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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성경말씀 : 사도행전 1:8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05-23

 

 

 

 

2021년 5월 23일 주일낮 예배

성경 : 사도행전1:8

제목 :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하속들에게 체포당하시고 심문과 재판을 받으신 곳은 그 해의 대제사장이던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의 집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지만 그래도 베드로와 요한은 이곳까지 오기는 하였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기온이 내려가 모닥불을 피웠는데 베드로도 그 불을 쬐려고 그리로 갔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그냥 어둠 속에서 예수님의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소위 베드로의 망신은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한국교회에 전해오는 3대마귀가 있습니다. 첫째가 잠마귀고 둘째가 섭섭마귀고 셋째가 내가마귀입니다. 잠마귀는 예배만 시작되면 눈을 감게 만듭니다. 왜 그러나 하면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잠마귀의 속성은 자신을 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당의 냉난방도 나한테 맞추어져야 하고 방송 소리도 자신에게 맞추어져야 하고 앉는 자리도 자신에게 편한 곳에만 앉으려 합니다.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있는데 새신자가 와서 그만 그 자리에 앉은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자리에 앉아도 될 터인데 여기 내 자린데요 했답니다. 그 다음부터 이 새신자분이 어느 자리에 앉아도 좌불안석입니다. 또 누가 와서 여기 내자린데요 할까봐입니다. 섭섭마귀는 교회에 오면 모든 일이 다 섭섭하게 여겨지는 것이고, 내가 마귀는 내가 했지, 내가 누군데 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니 내가 편한 것으로 좋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불편한 것으로 좋아하는 이가 그리스도인이라 할 것입니다. 내가 불편함으로 누군가가 더 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나약함은 마귀 역사의 빌미가 됩니다. 

그 모닥불을 쬐고 있는데 그 집 하인 여자아이가 베드로의 얼굴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추궁에 베드로는 세 번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단순한 부정이었고, 두 번째는 맹세하면서 모른다는 부정이었고, 세 번째는 저주하면서 모른다는 부정이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에게는 그 상황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낼 힘이 없었습니다.

그 후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죽으셨을 때 저들은 절망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장 먼저 예감했던 이는 가룟 유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절망과 두려움으로 피하여 숨어 있던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40일 동안 그리하셨습니다.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모여서 기도한 이들이 일백 이십여 명이었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기에 이 숫자는 많은 이들로 보이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적은 무리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하셨는데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서도 그 말씀에 순종한 이들은 불과 120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던 중에 열흘쯤 지나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혀같이 갈라지는 불의 모습으로 각 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오신 후에야 베드로는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때의 제사장들을 공회에서 두 번 더 만나게 됩니다.

이제는 자신이 직접 재판을 받는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이때부터 베드로 안에 있던 복음이 땅끝을 향하여 나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담대하게 된 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심입니다.

권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인데 이에서 다아나마이트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권능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 힘입니다.

올해 우리는 2021년 오순절성령강림10일기도회를 하면서 열 가지 공동기도문을 작성하여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저희들의 기도제목들입니다. 이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저희들에도 성령의 권능을 내리어 주옵소서 하며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1. 통회하고 자복하는 회개의 영을 내려 주소서!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회개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범죄한 후에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서도 회개를 못했습니다. 가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다윗의 죄는 가인보다 더한 것이었는데 회개하지 못하고 있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어 말씀하시니 삼하12:13에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며 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회개할 수 있는 권능이 임하시길 원합니다.

2. 성령의 권능을 내려 주소서!

성령의 권능은 성령의 은사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과 믿음과 신유와 예언과 능력과 영분별함과 방언과 통역과 사랑의 은사들입니다. 이 은사들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는 삶은 당장은 불편한 삶입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편리하지만 그것을 줄일 수 있는데 까지 줄이면서 살려고 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됩니다. 이 일을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4. 마음을 같이 하는 교회되게 하소서!

초대교회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있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원망도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선과 악으로 나누어지지는 않지만 마치 선과 악의 싸움처럼 싸우기도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악한 영에 대한 것인데 사람을 대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3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겠습니다.   

5. 말씀과 믿음과 순종이 가까이 있게 하옵소서!

말씀을 아는 것 아는 말씀을 믿는 것 믿는 말씀을 행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과 행함에 있어 성령의 역사가 없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표현도 가능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며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며 행하는 것이 행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5:32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 하셨습니다.

6. 거짓과 이간질과 두려움을 이기게 하소서!

사단 마귀가 사용하는 방법은 늘 동일하였습니다. 거짓을 퍼트리고 주의 몸된 교회를 이간질하고 두려움으로 욱여싸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성령의 검의 권능으로 승리케 하십니다.  

7. 코로나19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내려 주소서!

코로나19를 감당함이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방역지침을 힘써 준수함이요 감염확진 등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돕는 일입니다. 코로나 초기에 확진자들을 죄인 취급하며 소외시키며 기피하며 살았던 것은 두려움으로 인해 잘못한 일이었습니다. 관련 공무원들과 의료진들을 알아주고 합력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역병을 통하여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 하는 것은 소원이기는 하나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인의 재앙이 지나가면 일곱 나팔의 재앙이 이어졌고 또 일곱 대접의 재앙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주님이 오시니 그 때까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8. 영육간에 곤고한 환우들을 강건케 하옵소서!

영육간에 곤고한 환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코로나 상황은 여러 면에서 고통을 가중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도 문병을 가기도 집으로 가서 손을 잡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기도 힘든 때라 더 외롭고 소외감을 갖게 되는 때입니다. 더욱 간절하게 환우들을 위해 중보를 드렸습니다. 

9.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되게 하소서!

그 어느 때보다 믿는 자가 그리고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임으로 소금이 되며 빛은 자신을 태움으로 빛이 됩니다. 자신을 녹이고 자신을 태운다는 것은 아주 어렵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 권능을 받아 자신을 녹임으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세상에 맛을 내게 하는 이들이 있고 자신을 태움으로 어둠을 물리치며 세상에 빛을 발한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도 그 한 사람 그 한 교회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10. 미얀마를 비롯한 열방가운데 주의 영이 함께 하옵소서!

미얀마를 위한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 중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십 몇 층 되는 건물이 영화에서 컴퓨터로 영상처리 한 것처럼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어린 여자 아이가 폭격의 잔해 속에서 구출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나 참혹한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수 천년동안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하는 저들이 그것도 불과 얼마 전에까지 2천 5백여 년 동안 고난을 당하고 살아온 이들이 힘이 생겼다고 자신들에게 실제적인 위협도 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저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성령강림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놀라워하고 한편으로 조롱하던 자들에게 이 일은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오늘도 이루시는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셨으니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이들에게는 이미 성령님이 임재하신 것입니다.

그러하니 오늘 본문을 통해 약속하신 성령이 이미 임하셨고 그로 말미암는 권능이 우리에게 이미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들에게 대해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순종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 순종 가운데서 성령님의 임재 하심과 권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스가랴 4:6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열심이 이 모든 일들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또한 기도자인 우리들도 기도자의 책임과 신실함으로 이 일들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제로 영원토록 주님 오실 때까지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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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가 권능을 받고
  • 2021-05-25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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