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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바울과 게바와 바나바

  • 조회 : 19
  • 성경말씀 : 갈라디아서2:11-13
  • 설교자 : 방영철목사
  • 설교일 : 2023-10-22

 

20231022일 주일낮 예배

성경 : 갈라디아서2:11-13

제목 : 바울과 게바와 바나바

 

갈라디아서가 언제 어디서 기록되어 누구에게 보내졌을까 하는 데에는 다소의 이론들이 있습니다.

갈라디아가 당시 로마제국의 행정개념으로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를 포함하는 의미일 수도 있고 민족개념으로 이 지역의 북쪽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를 쓴 시점도 이견이 있는데 저는 2차 전도여정 중 고린도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고 그것을 전제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 게바는 아람어이며 시몬은 히브리어이고 베드로는 헬라어입니다.

;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500km 정도의 거리이며 이방인들에게 처음 복음이 전파된 곳이고 바나바와 바울이 동역함으로 이방인이 포함된 교회가 세워진 곳이며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곳이고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교회이며 12차 전도여정을 마치고 바울이 돌아온 곳입니다.

;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의 일입니다. 이 때가 언제일까요?

; 확실한 것은 바울이 안디옥에 있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가 언제 안디옥에 있었는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제자로 공부를 하였고 주후 33년경 스데반의 순교의 자리에 있었으며, 주후 34년경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3년 정도 아라비아에 있다가 다메섹을 거쳐 회심 후 1차로 예루살렘에 갔었습니다, 그 후에 길리기아 다소에 머물다가 바나바의 요청을 받고 안디옥에 와서 안디옥 교회를 세우는데 동역하였습니다.

; 예루살렘 교회에 흉년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안디옥 교회에서 연보금을 모아 바나바와 함께 2차로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이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순교가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 요한을 데리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리고 1차 전도 여정을 떠난 것은 주후 47년 경이며 안디옥으로 돌아온 것은 49년 경입니다.

; 1차 전도여정을 마치고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돌아와 있었을 때에 사도행전15:1-2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함으로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을 찾아간 것은 49년 경으로 보입니다.

; 갈라디아서2:1에 십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는 말은 이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14년 후란 회심 후 14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 이 일에 대하여 예루살렘에서는 초대 공의회가 모였고 토론 끝에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여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는 정도만 이방인 신자들에게 지키게 하자 하는 결의를 하였고 이를 안디옥 교회에 전하기 위하여 유다와 실라를 파송하였습니다.

;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2차 전도여정을 주후 51년경에 출발하였는데 요한의 문제로 심히 다투어 바울은 실라와 함께 하였고 바나바는 요한과 함께 하였으며 바울이 안디옥으로 돌아온 때는 주후 53년 경으로 보입니다. 이 때 바나바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 바울의 3차 전도 여정은 주후 53년 경에 시작하여 58년 경에 마쳤는데 이 때는 안디옥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예루살렘으로 갔고 신약성경에서 바울이 다시 안디옥으로 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고,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자들이 안디옥에 오고, 바울과 바나바도 안디옥에 있는 가능성의 때는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후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돌아오고 나서 2차 전도여정을 출발하기 전까지 사이였을 것입니다. 즉 오늘 본문의 상황은 이 때 안디옥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뜻입니다.

;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가 그와 같은 결정을 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율법주의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오늘의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항의를 하였는데 이는 위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혹 이방인들과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 손으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장로의 유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남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고넬료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경험했기 때문이고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은 누구일까요?

; 우선 야고보는 주의 형제 야고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는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는 역할이었고, 그가 야고보서의 저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자들 그리고 할례자들이라고 불린 이들을 베드로가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갔다 하였는데 이들이 율법주의자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와서 베드로를 보고 무엇이라 한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 베드로가 두려워 한 것이 자신의 안위 때문인지 아니면 혹시 자기와 함께 식사하고 있었던 이방인 신자들이 혹 저들이 율법주의자들이어서 험한 말을 들을까 염려함에 대한 두려움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 어린 여종의 추궁에 세 번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 세 번 사랑의 고백을 하고 성령 충만하여 설교함으로 수천 명을 회개케 하였고, 애니아와 다비다 사건과 고넬료 사건을 경험하고 초대 예루살렘 공의회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베드로가 보인 행동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기 때문입니다.

; 이 상황에서 베드로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그가 야고보에게서 온 자들이 율법주의자로 지레짐작하고 확인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했다는 점입니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 그 식사 자리에 다른 유대인들도 있었고 바나바도 있었으며 그들도 베드로와 같은 행동을 했다는 뜻입니다.

;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함이 실제로 그랬다는 것인지 아니면 바울의 착각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갈2:14-16에 이르는 바울의 견해는 진리입니다.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 상황에서 베드로에 대한 바나바에 대한 바울의 착각이 있었다면 그가 11절에서 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함과 13절에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판단한 것은 바울의 실수로 보입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바울이 베드로를 대면하여 책망한 것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만일에 바울의 실수였다면 그 실수를 대면하여 책망하지 않은 베드로의 마음은 크다 할 것입니다.

 

이 상황이 실제로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정이 끝나고 율법주의 문제로 예루살렘 공의회에 갔다와서 2차 전도여정을 출발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면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 되었느니라한 바울의 판단은 마가 요한을 2차 전도여정에 참여시킬 것인지에 대한 바나바와의 논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이 논쟁은 놀랍게도 행15:39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함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회심 후 처음 예루살렘에 왔을 때 모두가 그의 회심을 의심하며 두려워하고 만나려 하지 않았을 때 바나바가 바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해 주었고(9:26-27), 길리기아 다소에 피난 가 있던 바울을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사역에 참여시킨 인물이었습니다(11:25-26).

바울은 바나바와 의견차가 있다고 해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설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바나바는 아무말 없이 마가와 함께 구브로로 떠났고 사도행전에서는 다시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바울서신 고린도전서9:6에서 바울이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골로새서4:10에서 바나바의 생질 마가라 언급한 부분이 있을 뿐입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율법주의가 끄는 힘은 남아 있어 복음 안에서의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며 그러한 일들이 복음의 전파에 방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러한 점을 강조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의 핵심은 그런 점에서 볼 때, 바로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이 되는 장()5장으로, 여기서는 율법과 죄로부터의 자유가 방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되찾은 자유는 마땅히 성령을 좇아 행함(5:16)으로 성령의 열매(5:22)를 맺을 때 그 가치를 지닌다 하였습니다. 특히 바울은 자유의 획득과 더불어 자유의 올바른 사용 즉,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5:13) 할 것을 더욱더 강조한 것은 귀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갈라디아서의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이 베드로에 대하여, 바나바에 대하여 판단한 것이 합당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조심스러운 염려가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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