다. 황사영은 장원급제를 하였는데 정조 임금이 그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그 손을 비단으로 감싸고 오랬동안 지냈다 합니다. 전도양양했던 그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형을 당했고 그의 부인은 제주도로 유배되어 관청의 노비가 되었고 두 살된 아들은 추자도로 유배 되었습니다.

 

이승훈의 배교는 수년에 걸쳐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이승훈의 세례명이 베드로입니다. 조선 교회의 초석이 되라는 뜻으로 그라몽 신부가 정해준 이름입니다.

그는 초석의 역할도 하였지만,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다, 맹세컨대 모른다, 저주 하건데 모른다 세 번 부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천주교에서 그를 더 이상 신자로 인정하지 않었을 정도였습니다.

신유박해는 믿음의 문제보다 정치적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이승훈은 이번 국문장에서 또 다시 배교를 선포해도 살아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참수형을 당하기 몇일 전 감옥에서 이승훈은 정약용이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무엇 때문인지 붓을 들어 정약용에게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여보게 다산, 방금 전에 자네는 살아남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참수형에서 유배형으로 감형될 거라지?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을 축하하네로 이 편지는 시작됩니다.

 

다산, 나는 온통 부끄럽네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고개 숙여 땅을 바라보기도 부끄럽네,

사람 얼굴을 쳐다보기는 더더욱 부끄럽다네,

나는 내가 진정으로 부끄럽네,

지금의 내 몰골이 내 처지가 그리고 지금껏 살아온 내 모든 삶이 참으로 부끄럽네,

내 신앙을 지키지도 못했고, 내 교우들을 지키지도 못했고, 내 집안을 지키지도 못했고,

내 이름을 지키지도 못했네, 내가 참으로 부끄러운 이유일세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셨을 때 베드로에게는 어떤 부끄러움이 있었을까요?

 

왜 천주를 버렸느냐고?

자네가 다시 물으니 다시 답을 함세, 힘이 들었네, 천주를 믿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

한 번 믿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어, 한 번 믿는다고 고백하면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했네 그런데 그렇지 않았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결단을 요구했네, 신앙은 그 결단과 희생과 용기를 밑거름 삼아 성장하는 것이었어, 그러나 나는 신앙이 요구하는 것을 계속 내줄 능력이 없었네, 아무나 천주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너 자신을 부인하고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겠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는 것을 믿느냐 묻고 계십니다.

 

여보게 다산, 그래도 내 마지막 양심은 지켰어,

조정이 그토록 원하던 서학 교주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고 교우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교회 조직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네,

순교자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회개를 하지도 않았네,

이번에 다시 회개했다면 나는 세 번 배교하고 세 번 회개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인데

그러면 내 인생이 너무 남루하지 않겠는가?

나는 어떻게 해도 죽을 사람이었고 그래서 회개는 어찌 보면 쉬운 선택이었네,

천주의 가르침이 진정한 진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네, 아니 그러지 않으려네,

배교자로 죽어 내가 이 세상에서 지은 죗값을 치르려 하네,

정직한 배교자로 죽어 주님 앞에 서고자 하네,

주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려고 하네, 믿는 일이 힘들었다고, 믿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하십니다.

여기서 제 목숨은 육신의 목슴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의 생명을 말씀하심입니다.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셨습니다.

 

다산, 아니 처남, 유배생활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자네의 열정과 재능이라면 어디에서든 무언가를 해 낼 걸세,

믿을 때 그랬고 배교할 때 그랬던 것처럼

자네만의 확신을 가지고 자네의 재능을 살리는 일을 할 것이라고 믿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자네가 들을 리 없지만

그래도 매형으로서, 한때의 동지로서 말하노니,

부디 부끄러움을 아시게

 

부디 부끄러움을 아시게가 이 편지의 마지막 말입니다.

그는 지금 다산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다산이 지금은 믿음을 부인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믿음이 싹이 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고, 그렇게 됨을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이 조금이라도 가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180122645세에 이승훈은 바울처럼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목 잘린 이승훈의 시신은 이틀 동안 형장에 방치되었다가 참수된 지 사흘째가 돼서야 시신을 수습해 가도 좋다는 조정의 허가가 떨어졌지만,

죽은 뒤에도 그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없었으며 역적으로 죽은 이승훈을 문중 사람들마저 조문하기를 꺼렸고,

이 땅에서의 생과 사는 물론 천상의 복락까지도 같이하기로 굳게 맹세했던 교우들도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않은 배교자의 죽음에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집안의 충직한 여종 이갑례가 그의 시신을 인천 만수동으로 운구해 매장했다 합니다.

 

이승훈은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아시게하고 있고,

주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를것이니라하시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으로 인해 고문을 당하고 멸문지화를 당하고 부인과 자식이 관노비가 되는 상황에서 믿음을 부인했다고 그것을 주님께서 나무라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삶의 자리와 같이 넉넉히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상황에서 믿음을 저버리는 일은 주님 앞에 큰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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