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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이름

  • 성경말씀 : 요한계시록13:1-10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9-15

성경 : 요한계시록 13:1-12

제목 : 이름

창세기2:19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였습니다. 이 이름들이 계속 전해졌다면 좋았을 터인데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가 흩어지는 등 하여 각 생물의 이름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생물의 이름은 국가마다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사용할 때 어려운 점이 있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술적으로 통일된 생물의 이름이 필요한데, 이 이름을 학명이라고 하며, 학명을 표시하는 방법을 이명법이라고 합니다. 이명법은 그 생물의 속에 해당하는 이름과 종 에 해당하는 이름을 2개 사용하는 방법으로,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린네(Linne)가 고안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학명은 Homo sapiens Linne인데 Homo는 속명, sapiens는 종명, Linne는 이 학명을 처음 붙인 명명자를 나타낸다.

한일합방 직후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의 자원을 착취하기 위하여 조사를 하였습니다.

일본인 식물학자 나까이가 조사를 하여 처음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조선의 식물에는 대부분 학명에 나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강초롱에 학명을 부여한 사람은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입니다. 나카이가 한국의 식물분포를 조사하고자 했을 때, 촉탁교수로 임명하여 연구비와 인력을 지원하는 등 조사에 도움을 준 사람이 한일 병합의 주역인 조선총독부 초대공사인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였는데 하나부사의 도움으로 연구를 차질 없이 하게 된 나카이는 금강초롱에 하나부사와 자신의 이름을 붙여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라는 이름의 학명을 등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식물인 금강초롱이 학계에서는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가 된 것입니다.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이름까지 일제식으로 바꾸었습니다. 1940년 제2차세계대전을 앞둔 일제는 한반도에서의 식민통치를 한층 강화함으로써 전쟁수행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하여 한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국어말살·창씨개명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폭거를 자행하였습니다. 창씨개명으로 한국인들은 성씨를 잃고, 이름 역시 일본식 독음(讀音)을 강요받았습니다.

다니엘서에는 바벨론이 유다를 약탈하며 쓸만한 젊은이들을 잡아가서는 그 이름을 바꾼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다니엘을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호하소서라는 벨드사살로,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는 하나냐를 태양의 영감이라는 사드락으로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 누구냐의 미사엘을 아쿠신과 같은 이가 어디있느냐의 메삭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신다의 아사랴를 느고의 종이란 뜻의 아벳느고로 개명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독립 후 1946년에 내린 조선성명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에 의하여 강요된 창씨개명을 무효화함으로써 본래의 성과 이름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이름이 없는 한 누구도 그 사람을 기억하거나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이름은 인간생활은 물론 본질적인 존재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출생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나라 이름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까지는 이름에 성이 없었고 통일 신라 시대에서야 일부 집권층에 성씨가 들어왔습니다, 고려때 과거제가 시행되면서 과거를 보기 위해서는 성이 필요했고 조선시대는 양반계층에만 성과 이름이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누구나 성명을 가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에 와서의 일입니다.

크게 보아 이름이라고 할 때 그 속에는 실로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됩니다. 정식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관명을 포함해서 아명·별명이 있고, 그 밖에도 자((별호(別號시호(諡號택호· 법명(法名예명(藝名가명(假名당호(堂號) 종교명 등이 있습니다.

당호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예를 들어 신사임당은 사임당에 거하는 신씨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은 스스로 있는 자 라는 뜻의 여호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름에 새로운 이름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이름을 부르셨고 어떤 이들은 그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시몬을 베드로라 부르신 일입니다.

성경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아주 많은 이름들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이름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특별한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보니 12장에서는 큰 붉은 용을 보았는데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을 썼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였다가 미가엘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하늘에 있지 못하고 땅으로 내쫓긴 옛 뱀 곧 마귀 곧 사탄이었습니다.

13장에서는 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짐승 두 마리가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첫째 짐승의 이야기입니다. 이 짐승이 용의 권세를 가지고 용에게 경배하며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습니다.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였습니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짐승을 경배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고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통하여 되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사도 요한만이 언급한 것이 아니고 모세는 출애굽기 32:32에서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데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한 바가 있습니다.

쉰들러리스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명단에 이름이 있는 자들을 살아남게 되었고 그 이름이 없는 자들은 처형의 장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기록하는 타자기의 소리와 함께 그 이름들이 종이에 새겨지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이름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전도 대상자들의 이름과 잃은 양들의 이름입니다.

내가 그분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필연이며 그러기에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전도대상자의 책에 그리고 잃은 양의 책에 기록된다는 것도 특별한 주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니 주님의 은총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이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마치 성도들의 기도가 금향로의 연기와 함께 보좌에 올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이름들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이 되게 하시길 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1
  •  기도
  • 2019-09-25
  • 방영철
  • 1
  •  이름
  • 2019-09-18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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