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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복 있는 사람

  • 성경말씀 : 시편 1:1-6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11-06

 

 

2022년 11월 6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시편 1:1-6

제목 : 복 있는 사람

 

‘아쉬레이 하이쉬’는 그 사람의 복이여! 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감탄사입니다.

‘아쉬레이’는 올바르다 번영하다의 ‘아솨르’에서 나온 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복이란 단어는 ‘바라크’와 ‘아솨르’가 있는데 ‘바라크’는 415번 정도 나옵니다. 

‘바라크’는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하여 인간의 선행과 관계없이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인하여 인간의 산업과 후손과 육체에 내려주시는 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복을 내려 주실 때 사용되거나, 

창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신적 권위를 가진 대리인에 의한 축복 선포 때 사용되었습니다.

신1:11에서 모세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습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데 그 통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사장들이요 하나는 부모들이요 하나는 나를 위해 복을 비는 자들입니다. 나를 위해 복을 비는 자들은 주로 나보다 못한 자들이어서 나에게 도움을 받았으나 갚을 길이 없을 때 하나님께 자기 대신 하나님이 갚아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아솨르’는 거의 복수 연계형인 ‘아쉬레이’로 사용되었으며 구약에 총 44번 나오는데,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대한 보상으로 내리는 복에 대하여 인간이 고백 혹은 기원하는 형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욥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70인 역에서 ‘바라크’는 ‘율로기아’로 ‘아솨르’는 ‘마카리오스’로 번역하였습니다.

‘마카리오이’ 즉 복 있는 자들이여 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팔복을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여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하는 뜻입니다.

‘하이쉬’는 그 사람이라는 뜻인데 문자적으로는 그 남자 단수 이지만 모든 인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복이라는 단어는 복수로 되어 있는데 이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말씀에 따라 사는 그 사람만이 여러 형태의 복을 누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선은 소극적으로 복 있는 자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악인들의 ‘레샤임’은 유죄한 자 즉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들인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인임이 입증된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자신들의 삶의 원리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본문은 

꾀 -‘에차’라 하였습니다. ‘에차’는 의도 도모 등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죄인들은 ‘하타임’으로 표적을 빗나가거나 길을 잃어버린다는 의미의 ‘하타’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빗나간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오만한 자들의 ‘레침’은 조롱하다 비웃다의 뜻으로 이는 그 대상이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말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악인 ‘레샤임’ 죄인 ‘하타임’ 오만한 자 ‘레침’은 혼자가 아니며 유유상종하며 무리를 짓고 살아갑니다.

이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따르지 말아야 할 자들을 따르다-‘할라크’가 그들과 함께 서-‘아마드’ 있으며 결국은 앉다-‘야솨브’로 되어 있습니다.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길로 가지 않는 자의 삶이 복 있는 자라 하였습니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소극적인 복 있는 자를 서술하였다면 적극적인 복 있는 자를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율법 - ‘베토라트 아도나이’는 모세오경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의미합니다.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하였는데 율법을 즐거워함으로 복 있는 자가 되는 것일까요, 복 있는 자이니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일까요?   

어디에서 시작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가’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움-‘�초’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워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러하니 예수님을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주야로 생각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 하심입니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냇가-‘알 팔게 마임’는 간헐천 와디가 아니라 늘 물이 있는 것과 같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늘 주어지는 삶입니다. 

나무의 속성 중에 하나는 나무는 심겨진다는 것이고, 한 번 심겨진 자리를 스스로 떠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 하였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철-‘에트’이 든 사람이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그는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나무와 같다 하였습니다. 잎을 보면 나무의 상태를 알 수 있고 나무는 잎을 통해 햇빛을 받아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병으로 사고로 잎사귀가 다 떨어지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던지 형통-‘야첼리아흐’하리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형통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겨-‘모츠’는 성경에서 무가치한 것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눅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바람에 나는 겨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인들의 삶이 대단히 견고하고 위세가 있고 모든 일이 그들의 생각대로 될 것 같지만 그들의 삶의 마지막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그 끝이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지리라 하였습니다. 

참으로 불행하고 끔찍한 일입니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한 때 악인들은 세상에 놋 성벽과 같은 견고한 진지를 세워 놓고 안심하고 자만하며 살았지만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때가 되면 죄인들이 심판을 면하기 위하여 의인들의 모임에 들려 애를 쓰지만 노아의 방주에 문이 닫히고 나자 그 문이 다시 열리지 않은 것처럼 될 것이며, 예수님도 눅16:26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말씀에서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 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요데아’하신다는 것은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하니 시139:9-10에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라’ 하였고, 시23:4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토베드’하였는데 이는 소멸하리라는 것입니다. 가다보니 그 길이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느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언제나 끝까지 주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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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 있는 사람
  • 2022-11-08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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