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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남은 자

  • 조회 : 35
  • 성경말씀 : 열왕기상19:13-18
  • 설교자 : 방영철목사
  • 설교일 : 2023-08-06

 

202386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열왕기상19:13-18

제목 : 남은 자

 

엘리야는 길르앗 디셉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이세벨 때입니다. 왕상17:1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슬까지 내리지 않으면 재앙입니다.

이스라엘 땅의 식물들이 지중해에서 헐몬산을 통과하며 만들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라고 동물들은 그 풀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로가 그치게 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아합과 이세벨의 죄 그리고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섬기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보입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살았고, 시냇물이 마르자 사렙다에서 특별한 밀가루와 기름을 통하여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때가 되자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벌입니다.

여호와가 하나님인지 바알이 하나님인지를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왕상18:21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 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즉 엘로힘은 의미는 최고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이라 믿으면서 바알도 하나님이라 믿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 불이 임함으로 하나님께서 징조를 보여 주셨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처형하였으며,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는 여기까지는 홀로 남은 자로서 사명의 자리를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160km 떨어진 브엘세바까지 도망을 하였습니다.

브엘세바는 일곱 우물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판 것이며, 남유다의 남쪽 경계에 있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이세벨이 두려웠는지 북이스라엘을 벗어나서 남유다의 남쪽 끝까지 도망하였고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서 자기 사환은 그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청하고 있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앞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벌인 것도 엘리야였으며, 이렇게 도망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도 엘리야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도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와같을 수 있음을 알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엘리야를 찾아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갈멜산 승리의 자리에서도 함께 해 주셨고, 로뎀 나무 아래 죽기를 청하고 있는 자리에서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일어나 먹으라하시면서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브엘세바에서 호렙까지의 거리는 350km 정도입니다. 열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40일 밤낮을 걸었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까요?

호렙산 혹은 시내산이라 불리는 이 산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받은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치적으로는 시나이 반도 남쪽 끝부분에 있습니다.

엘리야가 왜 거기로 갔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는 가능하면 이세벨로부터 멀리 피하고 싶은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야가 호렙산 굴에 들어가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도망하여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하셨습니다. 네가 도망하여 왔던 그 길을 다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호렙에서 다메섹까지는 750km 정도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남은 자로서 도망하지 말고 남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라 하셨습니다.

왕상19: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혼자 남은 줄로 여겼고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갈멜산에서 호렙까지 도망하여 왔는데, 여기까지 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시 돌아가려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습니다. 이는 숫자적인 의미보다는 필요한 이들이 남겨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 혼자가 아니다 함께 할 자들이 있다 하심입니다.

 

바울도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을 두셨다 하였습니다.

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도 말세를 말씀하셨고, 바울도 말세를 언급하셨지만 말세의 때가 우리 세대에 이렇게 시작될 줄은 알지 못했거나 부인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시인할 수 밖에 없는 여러 징조들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저는 물 심판 후에 무지개를 주시고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 하셨고, 그러나 불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벧후3:10에 물질이 불에 타져서 흩어지게 되리라 하심을 볼 때 핵폭탄과 같은 불이 임할 줄 알았는데 그런 뜨거운 불이 아니라 미지근한 불로 세상의 심판을 시작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들은 말세의 때에 남은 자들입니다.

 

한국교회는 말세의 때에 남은 교회입니다.

전 세계를 둘러보면 기독교의 종말 현상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로 시작한 유럽 기독교 문명이 쇠퇴하여 교회가 비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 어느 곳에서도 교회는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의 교회가 한국교회로부터 복음의 촛대를 이어받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중국은 보이는 교회들을 다 부수어 버렸습니다.

많은 아픔이 있지만 그래도 한국교회가 이 말세에 남은 교회입니다.

지금은 비판보다는 격려가 우선할 때입니다.

 

코로나 중 대면 예배가 금지되고 했을 때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교회의 부흥을 기대했던 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원치 않았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기대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못한 가운데 현재의 믿는 자들이 한국교회의 남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로하심으로 질병으로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 나라로 가신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세상의 사정으로 교회를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그 밖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하지 않는 이유들로 인해 교회를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우리 교회의 남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물론 남은 자의 자리가 꼭 우리교회라고 한정하여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뜻하신 자리일 것입니다.

2:12.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28: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예수님께서 벳세다 들녘에서 오병이어의 역사 후 생명의 떡에 대한 말씀을 하시자 모였던 이들이 다 떠나가고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늘 남은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은 자들은 사실은 남겨진 자들일 것입니다.

이 말세의 때에, 대한민국 한국교회, 또 우리교회의 남은 자로서 주님 오실 때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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