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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성경과 종교개혁

  • 성경말씀 : 베드로전서 1:23-25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2-10-30

 

 

2022년 10월 30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베드로전서1:23-25

제목 : 성경과 종교개혁

 

창세기12장에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스마엘과 이삭이었고 이삭의 자손은 에서와 야곱이었습니다.

야곱 때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이주하였는데 총 70명이었습니다.

400년 후 기원전 1400년 경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거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살게 됩니다.

기원전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 망하여 포로로 잡혀갔다가 기원전 536년에 포로에서 돌아오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종교가 유대교라는 틀을 갖게 된 것이 이때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경전으로 여기었으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마태복음16:16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하였고,

사도행전 11:26에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전한 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며 그 증거는 그가 부활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로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던 기독교는 후에 로마제국으로부터도 박해를 받았지만 주후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밀라노칙령으로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를 믿는 것을 허용하였으며, 주후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였습니다.

테오도시우스는 395년에 죽으면서 로마제국을 그의 두 아들에게 동서로 나누어서 통치하도록 하였습니다.

주후 476년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에 의해 무너졌지만 게르만족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였기에 프랑크왕국, 신성로마제국 등의 이름으로 기독교가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서로마제국 안에 있던 기독교를 서방 기독교라 하는데 중심은 로마 교구였습니다.

동로마제국 안에 있던 기독교를 동방 기독교라 하는데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안디옥이 동방교구였고 중심은 콘스탄티노플이었습니다. 당시까지 교회의 대표교구는 콘스탄티노플로 콘스탄티노플 주교를 총대주교라고 불렀습니다.

1054년에 단성론, 성상숭배, 필리오케 논쟁, 교회의 수위권 등으로 인해 동서 기독교가 분리되었습니다.

1453년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튀르크제국에 멸망당하면서 동로마교회의 모든 권위와 자료는 새롭게 가입된 모스코바 교구로 이동하게 되어 모스코바 교구 주교가 총대주교의 역할을 하였었고 현재는 동방 기독교의 각 교구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는 러시아 키릴대주교가 동방정교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서방 기독교를 로만 카톨릭 혹은 카톨릭이라 불렀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피핀3세가 754년에 로마 주교에게 주권과 영토가 있는 교황나라를 증정합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1/5에 해당하는 크기였습니다. 이때부터 로마 주교는 나라의 황제이며 주교인 교황이 됩니다.

이 나라가 1870년까지 유지되었는데 1870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이탈리아로 흡수되었다가 1929년 무솔리니와 교황 비오 11세의 라테라노 조약에 의해 다시 바티칸 시국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좁은 나라로 면적은 0.44km² 인구는 2019년 1,404명입니다.

 

종교개혁 운동은 서방교회의 제도인 교황권에 대한 개혁을 위해 위클리프, 롤라드, 얀 후스, 틴데일과 같은 많은 선구자들의 순교의 피 위에 일어났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교황의 면벌부 판매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95개조의 항의문을 붙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흑사병 창궐 앞에 무력한 종교의 모습, 돈을 받고 성직을 매수하거나 민중을 착취하는 등 부패한 교회, 약화된 교황의 권위 등이 배경이며, 직접적으론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 증축을 위해 '면벌부'를 판매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쇄술의 발달과 제후들의 지지로 루터의 주장이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기존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교회가 오늘날 개신교입니다.

 

종교개혁운동은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은 교회에 제한된 사건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사회전체를 개혁하는 운동이 되었습니다. 유럽이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개신교가 시작되게 되었고, 천주교 내에서도 개혁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황 바오로 3세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63)를 소집하여 교회의 부패와 신학과 교리를 재정립하려 하였습니다. 

 

반면에 영국에서는 종교개혁운동이 특이한 작용을 하였습니다.

당시 영국왕이었던 헨리8세는 1534년 수장령을 발표하여 더 이상 교황의 권위를 인정치 않았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운동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하였을 뿐입니다. 이리하여 영국에서는 성공회가 시작되었는데 성공회의 뜻은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영국의 국교가 된 성공회가 타락하자 후에 청교도라 불리었던 이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거짓된 것들을 온 마음으로 미워하는 자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지속적으로 순수한 경건을 실천하려는 열망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박해를 받게 되었고 그들 중 일부가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승무원포함 102명이 탑승하였고 그 중에 청교도는 35명이었다고 합니다.

1776년 영국에 대해서 독립을 선포한 미국은 이후 개신교 선교역사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인천항에 들어오면서 한국개신교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는 천주교에 관한 서적들로부터 자생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중에는 1603년 마테오 리치가 쓴 기독교 변증서 천주실의가 있습니다. 1784년 이승훈은 북경 북천주당에서 그라몽(Jean de Grammont, 梁棟材)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조선에 돌아오면서 십자가상, 교리서, 묵주 등의 성물들과 천주교회 문서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이벽, 정약전, 정약용 등에게 대세(代洗)를 하였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초기 천주교회의 포교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김대건은 조선 최초의 신부인데 그는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1836년 마카오로 유학(15세)을 갔으며 1844년 신부가 되어 돌아왔고(23세) 사역을 하던 중 발각되어 1846년에 순교(25세)하였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에 있어 세 가지 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입니다.

루터는 모든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최종적인 권위는 교황이나 교회가 아닌 성경이어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성경위에 교회가 있었고 그 위에 교황이 있었던 것을 성경을 가장 높은 권위로 올린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라틴어였던 성경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다가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처형당했습니다. 루터도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3대 정신 중에 하나인 ‘오직 성경으로’입니다.

 

루터가 사역하고 있었던 비텐베르크 어거스틴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을 위한 기도 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루터는 로마서1:17에 있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까지의 하나님의 의는 심판하고 정죄하고 벌을 내리시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었는데

탑의 체험이후 루터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의 였습니다. 이 의를 통하여 죄사함과 구원이 가능한 의였습니다.

에베소서2:8에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사랑가운데 이루어 놓으신 의로서 루터는 이것을 ‘오직 은혜’라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 외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구원이 없다는 말씀이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믿음’은 이 하나님의 의 즉 오직 은혜를 나의 것으로 하는데 있어 오직 믿음이 있을 뿐이지 다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면벌부를 삼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고행이나 공덕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지내면서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서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은

첫째는 신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가치와 규범을 성경에서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카톡이나 경험이나 주식 시세표나 부동산 가격이나 진영논리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믿는 자들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이후 원치 않게 생겨난 폐단이 있다면 소위 값싼 은혜, 값싼 구원입니다.

입으로 아멘, 믿습니다 만 하면 그것으로 다 된 것처럼 여기는 일입니다.

믿게 된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삶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믿는 자답게 사는 삶입니다. 

 

셋째는 종교개혁운동은 한 번에 그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운동이 과거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하신 말씀을 이루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이요 하셨고,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종교개혁적인 삶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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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과 종교개혁
  • 2022-11-01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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