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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종교개혁 그 후

  • 조회 : 21
  • 성경말씀 : 로마서1:16-17
  • 설교자 : 방영철목사
  • 설교일 : 2023-10-29

 

20231029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로마서1:16-17

제목 : 종교개혁 그 이후

 

종교개혁은 15171031일에 마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성 문에 95개조의 항의문을 게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여러 전제들이 있습니다.

우선 종교 개혁이 아니라 교회 개혁이 올바른 표현이지만 당시에 유럽 대부분이 기독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곧 종교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517년 이전부터 교회 개혁 운동은 있어 왔다는 점입니다.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 영국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

얀 후스(Jan Hus, 1372?-1415 체코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 1494-1536 영국의 종교인, 존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받아 코이네 그리스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

사보나 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 이탈리아의 도미니쿠스회 수도사·설교가·종교개혁가)와 같은 종교 개혁가들 있었습니다.

1517년 이후에도 교회개혁을 이어간 이들이 있었습니다.

필립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 독일의 개신교 인문주의자이며 종교개혁자),

토마스 뮌처(Thomas Münzer, 1489-1525, 종교개혁 시기에 활동한 독일의 급진 종교 개혁가이며 재세례파 지도자)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 1448-1526, 재세레파 지도자)

쯔빙글리(Ulrich Zwingli,1484-1531, 스위스 종교개혁가)

깔뱅(Jean Calvin 1509-1564, 스위스 종교개혁가)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 캔터베리 대주교이자 종교 개혁 시기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 개혁가)

존 녹스(John Knox, 1513-1572,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가이며 신학자이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창시자) 등이 있습니다.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은 인구 2천 정도의 작은 도시였는데 그 성문에 붙였던 항의문이 전 유럽으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교황의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었으며,

1445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로 인함이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교회의 개혁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개혁이었습니다.

기독교 교리의 개혁이면서 동시에 제도와 관습과 도덕적인 삶의 개혁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가 국교였던 중세 유럽 사회 전반의 총체적 개혁운동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개혁되어야 하며 그 개혁은 교회개혁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교회개혁에서 시작되어 사회 개혁으로 나아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세상은 구분되어야 하지만 분리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국가 영주들에 의존해서 이루어짐으로 교회가 국가에 예속되었으며 그리하여 믿음의 문제가 공적영역에서 사적영역으로 제한되었습니다.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한 내용을 다섯 솔라로 요약하였습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이 다섯 가지 모두 구원의 문제와 연관되었습니다.

후자의 네 가지는 첫 번째인 오직 성경로부터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하는 기독교의 기본 원리들입니다. 마지막은 구원 받은 자에게서만 발견되는 삶의 태도와 내용입니다.

 

오직 성경은 성경이 기독교 교리와 삶의 유일한 척도이므로 교회와 교황의 권위 위에 있는 최고의 권위임을 천명함입니다.

 

오직 믿음은 구원이 인간의 제도나 공로에 의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은혜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짐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오직 그리스도는 중세교회가 높였던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수많은 중보적 성인들을 다시 그들 자신의 자리로 내려 앉혔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은 하나님 한 분만이 인생 속에 나타나는 모든 영광의 알파와 오메가시라는 신앙고백이었고 거듭난 인생이 추구해야할 새로운 삶의 목표였습니다.

 

이 다섯 가지 오직은 모두 오직 말씀’(solum verbum)이라는 것으로 통합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와 사회와 국가 전체를 지배하는 최고의 통치자 교황을 대신하는 최고의 권위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말씀이란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기록된 말씀인 성경뿐만 아니라, 선포되는 말씀인 설교와 교회의 중추신경인 교리까지도 모두 내포하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의 인간적 전통 아래 파묻혀버린 말씀을 본래의 자리인 최고 권좌에 올려놓고, 허물어진 중세교회를 이 말씀으로 다시 세우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고 말씀이 돌아서는 곳에서 돌아설 줄 아는 교회와 성도, 바로 이것이 종교개혁의 목표였습니다.

 

이를 위해 종교개혁자들은,

첫째로 자국어 성경을 보급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권위 있는 유일한 성경은 라틴어 번역 성경, 즉 불가타(Vulgata) 역본이었습니다. 이를 읽을 수 있는 이가 제한 되었기 때문에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국어 성경을 보급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습니다.

 

둘째로 자국어 예배와 설교를 허용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이전까지는 라틴어로만 예배와 설교가 진행되었습니다.

 

셋째로 신앙고백과 신앙교육을 강조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반한 신앙고백과 신앙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이로인해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넷째로 교회가 교황으로부터 그리고 국가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습니다.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세상을 지배했었는데, 그 후 국가가 최고 권위가 되어 교회를 지배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섯 째로, 사회복지를 강조하였습니다.

 

여섯 째로, 모든 직업의 천직 개념과 근대적 경제의 발전을 도모 하였습니다.

 

칼뱅은 전통 가톨릭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노동의 가치를 인정했으며 근검절약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은 정당한 것으로 자유롭게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상인들의 이윤추구 역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러한 의식변화로 상인계층과 이들이 연계된 제후 세력이 성장한 반면, 당시 막강했던 교황권력은 쇠퇴하였습니다. 결국 이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했고,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바탕이 됐습니다.

칼뱅의 직업소명설은 자본주의 정신을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자본축적으로 인한 부의 유혹은 각종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부의 축적을 애써 숨겨온 자본가들과 영주, 제후들이 앞장서 개신교를 받아들이면서 교회는 자본주의 대안 사회가 되지 못하고 국가 자본주의에 그대로 편입되었습니다. 금욕적 신앙은 부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이것이 금욕적 신앙을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종교개혁의 역사가 유럽 근대 자본주의 사상의 기초가 됐다고 분석했습니다. 그의 역작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4)’에서는 16~17세기 종교개혁의 윤리관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태동시켰는지 논하고 있습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 금욕주의는 지속적인 직업노동을 금욕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자, 신앙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증표로 평가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 최대의 관심은 구원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는가에 대한 확신에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교황과 그 제도들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였는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도들에게는 각자의 믿음의 영역에 해당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도들은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부분이기는 하나 하나님 예정의 그림자로 지속적인 노동, 부의 창출을 통한 사회 봉사, 경건한 삶을 찾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새로운 신학의 발견이 아니라 초대교회로의 복귀였습니다.

바울의 이신칭의와 어거스틴의 은총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길은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임을 인식함입니다.

구교의 타락은 교황과 그 조직들이 이 땅에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의 모습 속에서 구교가 범했던 오류를 되풀이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들처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을 혼자만 가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고자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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