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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교회가 세워지다

  • 성경말씀 : 사도행전2:43-47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6-16

성경 : 사도행전2:43-47

제목 : 교회가 세워지다

우리나라에 서양식 교회건물이 세워졌을 때 상당부분 고딕양식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뾰족집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하니까 교회를 연애당이라 부리기도 하였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니 예배당이라 불렀습니다. 어디가? 하면 당시에는 교회라는 말이 어색했기 때문에 예배당 가! 하곤 하였습니다.

지하철에서 두 사람이 소리를 높여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싸움이 그치질 않고 계속되자 지켜보고 있던 노 신사분이 이 사람들아 제발 좀 소리를 낮추고 싸우지들 말게 여기는 지하철이네 여기가 교횐줄 아는가?” 하였답니다. 교회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는 분이었던 모양입이다.

이런 현상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니 꼭 교회에서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벧엘의 체험을 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는 욥의 고백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에베소서는 주로 교회론을 다루고 있는데 에베소서 1:22-23에 보면

교회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만물 위의 교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 하셨습니다.

만물 위의 교회라 하셨으니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보다 위에 있어야 합니다.

위에 있는다 함은 그 권세의 높고 낮음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그 어떤 것 아래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 논리나, 경제 논리나, 특정인 혹은 특정 단체의 영향력이나, 민족이나 나라 아래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어야 교회가 있지 하는 말도 어느 맥락에서는 적용되는 부분이 있지만 옳은 말은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로마제국은 프랑크족에 의해 망했지만 교회는 망하지 않고 오히려 프랑크 족을 교화시켜 교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기독교는 철저히 일제의 논리 아래에 있었습니다.

히틀러 때에 독일의 기독교도 그러하였은데 그에 대항한 것이 고백교회였으며 그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한 분이 본 회퍼 목사님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에서 한기총은 오랫동안 정권의 논리 아래에 있던 단체였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 한기총은 그 규모에 있어 소수인 단체입니다.

미국 교회의 역사에서 백인들만 다닐 수 있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유색인종들은 함께 예배할 수 없는 교회였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그 교회 마당에서 웅크려 앉아 땅에다 글을 쓰고 계셨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아니, 예수님 어찌하여 여기 계십니까?” 묻자 안내하는 이들을 가리키시며 나는 이 교회에 들어갈 수 없다 하여서 여기 있노라하셨답니다.

그러나 만물위의 교회라는 말씀이 교회가 만물과 무관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23절에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라 하셨습니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인데 여기서 충만케 함이란 그 속성의 온전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창조섭리와 구원 섭리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머리를 그리스도로 하는 교회라 하셨습니다.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 일 때입니다.

보통 대형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교회의 크고 작음이 그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대형교회는 그 규모로 인하여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갖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반면에 군소교단이나 작은 교회는 그 장치마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회의 머리가 누구시냐의 관점입니다.

머리 되신 주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머리 되신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머리되신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머리되신 주님의 몸된 교회라 하셨습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된 교회는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뜻하시는 대로 움직여 그의 뜻을 이루는 기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 주님이 하셨던 일들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감당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약한 자들을 돕는 일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1:24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즉 주님께서 지금도 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그가 당하셨을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였습니다.

주님의 일이 영적인 일이고 주님과 관계없는 일이 육적인 일입니다. 이 경계를 분별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교회는 영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평화시의 교회가 갖고 있는 난감한 일 중에는 교회가 구조선의 본분을 하지 않고 유람선의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몸은 하나이나 그 하나는 여러 지체들의 연결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에베소서2:21-22에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으로서 교회의 지체된 교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못한 것은, 나누어져 있는 것은, 중간에 막힌 담이 있는 것은 머리 되신 주님께 큰 근심이요 고통입니다.

그러하니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과도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만 각 지체들 간에도 생명관계로 우호적으로 그리고 익숙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진리로서의 교회가 세상 속에 세워진 첫 번째 모습입니다.

교회사는 이 교회를 초대교회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초대교회는 그 이후 교회 역사 속에서 바람직한 교회의 모범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 교회도 더욱 이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훈련하신 일이 있으셨고

그 제자들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었을 때에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그들이 세상에 나가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그 증거는 그가 부활하셨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제자들과 제자들이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 의해 초대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내건데, 내 자린데, 내 권한인데 하지를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고백이 가능한데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과,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공급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기적 존재에서 이타적 존재로의 거듭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좋아하였고 귀히 여겼으며 교제하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일에 힘쓰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부부였던 하와는 아담을 자기의 죄 속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형제였던 가인은 아벨을 돌로 쳤습니다.

쌍둥이였던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속여 얻고자 하였습니다.

히키코모리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뜻인데 타인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부담스러워하며 만남 자체가 고통스러워 기피하며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병리현상을 말합니다.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문을 닫고 전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히키코모리에 의한 범죄는 때로 아무런 이유가 없이 발생한다고도 합니다.

타자를 기쁨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초대교회는 서로를 형제자매라 불렀습니다. 한 어머니의 태에서 나온 관계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서로를 그렇게 대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칭송이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까닭 없이 남을 비판하고 원망은 해도 칭송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내의 내부적 가치를 교회 밖으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섬김입니다.

그러자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올해 우리 교회에 섬기는 교회라는 사명을 주셨고 또한 새 성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적어도 우리 교회는 두 달란트 이상을 받은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교회의 진리를 잘 깨닫고 역사 속에 보여주신 초대교회의 모습을 닮아가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되어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게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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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가 세워지다
  • 2019-06-21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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