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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택한 나의 그릇

  • 성경말씀 : 사도행전 9:10-19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7-08-06

성경 : 사도행전 9:10-19

제목 : 택한 나의 그릇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동시대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은 당연히 없고 초상화도 남겨 있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기록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외모가 볼품이 없었다고 합니다.

키도 작았고 머리 숱도 없었고 다리는 팔자형 이었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10:10에 고린도 교인들의 말이 바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바울을 직접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다 그 먼 거리를 걷고 또 걸어서 이동하며 전도하였으니 그의 모습이 남루하기 그지없어 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걸었고 또 걸었으며 가야할 곳에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이 전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사명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성장 배경에 대한 몇 가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의 고향은 길리기아 다소였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그럴만한 배경이 있었을 것입니다.

길리기아 다소는 당시에는 큰 규모의 도시였으나

현재는 터키의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바울의 생가라고 유적지가 있는데 정말 초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곳이 이슬람지역이 아니라 기독교 문화권이라면 베드로 대성당 같은 대단한 규모의 유적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가말리엘은 바리새파의 존경받는 최고의 학자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시민권자였다는 사실, 그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그러나 그가 가장 엄격한 유대인의 전통과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은 후에 그가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나의 삶에서 보고 듣고 알고 경험하게 하신 것들 나로 하여금 소유하게 하신 것들이 내 손에서 주님의 손으로 옮겨질 때 거룩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내 손으로 붙잡고 있는 것들 결국 내 손이 쇄하여지고 썩어지면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바울의 삶은 다메섹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때가 되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소위 사울이 바울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 되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 관계로 보면 사울이라는 유대식 이름이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바뀐것입니다. 의미상으로 보면 사울이라는 유대교인이 바울이라는 기독교인으로 바뀐것입니다. 사울이라는 한 개인이 바울이라는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어떤 의미에서 사울이 바울 되는 변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아나니아의 대화를 통하여 그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나의 택한 그릇이라 하셨습니다.

이제까지의 그의 모든 삶이 바울이라는 그릇을 만드시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제는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전하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첫째 그가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가 그 고난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박해하는 자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전도자 김익두 목사님도 그러 하였고,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고도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데반을 돌로 치는 무리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성령으로 충만케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지만 주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삼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자 그가 괴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전의 바울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고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서도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대개 보는 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비늘 같은 것에 그려져 있는 것만 보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가 다시 보게 되자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하늘이 열리고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게 되자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고, 그의 영혼을 주님께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평생 주님의 발자국을 볼 수 있었고 그 길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소위 123차 전도여행을 통하여 20년 동안 약 2km의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도 평생 많은 걸음을 걸어왔는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걸은 걸음은 얼마나 되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대개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복음이 전파된 곳에 구원의 역사와 함께 그 나라 그 민족이 진보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그가 비두니아로 가지 아니하고 마게도냐로 감으로 인해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고 오늘날 유럽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약성경의 상당부분을 기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에는 뜻밖의 안타까운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 네로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처형을 기다리는 감옥에 있습니다.

4:11에 누가만 나와함께 있느니라, 4:16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4:21에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참수형이란 칼이나 도끼 등으로 목을 쳐서 처형하는 방법인데 처형하는 방법으로 말한다면

고통을 가장 덜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형이나 다른 참담한 처형은 면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 결코 실패나 후회는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의 여정이나 그의 서신서에는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후회가 없습니다

4:6-8에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칭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란 말 아포스톨로스는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우리의 남은 삶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내시는 곳을 가는 사도적 삶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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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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