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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옥합을 깨뜨리다

  • 성경말씀 : 마가복음14:1-9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7-04-02

성경 : 마가복음 14:1-9

제목 : 옥합을 깨뜨리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첫 번째 배우는 언어는 우는 것입니다.

어제도 한 아이를 제가 안자마자 울기 시작하더니 다시 지 엄마에게 주니까 금새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울기만 해도 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배우는 말은 하도 엄마 엄마 해봐 하니까 그 말을 배우는 것 같고,

생각을 담아서 사용하는 첫 번째 말은 내꺼야! 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이 말만 쓰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다음 배워야 하는 말이 우리꺼야! 일 것이고,

우리는 중요한 개념인데 우리의 경계는 희미해야 합니다. 우리의 경계가 너무 견고하면 배타주의 차별 집단 이기주의가 됩니다.

믿음을 가진 후에 배워야 할 말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일 것입니다.

 

오병이어 이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예수님의 이적이나 비유 중에 사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유일한 경우입니다.

벳새다 들녘에서 있었던 이 이적을 보면 마가복음 6장에서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먹을 것을 위하여 제자들은 군중들을 마을로 보내야 한다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며,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알아보고 와서 예수님께 대답하기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가서 어떻게 알아봤겠습니까? 아마도 큰 소리로 여러분 중에 음식이 있는 분들은 가지고 나오시오!” 하였을 터인데, 그렇게 모아진 것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던 것이고, 요한복음 6장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나온 이는 다름 아닌 한 아이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문에 파이다리온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어린 아이라는 뜻입니다.

이 아이 외에 거기에 있던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 누구도 선뜻 자신의 것을 내어 놓은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른 상황의 사람들도 아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막막합니다.

아이들이 두 살 쯤 되어 내거야!”라는 말을 배운 이래 나의 것을 남을 위해 내어 놓는 다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우당 이회영의 가문은 온 가문이 나라를 위하여 가문을 깨뜨린 유일한 가문이었다고 합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8대에 걸쳐 판서를 배출했으며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거부였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우당은 여섯 형제와 함께 독립운동을 위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전 재산을 투입해 독립군 양성기관인 '경학사''신흥강습소'(훗날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습니다.

신흥강습소에서는 10년간 3500여 명의 항일 전사를 길러냈고, 이들은 청산리·봉오동 등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우당 선생 가족은 하루 한 끼를 먹을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이 강습소의 학비와 전투에 필요한 자금을 모두 충당했습니다.

우당은 일본 관동군 사령관 무토 노부요시를 처단하기 위해 만주로 향하다 다롄(大連) 항에서 일본 경찰에 잡힌 뒤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1932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흉상이 명동 YMCA건물 앞에 있는데 대부분 그분이 누군지를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우리는 우당 가문에 큰 빚을 졌다 라고 하였는데,

당시 우당 가문에서 내어놓은 재산이 5조원 정도 였다고 합니다. 가문 60명 정도가 만주로 갔는데 광복이 되어서 돌아올 때는 20명도 못 되었고 여섯 형제 중에 이시영(1869. 12. 31953. 4. 17)선생만 돌아오셨습니다. 이시영선생은 초대임시정부 부통령을 지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본문의 상황을 보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었습니다.

그 유월절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했다면 적당한 향유 한 방울을 예수님의 머리에 떨어트리는 것이 예법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이것은 향유를 허비하는 일이라 하였고 그 중에 화를 내는 이도 있었습니다.

뜻밖에 예수님은 그 여인이 한 일을 받아드리셨습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아마 평소 같았더라면 이렇게 낭비하지 말고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첫째는 지금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지금하지 않으면 다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내 생각 내 입장으로 분별하지 마시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주님의 뜻을 바탕으로 해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그 때를 감당하셨습니다.

둘째는 어떤 일은 모든 것을 희생함을 통하여만 이루어지는 일이 있음을 교훈하시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격언 중에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다 담지 말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지혜입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결단으로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서 자기 민족을 구원해 내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오지로 혹은 위험한 사역지로 가면서 이런 저런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곳만 찾는다면 갈수가 없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사랑은 낭비를 통하지 않으면 사랑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습니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는 계산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셋째는 이틀 후에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깨뜨리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시하시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 한 방울의 보혈로 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깨뜨리심으로 그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셨고 그 공로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하니 이제 우리들도 주님 앞에서 깨뜨려야 할 것은 다 깨뜨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자존심, 교만, 탐욕, 이기적 계산, 세상적인 상식, 적당한 믿음, 자아 그런 것들이 깨지지 않으면 향유를 주께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날에는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전 재산인 옥합을 깨뜨렸던 것처럼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깨뜨리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가진 아주 귀한 것을 깨뜨려야 할 때도 올 것입니다.

내일서부터 시작되는 전교인 새벽기도도 나의 습관된 새벽을 깨뜨리지 않으면 주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그 여인처럼 그리고 주님처럼 이제 우리도 옥합을 깨뜨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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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합을 깨뜨리다
  • 2017-04-07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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