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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하나님의 의

  • 성경말씀 : 로마서1:16-17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7-10-29

성경 : 로마서1:16-17

제목 : 하나님의 의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어거스틴 수도회의 수도사인 마틴 루터는 그의 나이 34세인 15171031일 독일 마인츠의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마인츠의 신임 대주교를 향해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해 붙였습니다.

 

면죄부는 교회와 교황이 정한 법에 죄를 지었을 때 교황의 처벌을 면해 주는 것인데,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면죄부라 하지 않고 면벌부라 합니다.

이 면죄부를 왜곡하여 돈을 받고 온갖 죄를 사해 주는 증명서인 것 같이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면죄부 판매자 였던 테첼의 표현대로 동전이 궤짝에 짤랑하고 떨어지면 영혼은 그 즉시 연옥에서 천국으로 간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면죄를 파는 자와 사는 자의 욕구가 만나서 이루어낸 결과물입니다.

죄도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죄가 거듭됨으로 더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심과 같습니다.

 

테첼과 마인츠 대주교는 95조 반박문을 떼어서 로마 교황청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95조 반박문은 당시 구텐베르크에 의해 발전된 인쇄물로 인하여 전유럽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황 레오10세는 당장 루터를 파문하고 책벌하고 싶었지만 교황권이 약화되어 있었고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정치적으로 루터를 쉽게 처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교황은 카예탄 추기경을 특사로 보내 루터를 심문하고 회유하려 했지만

루터는 교황보다 공의회가 더 높으며 모든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최종적인 권위는 교회가 아닌 성경이어야 한다고 반박하였습니다.

루터는 교회와 교황이 면죄부에 대하여 무어라 하든 자신은 성경에 근거해 볼 때 자신의 주장이 옳으므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뉘우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3대 정신 중에 하나인 오직 성경으로입니다.

 

루터가 사역하고 있었던 비텐베르크 어거스틴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을 위한 기도 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루터는 로마서1:17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까지의 하나님의 의는 심판하고 정죄하고 벌을 내리시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었는데

탑의 체험이후 루터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의 였습니다.

이 의를 통하여 죄사함과 구원이 가능한 의 였습니다.

에베소서2:8에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사랑가운데 이루어 놓으신 의로서 루터는 이것을 오직 은혜라 하였습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예식 성자들의 공덕 등 사람의 의가 하나님의 의를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 외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구원이 없다는 말씀이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믿음은 이 하나님의 의 즉 오직 은혜를 나의 것으로 하는데 있어 오직 믿음이 있을 뿐이지 다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즉 면죄부를 삼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고행이나 공덕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가톨릭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에 인간의 욕심이 덧붙여지거나 섞여지기 시작하였고 그것들이 부패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이라기보다는 부패와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후 16세기 종교개혁이 진행될 당시 유럽은 참된 신앙이 회복되리라는 열정으로 가득 찼었으나 기대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사단과 마귀가 부패한 교회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앙대신에 교조주의가 열정대신에 광신이 가득차기 시작하였습니다.

가톨릭파 루터파 캘빈파 성공회파 급진종교개혁파 등이 자신들만이 정통이며 다른 곳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7세기 이 시기를 정통주의 시대라 하는데 좋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교조주의와 광신은 종교전쟁을 유발하였습니다. 물론 전쟁의 주 원인과 목적은 정치적인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가톨릭이 개신교를 핍박하는 구조를 갖는 전쟁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위그노전쟁, 영국의 청교도전쟁, 독일의 30년 전쟁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너무도 잔혹한 이 전쟁을 겪으면서 종교에 대한 혐오감이 표출되었고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 입각한 새로운 신념체계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18세기는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 프랑스 대혁명 영국의 산업혁명 유물론 진화론 등이 등장하였고 교회는 또 다른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신앙은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주의,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구하는 신비주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공동체의 신앙을 유지하려 했던 경건주의 등의 경향성을 추구하였습니다.

이 당시 가톨릭은 보수적인 신학적 정치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었고,

개신교는 새로운 상황을 인정하면서 그 가운데 자신의 전통적인 신앙체계를 재해석하는 방법을 모색해 나갔습니다.

19세기는 폭발적인 선교의 시대였으나 식민지 쟁탈전과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20세기는 1차대전, 파시즘, 나치즘, 2차대전 등을 경험하면서 인간을 통한 구원이라는 희망을 포기하게 되었고 신에게로 돌아서게 되었는데 그 형태는 종교다원주의였습니다.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통하여 각국어로 미사를 허용하였고, 동방교회와의 화해를 이루었으며, 개신교를 형제교회를 여겼고, 타종교에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 현재의 한국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교회들은 구교와 신교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의 종교개혁을 더 이상 부각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기독교의 연합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외에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지키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의 역사를 통해 주어진 교훈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첫째는 교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청결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재발견되고 재해석된 의미를 더 깊이 깨닫고 그 진리를 지키며 전파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핍박받고 순교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종교개혁운동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자기만을 고집하고 상대를 부정하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를 향해 나아가는 운동이어야 하며 초대교회가 그러하였듯이 가난하고 소외되고 약한자들 편에 서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세지말에 열방을 영육간에 먹여 살릴 수 있는 이 한국교회와 이 나라 이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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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의
  • 2017-11-02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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