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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2부 예배

 

우리의 화평

  • 조회 : 29
  • 성경말씀 : 에베소서2:14-22
  • 설교자 : 방영철목사
  • 설교일 : 2023-09-24

 

2023924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에베소서2:14-22

제목 : 우리의 화평

 

지난 주간에 우리 교단 총회가 있었고, 둘째 날, 수요일 밤에 에큐메니칼 예배가 있었습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 (教會一致運動)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자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화평입니다.

잠언17:1에 마른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셨습니다, 부유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화목하게 사는 것이라고 잠언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국의 이성희 증경총회장님과, 독일동아시아선교회 회장인 크리스토프 힐데브란트 아야세목사님과, 말레시아복음교회 총회장 사이먼 페트루스 마르쿠스 목사님이 각각 설교를 하셨고 세계 선교사회 선교사님들의 특송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아야세 목사님은 독일의 역사를 통한 화평을 말씀하셨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19455월 히틀러의 나찌 독일이 항복한 이후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점령지역으로 나뉘었으며, 연합국에 의해 독일이 분할된 원래 목적은 독일이 다시 결합하여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949년 외세에 의해 서방권의 서독과 공산권의 동독으로 분단되어 정부가 수립된 두 개의 독일은 서로가 독일 연방의 적법한 계승자라 주장하며 경쟁했습니다.

1961년에 베를린장벽이 세워졌습니다. 이전에는 동독도 살만해서 문제가 없었는데 동서독의 차이가 커지면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이들이 많아졌기에 세운 장벽이었고 이 벽을 넘다가 수 많은 이들이 체포되고 사살되었습니다, 1989년에 이 장벽이 무너졌으며, 1990103일 통일이 되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 한 사람이 무너진 벽 위에 올라 트럼펫으로 66장 다 감사드리세를 연주하는 장면을 자신이 보았다고 하시며, 그 때의 감격과 그러나 한편으로 통일이 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독과 동독의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씀하시며,

한반도에서 남한과 북한이 1953년 휴전 이래 지금까지 70년 동안 휴전선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씀하시며 어서 속히 종전과 평화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중간에 막힌 담이 허물어질 수 있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분단은 서로 함께 살기 싫다고 벽을 치는 일이고 그 벽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증오와 욕심이 만들어 내는 것이 전쟁입니다.

70년 동안 우리나라도 서로를 악마화하며 분단의 고통과 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또 다시 전쟁이 난다면 누가 이기던 우리 민족은 의미 없는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화평은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선과 생명을 포기하지 않음입니다.

말레시아 마르쿠스 목사님은 현재 말레시아가 이스람연합 의장국이지만 그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하며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이성희목사님은 십자가로 화평하게 하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하여,

샬롬의 역사가 있었던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가 생겨났음을 말씀하셨습니다.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그들은 하나님의 소리와 그 낯이 이전과 같지 반갑지 않았고 두려워 피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화염검이 가로막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간의 불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화로 이어졌습니다.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자신에게 오는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 하였었는데 이제는 원망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남에게서 찾으려 하며 남탓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가 아니라 네 탓이요 네 탓이요 네 큰 탓이로소이다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불화는 인간과 자연과의 불화로 이어졌습니다.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과 불화한 인간들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았다 하심인데 그런 현상들이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없다하며 인본주의로 진화론적 세계관으로 가고 있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점점 더 악화되어 서로를 수단화하고 있고 이용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무한한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극대화가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무한경쟁의 세계화이고 전쟁입니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이상 기후와 질병과 기근과 오염과 멸종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있는 그곳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화평을 이루심에 있어,

 

첫째는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심으로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하셨는데,

이는 중간에 막힌 담에 해당하는 죄의 문제를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감당하셨음을 말씀하심입니다.

십자가는 희생이고 대신 댓가를 치름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부분입니다.

 

둘째는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하셨습니다.

화평은 불화한 두 사람이 변해야 가능한 일이지 현재의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물론 두 사람이 동시에 새사람이 될 수 없기에 내가 먼저라는 당위성은 있습니다.

화평은 두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됨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우리 모두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심입니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하고 그도 변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으로 화평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것이 샬롬이며 에이레네입니다.

2:22에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셨고,

16:7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하였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함이란 그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화평의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곳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마태복음5:9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하셨습니다.

 

주님의 화평을 누구보다도 사모하였던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 1182~1226)의 기도문입니다.

그는 그 자신과 불화한 삶이었고 하나님과 타자들과도 그러하였었는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물론 이웃과 자연들과도 화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글과 그림에 보면 그가 새들에게 늑대들에게 설교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단 한 사람 교황과는 불화했는데 교황이 그를 시기 하였기 때문이었다 합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추석 명절이 이번 주 금요일입니다.

추석은 한 해의 삶에 대한 감사의 절기이기에 한 해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족들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지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데 원치 않게 명절 때 가족 간에 불화한 일이 생기거나 드러나기도 합니다.

가족은 서로를 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로인해 서로에 대한 기대와 바램이 커서 서로에 대한 요구와 기대, 실망으로 인해 관계가 남들과 만도 못해 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명절 끝에 나오는 말 가운데 다시는 오나 봐라하며 서로 안 보고 사는 집들도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막힌 담도, 형제자매들 간의 막힌 담도, 부모자식 간의 담도 헐어야 하겠습니다.

시편133편에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하셨습니다.

관계 속에 있는 두 사람이 모두 다 화목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두 사람이 모두 다 불화한 것보다는 한 사람이 불화의 짐을 자원하여 짊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역할이 몹시 힘이 드는 것이지만 주님께서 보상해 주십니다.

에서와 야곱의 갈등이 있었지만 야곱이 얍복강에서 기도 가운데 자신을 이기게 되자

그는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 은혜로 20년 갈등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되어 그 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화평의 역사가

우리의 심령 가운데, 가정 가운데, 교회 가운데,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열방 가운데 이루어 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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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화평
  • 2023-09-24
  • 방영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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