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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한 아이의 믿음

  • 성경말씀 : 열왕기하5:1-7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9-02-10

성경 : 열왕기하5:1-7

제목 : 한 아이의 믿음

 

이스라엘 북쪽에 아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리아 지역입니다.

아람은 남쪽의 블레셋과 같이 늘 이스라엘보다 강한 나라였습니다.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을 약탈하던 중에 한 어린 소녀를 사로잡아 당시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아내의 노예로 주었습니다.

나아라라는 말이 소녀이고 케타나는 작은 혹은 어린의 뜻이니 소녀 중에서도 어린 열 살, 열 한 살 정도였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께서 일제 때 끌려갔던 때의 나이가 14살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정신대 혹은 위안부 혹은 성노예라고 이름지어진 분들의 나이가 대부분 그와 같았던 점이 또 한 번의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초등학교를 졸업할 정도의 나이인데 말입니다.

나아만의 집 깊은 곳에서 꽤 살다보니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이 아람의 군대장관이요 아람 왕이 크고 존귀한 자로 여기고 있었지만 나병환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나아만의 부인을 비롯한 그 집에 안타까움과 슬픔이 서려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강하고 값비싼 갑옷을 입고 있어도 속이 썩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화살과 창은 막아낼 수 있었지만 내부로부터 진행되는 부패를 그 무엇으로도 저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아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명예로 감싸고 돈으로 두르고 화장품으로 바르고 권력으로 차단을 하려 해도

시간 속에서 부패해가는 것을 그 무엇으로도 막아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절망과 슬픔의 상황 속에서 이 아이가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그의 여주인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하였습니다.

어린 아이가 무심코 한 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아무 생각없이 한 말은 아니며 오히려 이 아이는 아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용기를 다하여 믿음의 선언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을 그 아이가 입 밖에 낸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이 지워질 수도 있고,

만일에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선지자 - 이는 엘리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에게 갔다가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게 된다면 그 책임도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의 말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출애굽 당시 가네스바네아에서 12 정탐군들이 가나안 땅을 40일간 돌아보고 와서는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음의 소리를 하였고, 나머지 10명은 믿음 없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은 여호람입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9번째 왕으로 아합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니 그의 병을 고쳐 달라는 아람왕의 편지를 받고는 자기 옷을 찢으며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였습니다.

한 어린 아이에 비해 그의 말에는 전혀 믿음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말은 철저히 믿음 없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11장에서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향해 나아가시면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하셨지만 도마와 다른 제자들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하며 비아냥거렸습니다.

대화 혹은 회의를 하다보면 믿음 없는 말들이 난무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 없는 말들은 많고 명확하고 단단하며 날카롭습니다. 반면에 믿음의 말들은 적고 공허하고 흩날리며 빈틈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상황을 구원하는 것은 믿음의 말입니다.

무책임한 말과 믿음의 말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능력입니다.

믿는 자들의 말속에서 믿음의 말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 어린 아이가 믿음의 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우선은 이 아이가 이스라엘에서 엘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보았거나 하였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지만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믿음은 보고 들음에서 납니다.

우리도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믿음의 사건들을 보고 듣고 경험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이 아이가 나아만의 부인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상황적으로는 아람과 이스라엘은 적대국이며, 아람의 군대가 약탈을 하던 중에 자신도 잡혀왔으니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 군대의 장관이 나병이 걸렸다니 천벌로 여기며 반길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나아만의 부인이 불쌍히 여겨졌기에 한 말일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처럼 믿음과 소망과 사랑도 끊어지지 않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이 아이에게 믿음의 말을 불러냈고 그들에게 소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되던 나머지 둘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됩니다.

사랑함은 믿음의 말을 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어린 아이의 믿음의 소리가 왜 나아만의 부인을 그리고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그리고 아람 왕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까요?

일반적으로 어린 아이의 말 그것도 노예로 잡혀온 아이의 말이 영향력을 일으키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이의 말은 천금처럼 무겁고 어떤 이의 말은 깃털처럼 가볍기도 합니다.

창세기19:14에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하였습니다.

이 어린 아이가 자신의 처지로 인하여 절망하고 원망하며 무너지는 보통의 모습만을 보였다면 나아만의 부인이 이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은 되어 있지 않지만 이 아이의 삶에는 상황을 넘어서는 신실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말을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이 받아들인 이유가 같았을 것입니다.

그 아이의 삶이 그의 말에 무게를 더한 것이고 그 무게는 나아만의 부인이 나아만을 움직이게 할 만큼의 무게였을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의 믿음의 말에 이와 같은 무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듣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을 움직이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고대 근동 험악한 역사의 현장에서 한 어린 아이의 믿음의 말이 이루었을 평화를 상상해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대표적인 모습이 평화입니다.

요한복음20:27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말이 믿음의 말들로 더욱 채워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들이 심어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싹이 틀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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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아이의 믿음
  • 2019-02-15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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