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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누구든지

  • 성경말씀 : 마태복음 12:46-50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05-30

 

2021년 5월 30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마태복음12:46-50

제목 : 누구든지

 

오늘은 가정주일입니다. 오월 한 달 가정의 달로 지내오게 하셨는데 우리들의 가정이 주님 보시기에 어떠한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이 큰 범주에서 둘 있습니다. 첫째는 자연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연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도 자연에 묻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집 자연을 너무도 오염시키며 살고 있습니다. 잘 가꾸어야 하고 청소도 하고 후대를 위한 보전도 하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는 마치 우리만 살고 말것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십대소녀 그레타 툰베리 등 아이들이 기성세대를 향해서 절규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는 가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도 심각한 위기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진은 가정이 파괴된 이라크 아이입니다. 2014년 이라크 한 고아원에서 찍은 사진이라 합니다. 저는 저 사진이 누군가의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나타낸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 사진이 정말 저 안에 있는 아이가 자기 어머니의 품속에 있고 싶어서 그린 그림이라면 가슴이 무너져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사진에 댓글에 보니 누군가가 ‘나도 저 마음 안다’ 였습니다.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하여 어린이 주일에는 누가복음18:15-17의 말씀을 통하여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6:4의 말씀대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하겠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이 성경에서는 자식들에 대한 편애에서 나타났고, 한편으론 자식들에 대한 부모의 욕심에서 나타났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들이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미국에서 4명의 성직자가 여러 번역 성경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 서로 토의하고 었습니다. 한 사람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어 문체로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흠정역(KJV)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미국표준역 성경(ASV)을 좋아하였는데 성경이 보다 문자적이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뜻에 가깝게 번역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현대역 성경을 좋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근의 새로운 단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네 번째 목사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에게 의견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번역한 것을 좋아합니다. 어머니는 성경 말씀을 실제 생활로 옮겨 번역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성경 번역 중 가장 믿을 만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버이 주일에는 에베소서6:1-4의 말씀을 통하여 자녀들이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해야 할 것을 말씀하심을 들었습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에이스아쿠오인데 이는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며, 공경한다는 것은 티마인데 이는 값을 치르는 일입니다.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셨습니다.

십계명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삶에서 가장 우선하고 중요한 일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종(晩鐘)'은 프랑스 밀레(1814-1875)의 1859년 그림입니다. 원 제목은 안젤루스 도미네로 시작하는  삼종(三鐘)기도인데 만종(저녁 종소리)의 제목으로 알려진 그림입니다. 

밀레 이전까지 그림의 대상은 주로 성화나 역사 신화 등을 과장해서 그리던 것이었는데 밀레가 일상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 일대 전환을 이룬 작품이라 합니다.

밀레가 이 작품을 그릴 때 프랑스는 유행성 질병 콜레라와 경제 침체 등으로 어려웠을 때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밭에서 감자를 캐다가 삼종기도 시간이 되어 기도를 드리고 있는 부부를 그린 그림입니다.

실제로 밀레의 할머니는 밀레가 어린 시절 밭에서 일할 때 삼종기도 종소리가 울리면 기도의 모범을 보이며 밀레에게도 기도할 것을 가르쳤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이 높이 평가 받는 것은 미술적인 기법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 안에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노동의 소중함이 들어 있습니다. 

부부가 만종이 들려올 때까지 밭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잠언20:4에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 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하셨고, 잠언24:30-32에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가정도도 전통적인 역할 분담이던 새로운 관점에서던 각자가 맡은 일들을 힘써 감당하고 또 서로 합력하는 것이 복된 일입니다.

 

둘째는 서로 바라봄이 들어 있습니다. 

그림 속의 부부가 마주보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정답고 사랑스럽습니다. 가정은 가장 가까이서 서로를 마주볼 수 있는 곳이고 그러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한데 집에 들어오면 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고 식사 시간도 달라 함께 밥을 먹는 경우도 적고, 거실에 함께 있어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니 서로를 바라봄이 없습니다. 

아가서1:15에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하였는데 이는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봄입니다.

신명기32:10에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눈동자 안에 우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부부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멀리서 종소리가 울려오니까 일손을 잠시 놓고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성공을 거두었다 하여도 그 가정이 믿음의 반석위에 지어져 있지 않으면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마7:24-27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하셨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환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으며 또한 주님이 주신 축복을 간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하였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입니다. 그 때까지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3:21에는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말을 전하는 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하시며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0:34-37에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하셨습니다.

상당히 매정한 말씀으로 들리고 육신의 가정을 부인하는 듯한 말씀으로 들리지만 그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마지막 남기신 말씀 중에 요한복음19:26에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셨고 27절에서는 사도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심으로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하신 말씀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야고보도 유다서의 유다도 주님의 형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신 것은 그 모두를 끝내 하나님의 가정 안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과정이었고 계시적 사건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믿음의 가정입니다.

저는 이 믿음의 가정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가정은 

첫째 혈연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가정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심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심입니다. 인종과 지역과 신분과 소유와 지위와 관계 등등을 넘어 누구든지가 가능한 가정입니다.

고정적인 혈연관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이 가족이 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명의 가정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니라 하심입니다.

로마서16:3-4에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하신 말씀이 있는데 장막 만드는 일을 했던 이들은 서로 합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섬긴 귀한 가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가정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칭찬받는 가정입니다.

야고보서의 야고보도 유다서의 유다도 주님의 형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들은 인정받고 칭찬받는 이들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본문처럼 말씀하신 것은 그 모두를 끝내 하나님의 가정 안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과정이었고 계시적 사건이었습니다.  

사도행전10:1-2에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신 말씀이 있는데, 주변인들이 그를 향하여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였다(행10:22)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널리 증거하는 칭찬받는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의 가정이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가정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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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든지
  • 2021-06-01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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