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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주님의 네 가지 질문

  • 성경말씀 : 창세기 3:8-10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10-10

 

2021년 10월 10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창세기3:8-10

제목 : 주님의 네 가지 질문

 

제가 아이들을 만나면 종종하는 말이 이다음에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으니? 입니다.

그 질문을 어렸을 때 진지하게 받았다면 저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물었습니다.

양자역학의 질문 중에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가 있습니다.

기원전 350년경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은 존재하는 부류에 속하는가? 하는 질문은 아직도 답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질문은 기계도 사유할 수 있는가?입니다.

수학의 질문 중에는 통계는 거짓말인가? 가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매트릭스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은 마귀에게 질문을 받으시고 거기에 대답을 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태복음4장의 광야에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작하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해 합당한 답을 하심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무리들과 제자들의 수많은 질문들에 답을 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2장에서는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는 질문에 답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3장에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일을 하나이까? 는 질문에 답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4장에서는 씨뿌리는 비유에 대하여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9장에서는 제자들이 우리 중에 누가 크냐? 물었고, 주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세우시며 대답하셨습니다.

마가복음11장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물으심에 요한의 세례를 들어 답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12장에서는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는 질문에 다윗의 시편110편을 들어 답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15장에서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는 빌라도의 질문에 답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10장에서는 누가 내 이웃이니이까? 라는 질문에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주로 비유와 질문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마태복음7장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질문하셨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14장에서 물에 빠져 가던 베드로의 손을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0장에서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21장에서 두 아들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22장에서 데나리온 하나를 가리키시면서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23장에서 예물과 제단 중에 어느 것이 크냐? 물으셨습니다.

마가복음3장에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물으셨습니다.

누가복음24장에서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6장에서 너희도 가려느냐?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10장에서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11장에서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13장에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14장에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21장에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물으셨습니다. 

 

저는 성경말씀을 읽다가 네 가지 질문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신 창세기 3:9의 말씀입니다. 

선악과로 인한 범죄 후에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었고 에덴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거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 것이 아니라 부끄럽더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일이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저의 기억 속에도 합당하지 않은 자리에 있었던 일들이 있었고 기억만 그러하니 기억되지 않은 일들은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을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도 오히려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끝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1편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두 번째 질문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신 창세기4:9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동생 아벨을 형 가인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아벨의 피가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인이 그리 한 이유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것은 가인의 제물이 아니라 가인 자신이었고,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아벨의 제물이 아니라 아벨의 삶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형 가인은 동생 아벨을 지켜주어야 할 자리에 있었는데 오히려 그를 해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일전에 목사님들의 모임에 갔었는데 각 교회마다 연락이 되고 있는 않는 교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있어 형편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마땅히 알고 지키고 책임져야 할 아우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에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신 마태복음16:15의 말씀입니다.

갈릴리 북쪽에 있는 가이샤라 빌립보 로마 황제의 동상이 있었을 그 앞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 질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이 동상의 황제와 같은 이로 여기고 싶은 것은 아니냐 하신 질문이기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대답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나의 주님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예수 즉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셨기에 나사렛 예수라 불리셨던 그 분이 그리스도 즉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가 구세주라는 뜻이며,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분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라는 고백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나의 주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신 신이라는 뜻입니다.

애굽 사람들에게는 애굽 사람들의 하나님이 있었고 헬라 사람들에게는 헬라 사람들의 하나님이 있었고 로마 사람들에게는 로마 사람들의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고 하였을 때 애굽 사람들은 비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는 우리의 포로인 너희 민족이 믿는 여호와라고 하는 신이 하나님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 하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 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분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는 그 분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라고 대답과 실천이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 질문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요한복음21:16의 말씀입니다.

15절에서는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 하였고, 맹세하며 모른다 하였고, 저주하며 모른다 하였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그로 하여금 다시 믿을 수 있도록 이적을 베풀어 주신 후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고,

한 번 더 물어 주셨고, 세 번까지 물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때에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고 물으실 수도 있고,

나를 믿느냐? 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거듭해서 끝까지 물으실 질문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 질문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 번 동일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하였습니다.

내가 높은 곳에 있던지 낮은 곳에 처하던지 영광의 자리에 있던지 부끄러운 자리에 있던지 넉넉한 자리에 있던지 모자라는 자리에 있던지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이 말씀에 합당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질문의 말씀과 우리의 대답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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