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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네 사람

  • 성경말씀 : 마가복음2:1-12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10-06

성경 : 마가복음2:1-12

제목 : 네 사람

 

예수님께서 전도여행을 시작하시고 가버나움의 한 집에 계셨을 때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열병을 앓아 누워 있는 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치료하신 소문이 사방에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워 예수님께로 데려 가고자 하였습니다.

중풍병에 대해 찾아보았더니

평소 과도한 긴장, 정서적 불안정, 음식의 부절제, 과도한 노동, 음주과도, 기름진 음식의 과도섭취, 노화 등으로 인하여,

뇌의 어떤 부분에 혈액 공급량이 줄어들거나 뇌 내출혈이 일어나 생기는 병이며, 몸의 한쪽이나 양쪽 모두가 마비되며,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기가 힘들어지는 등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의 설교에 영혼의 중풍병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진부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육신의 중풍병이 들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듯이 영혼의 중풍병이 들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이 움직여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중풍이 가운데 중자에 바람풍자입니다. 그래서 중풍을 바람을 맞았다고 하는데

이 중풍병자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스스로 걸을 수는 없는 상태로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준 자가 있었을 것이고,

복음을 들은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고자 했지만 스스로는 그리할 수 없는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믿음은 들음으로 시작되고 듣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줄 사람을 찾았을 것이고 감사하게도 네 사람이 그 역할을 감당해 준 것입니다.

장례식에 상여를 쓰던 때가 있었습니다. 상여는 상여를 메는 사람의 숫자로서 품위를 구분하였으니 8인 상여, 16인 상여, 24인 상여, 32인 상여 등으로 구분되었는데 상주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그 선택권이 주어졌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상여가 사라졌지만 우선은 그 동네에 상여를 멜 사람이 없어진 것도 그 요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병원장례식장의 냉동고에서 영구차까지만 관을 옮기는데 어떤 장례식에서는 여섯 명의 운구위원조차 부족하여 난감한 때도 있습니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장례식에서 마음으로 울어줄 몇 사람과 나의 관을 옮겨줄 여섯 사람은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중풍병이 든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네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었습니다. 네 사람은 단순히 인간적인 관점의 돕는 자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하셨는데 여기서 그들이란 중풍병자와 네 사람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사람이 육신의 병이 생기면 당연히 육신의 고통으로 인하여 괴롭지만 그 육신의 고통을 간호하고 위로하는 자가 없다면 그로 인한 마음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나에게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고 더불어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람이 되어 주고 있는가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네 사람이란 연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중풍병자가 침상에 누워 있고 침상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침상을 옮기는 일이니 높이를 맞추고, 가고 섬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고 서로가 합력하여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전도서 4:12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하였습니다.

한 영혼을 주님께로, 한 잃은 양을 주님께로 인도함에 있어서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구역장이 찾아가고 선교회장이 찾아가고 또 누군가가 찾아가고 찾아간다면 그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그 집 앞으로 인도하였지만 사람들로 인하여 예수님께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네 사람들이 당연히 둘러선 사람들에게 길을 좀 내어 달라고 부탁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응해주지 않은 것입니다. 당신 사정도 딱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이니 양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황적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이기적 인간이 이타적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인데 먼저 온 그들은 나중 온 자에 대한 배려를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네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비밀의 길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것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려면 적어도 세 가지는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아무리 어려워도 이 일을 꼭 해내고 말리라는 의지와 노력입니다. 미션임파서블이라는 영화의 장면이 생각나는 모습인데 그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그 일을 생각해 냈고 또한 그 생각을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 낸 것입니다.

둘째는 중풍병자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를 참으로 사랑하지 않고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보이는 그 어떤 난관의 크기보다 그를 향한 사랑이 컸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치유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이 그들을 그리 움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21:21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라 하신 말씀이 그들의 삶 가운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 중풍병자는 중풍병과 죄사함의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지와 노력으로 사랑으로 믿음으로 우리의 전도대상자들을 잃은양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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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사람
  • 2019-10-11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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