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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호산나

  • 성경말씀 : 마태복음21:1-11
  • 설교자 : 방영철
  • 설교일 : 2017-04-09

성경 : 마태복음 21:1-11

제목 : 호산나

절기상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에 무리들이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폈다고 공관복음서에는 기록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12:13에는 이 나무가 종려나무임을 그리고 그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쳤다 한 것으로 보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종려나무는 히브리어로 '타마르'라고 호칭하는데 우리나라의 대추와 비슷한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대추야자나무라고도 합니다.

열매는 귀중한 식량이 되었으며 나무의 즙은 원기를 돋우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나무줄기는 목재로도 사용하였고, 나뭇잎은 지붕을 만들거나 울타리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었으며, 깔개, 바구니, 그릇 등을 만들기도 합니다.

종려나무는 성경에서 승리와 영광과 풍성함과 찬양을 상징합니다. 부챗살처럼 곧게 뻗는 그 나무의 모양은 찬란한 빛의 형상이며 승리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들이 종려나무를 흔들었다는 것은 그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진심으로 우리 손에 무엇을 들고 흔들고 있는지를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모르인 나귀는 작고 천하고 고됨 그러나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종려나무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기 까지는 몇 가지 과정과 의미가 있었습니다.

본문 5절에 나와 있는 것 같이 스가랴9:9에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주전 500년 경에 활동했던 분인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성 입성에 관해 이와 같은 말씀을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스가랴의 예언 속에는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란 마을에 이르렀을 때에 두 제자를 맞은 편 마을로 보내시며 거기에 가면 매인 나귀와 나귀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하시며 주인이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주라고 하신 것은 처음이요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란 만물의 주인 됨을 의미하시는 표현이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져야 하는 것이 그리고 그 분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사전에 먼저 가셔서 일을 준비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계시적 사건으로 그리되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나귀의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하는 제자들의 말이 사람의 말로 들리지 않고 특별한 음성으로 들렸기 때문에 나귀와 나귀 새끼를 내어 주었을 것입니다.

손해를 본 것일까요? 어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주님께서 어떤 모양으로라도 갚아 주셨을 것입니다.

이 나귀가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것 같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로 간 인물이 구레네 시몬입니다.

로마서 16:13에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대신 진 구레네 시몬에게 주님께서 갚아주신 상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가 쓰시겠다하시는 말씀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들려오는 말씀은 아닙니다.

저에게 그 말씀이 들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이 아주 몹시 힘들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회피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이미 혹은 앞으로 그 말씀이 들려올 것입니다.

주님의 뜻하심에 합당한 대답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삶을 온 세상을 구원하는데 있어 대속 제물로 쓰시겠다 하셨을 때에 그 대답을 하시느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신 대답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하심이었습니다.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였습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구원하여 주소서의 뜻인데 이 말이 아람어로 쓰여지기는 만세!’의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는 주로 아람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무리들이 만세의 뜻으로 외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구원하여 주소서의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종려 가지를 흔들며 왕이여 만세의 의미로 외친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 후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게 됩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이적과 능력을 행함으로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야 백마를 탄 메시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원함이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필요 없는 일도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 저들가운데 이루시고자 했던 것은 이루셔야 했던 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왕관 대신에 가시관을 쓰셔야 했고 금홀 대신에 갈대를 잡으셔야 했고 왕좌 대신에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나귀 그것도 나귀의 새끼를 타고 십자가가 있는 골고다의 언덕을 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지나고 계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나는 지금 너희들이 바라고 있는 그 메시야가 아니라고 굳이 나귀의 새끼를 타시고 가시건만 종려나무를 꺽어 길에다 펴고 손으로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고 있는 무리들을 보시며 주님께서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갖으셨을까요?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요?

 

만세로서의 호산나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소서의 호산나를 간절히 외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호산나를 부르며 고난주간 한 주간을 지내시고 부활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설교자
  • 1
  •  호산나
  • 2017-04-14
  • 방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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