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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주의 은혜의 해

  • 성경말씀 : 누가복음4:16-21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7-03-26

성경 : 누가복음4:16-21

제목 : 주의 은혜의 해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면

3.1운동은 191931일 서울의 파고다공원과 태화관, 그리고 전국 9개 지역에서독립선언서를 선포하면서 시작하여, 그 뒤 1년여에 걸쳐 우리나라 안과 만주·연해주 등 해외에까지 확산된 거족적인 항일민족독립운동입니다.

일제의 불확실한 통계지만, 1919351,542회에 202만 명, 전국 218개 군 가운데 212개 군, 사망자 7,509, 부상자 15,961(45,562), 피검된 자 46,948(49,811), 가옥 소실(燒失) 724, 교회당 소실 59, 학교 소실 2개로 나와 있습니다.

이 운동은 19108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후 실의와 좌절 속에 빠져 있던 한국민에게 민족 독립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소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3.1운동을 계기로 한민족사에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첫째, 한성·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와 함께 상해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그 해 411일 창건되었습니다.

둘째,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항일무장독립투쟁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국내의 민족운동에도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는데, 한국인의 고등교육을 위한 민립대학기성회의 조직을 비롯하여 한국산 물품 애용과 근검·절제운동 등의 실력양성운동을 일으켜 백성을 깨우치고 독립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넷째, 항일독립운동 못지않게 민주민족운동사상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그것은 왕정이 아니라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정'을 추구한 것입니다.

 

강점 후 일제는 한국민을 두고 나라를 빼앗기고도 분통해 하지 않는 나약한 열등민족이라고 했는가 하면,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열복(悅服)한다고까지 세계에 선전했습니다. 3.1운동은 우선 일본의 이러한 선전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3.1운동을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고 그것을 집약하여 한국 민족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삼았던 것입니다.

 

3.1운동은 국내의 이같은 민족운동·독립운동에 끼친 영향 못지않게 세계사에 끼친 파장도 컸습니다.

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 중심의 침략·강권적인 국제질서 재편성에 도전하였고,

우리의 3.1운동에 자극을 받은 세계의 피압박 약소국가들은 그들의 해방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어 중국에서는 이 해 북경대학생들을 중심으로 5.4운동을 일으켰는데, 이 운동을 주도한 청년들은 한국을 본받자는 구호를 외쳤으며 인도에서는 마하트마 간디를 중심으로 비폭력·무저항의 '샤타 그라하'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는 영국에 대한 독립운동이었으며, 필리핀·베트남·이집트 등지의 독립운동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3.1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단체가 기독교였습니다.

당시의 한국의 인구가 1,600만 명 정도였는데, 기독교인은 20만 명 정도 였습니다. 인구의 1.31.5%였습니다(당시 천도교는 300만명). 거기에 비해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의 운동량은, 주동 세력 면에서 2538%, 체포·투옥 면에서 1722%라 합니다. 이것도 취조시에 기독교인이라 밝히기를 꺼려했을 것을 고려하면 더 높은 수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1.31.5%의 기독교 인구가 3.1운동에서 행한 역할은 20% 이상을 차지하였던 것입니다.

 

참고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은 신석구목사는, 교역자로서 정치운동에 참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할까, 천도교는 교리상으로 보아 상용(相容)키 어려운데 그들과 합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가 하고 고민하였으나 그는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한 후 227일 새벽에야, "4천 년 전하여 내려오던 강토를 내 대에 와서 잃어버린 것이 죄인데, 찾을 기회에 찾아보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더욱 죄가 아니냐" 하는 음성을 듣고 결심하였다 합니다.

기독교 민족의식의 성격은, 정의·자유·평화에 기반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대이며, 평등·해방을 목표로 한 독립국가·민족자주 정신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는 접점에 3.1운동에 참여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민족주의 신앙'이 서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일제가 강점한 후 기독교회의 예배를 방해하고 설교에 제재를 가하는 등 종교적인 자유마저 박탈하려 하였고, 특히 금주·금연에 관한 설교나 '다윗과 골리앗'을 주제로 한 강론, 출애굽기 강론도 금지의 대상이 되었으며, 거기에다 강점한 지 얼마 안 되어 벌인 '105인 사건'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하려 한 사건이었고, 1915년에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포교법을 제정하여 기독교학교의 성경공부와 예배 등을 금지하고 선교를 방해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도 궐기치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3.1운동의 만세시위가 한창일 때, 기독교회가 작성한독립단 통고문을 뿌렸습니다.

매일 3시에 기도하고, 주일은 금식하고, 매일 성경을 읽는데, 월요일 - 10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화요일 12 (유다가 멸망한 원인에 대한 설명, 수요일 28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 받아 고통 받게 되리라는 예언), 목요일 5 (고난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도와 인내할 것을 권면), 금요일 - 59(죄지은 백성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예언), 그리고 토요일 8 (성령이 주시는 생명,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비교할 수 없다) 등이었습니다. 여기서 민족운동을 신앙고백 위에서 신앙운동과 함께 진행시킨 민족과 신앙을 일치시킴으로 지속적 운동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삼일운동 이후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과 회유, 당시 한국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선교사들의 정교분리 정책, 신사참배 등 기독교 지도자들의 변질 등으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과 인재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기독교가 애국의 종교로 여김을 받게 된 것은 삼일운동에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행한 공적과 희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출사표와 같이 하신 말씀입니다.

나의 사역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는 것이다.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삼일운동을 통하여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따른 분들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주의 은혜의 해가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은 따라 배울게 있는 사람들, 정직한 사람들, 애국애족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오늘 믿는 자들이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떠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 줄 것인가가 결정될 것입니다.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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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의 은혜의 해
  • 2017-03-03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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