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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시므온의 증언

  • 성경말씀 : 누가복음2:22-35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8-12-23

성경 : 누가복음 2:22-35

제목 : 시므온의 증언

 

예수님께서 성탄 하실 즈음에 예수님의 성탄을 애타게 기다리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도 그들 중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별을 보고 성탄 하실 주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먼 길을 마다않고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여선지자는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는데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며 주님을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가 탄생하신 주님을 뵈온 인물이었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즈음하여 주님을 뵈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 중에 있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의 나타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쿠르드족 로힝야족 시리아 난민들 예멘의 난민들 팔레스타인들 등이 고난 가운데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총이 저들에게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도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시므온이라는 인물은 주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구세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주의 그리스도 즉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까?

입학이나 입사의 서류를 넣어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건강검진을 받고 진단표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치유의 날을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군대에 있는 자들은 제대 날짜를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낭만적으로 마음을 전해 놓고 그 응답을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성전건축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남북통일을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청년 때 저는 주일이 그렇게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10:37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셨으니 그렇게 주님의 날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므온에게 주셨던 말씀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구세주를 보기 전에는 죽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명자는 그 사명을 마칠 때까지 그 생명을 지켜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할 때는 아퍼서도 안 되고 죽어서도 안 된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양한 의미에서 주님을 뵙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심각하게 되돌아보아야 할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은 근동 이스라엘의 작은 도시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룩한 도성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거주한 곳이어야 합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삶이 어떤 삶일까요?

여러분의 삶에 대해서 자신은 혹은 타자들이 무어라 합니까?

문자적으로 의로움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내면적으로 곧은 것입니다 굽지 않은 것이고 이중적이지 않은 것이고 두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바른 관계입니다. 바른 관계란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는 것입니다.

경건한 삶이란 주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시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삶입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신 삶이었습니다.

어느 날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이 올 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저절로 될 것 같지만 성령의 감동에 둔감하기도 하고, 성령의 감동을 뒤로 미루기도 하고, 성령의 감동을 애써 무시하기도 함으로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왔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필연입니다. 나의 성공뿐 아니라 실패까지도 필연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무겁게 대할 수 있음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33일 되는 날에 정결예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시므온은 그 아기가 주님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감이 있고 육감이 있고 영감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10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가 주님의 그리스도임을 알아 본 것은 성령의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정보와 분석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영감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앉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하였습니다.

경험해 본 사람들의 간증인데 사람이 가장 평안할 때가 주님의 일을 마칠 때입니다.

바울의 그 유명한 고백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에서 느껴지는 평안함입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 하였으니 즉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라 하였으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주인이나 종이나 하나이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 하였습니다.

주님의 빛으로 이방인들이 구원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주의 백성들에게는 영광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부모들은 그 말들을 놀랍게 여기었습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실 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패하였습니다.

주로 교만한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 하며 교만하였을 때 패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흥하였습니다.

주로 겸손한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 하며 만물의 찌꺼기와 같이 여겼을 때 흥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4:6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셨고,

스가랴 9:9에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것이라 하셨고, 2:8에 그리스도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비방을 받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어둠속에 감추어 있던 저들의 죄를 드러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드러난 자들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찌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본문 35절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피에타라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을 앉고 있는 마리아를 조각한 작품입니다. 피에타는 슬픔 비탄이란 뜻인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가장 유명하기도 합니다.

마리아 뿐 아니라 예수님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슬픔과 비탄을 감당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과 비탄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는 이루어지며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며 하신 말씀과 같이 주님의 위로와 소망에 참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탄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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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므온의 증언
  • 2018-12-28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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