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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아버지의 기다림

  • 조회 : 30
  • 성경말씀 : 누가복음15:11-20
  • 설교자 : 방영철목사
  • 설교일 : 2023-08-27

 

2023827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누가복음15:11-20

제목 : 아버지의 기다림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잃은 양을 찾도록 찾은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지금 그와같이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잃은 양 한 마리도 그와 같이 찾아다니거늘 내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가는 것이 마땅함이 아니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둘째는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드라크마는 은으로 만든 동전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열 드라크마는 대개 남편으로부터 받은 결혼의 증표였다고 합니다.

단순히 한 드라크마의 가치가 아니라 열 개가 온전히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았다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렇게 찾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찾아감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찾으심입니다.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 나중에 보면 한 아들은 집을 나간 탕자였고, 한 아들은 집 안에 있는 탕자였습니다.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기 것이라 여길 만한 권한이 있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현재 살아가는 모든 것들도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 주어진 것들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것에 대하여 마치 내가 소유권이이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으며 현재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감사함이 없습니다.

;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 얼마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으면 며칠이 안 되어 재물을 다 처분해서 돈으로 바꾸어 먼 나라로 갔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요나처럼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그럴일이 아닌데 죄가 우리를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아버지의 눈길이 없는 곳에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 자신이 힘들여 모으지 않은 재물이었기에 그것을 다 쓰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얼마 못 가서 그것을 다 쓰고 이전에 있던 것마저 다 빼앗기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 그러자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는데 욥의 경우처럼 안 좋은 일은 몰려서 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 마귀가 끝내 죽음의 자리까지 몰아넣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

; 그가 비로서 궁핍하게 되었는데 이는 아버지의 집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는 당연히 여겼던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궁핍이었습니다. 주일이면 예배드릴 수 있고 성경을 읽고 싶으면 손이 닿는 곳에 성경책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 우리의 가장 큰 고통은 일상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사고로 인하여 다친 몸은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당연히 되었던 일들이 되지 않는 문제는 회복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 그 궁핍이 그로 하여금 그 나라 백성중 한 사람에게 삶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는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습니다.

; 그는 집에서도 살지 못하고 들로 보내졌으며, 유대인이면 하지 못할 일로 여기는 돼지를 치며 살아야 했습니다.

; 아버지의 집을 벗어나서 산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사진)

; 얼마나 먹을 것이 없고 배가 고팠으면 돼지 먹는 쥐엄 열매라도 먹고자 했으나 그것마저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생명 양식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양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리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아버지 집에 양식이 풍족했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의 생각 속에 아버지 집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만이었던 곳인데 이제 깨닫고 보니 그렇지 않은 것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는 없는 것만이 느껴지는데 어느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우리는 아주 많이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 이 상황이 되어서 그가 깨달은 것은 그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는 것이었습니다.

; 이제까지의 일이 권한의 문제도, 선택의 문제도 아니었고, 절차의 문제도 아니었고, 상황의 문제도 아니었으며 죄의 문제였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 우리도 많은 논리들이 있고 많은 주장이 있고 억울함이 있고 할 말이 많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질 때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 내가 죄인임을 알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교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며 겸손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께서 나를 반드시 받아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 누군가가 기독교의 진리를 비판하면서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고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무인 것 같이 보인다 했습니다.

; 그는 죄인인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리 말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며 아들이 그 과정을 통하여 변화될 것을 바라는 기다림입니다.

; 이 기다림은 아들이 유산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한 아들이 어려서부터 부모 속을 썩이고 남에게 못된 짓을 하고 살다가 교도소에 가서 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좋은 분을 만나 지난날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고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출소할 때가 가까워지자 어딘가로 가야 했는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누구도 자신을 기다려 주는 이가 없는 듯하였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생각나서 돌아갈 염치는 없지만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출소할 때가 되어 부모님 집으로 가려 하는데 혹 저를 받아주실 뜻이 있으시면 집 앞의 나무에 노란 수건을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차를 타고 가다 그 수건을 보면 다음 정거장에 내려 집으로 가고,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기차에서 초조한 마음에 너무도 두렵고 떨림으로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바라보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그 나무를 바라본 순간 늙은 부모님이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 그리하셨는지 그 나무에 온통 노란 수건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때든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혹 세상에서 잘 되었을 때에도 세상에 계속 머무르려 하지 말고 정한 때에 주님께로 돌아가야 하며, 혹 세상에서 실패하고 부끄러울 때에도 주저함 없이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이 유일하게 잘한 일은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거스림이거나, 주저함이거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2-13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변할 수 있는 것이 변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고 때로는 필요한 일입니다.

산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굴을 뚫어 통과하고 바다가 갈라져 길이 생겼을 뿐 아니라 바닷 밑으로 길을 만들기도 합니다.

노아의 홍수 후 살아남은 자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 세웠던 바벨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초고층 건물들이 수 없이 세워졌습니다.

이런 일들은 변할 수 있는 것이 변한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불에 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는 일은 변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변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보이지 않는 하늘과 땅의 근본적인 질서가 무너지는 모습들입니다.

이 세상은 더 이상 우리가 살 수도 없고 돌아갈 곳도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종말의 때에 우리들이 돌아갈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할지라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됩니다.

 

주님의 기다리심이 없다면 어떻게 종말의 통로를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기다리심이 없다면 이 광활하고 텅비어 있는 우주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1990년 보이저1호가 지구에서 60km 떨어진 곳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입니다.

이 작업에 참여하였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의 지구를 보고 창백하고 푸른 점이라 하였습니다.

 

주님의 기다리심이 있으니 우리들도 타자들을 기다려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다려 줌은 용서요 사랑입니다.

 

주님의 기다리심이 있으니 필연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주님 앞에 그래도 덜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며 오늘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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