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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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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마태복음16:13-17

제목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을 하시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요단강의 수원이 가까이 있던 가이샤라 빌립보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헤르몬산의 서남기슭으로 구약시대의 바알갓(수 11:17)이며, 헤롯 빌립 2세에 의해, 제 1세기의 초에 시역(市域)의 건설 확장이 행해지고, 당시의 로마 황제 가이사 티베리우스(디베료)의 명에 의해 가이사랴라 이름지어진 곳입니다.

그곳은 이교의 신전이 있었고 로마 황제의 동상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고 이어서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 물으심은 나는 여기에 있는 이 신전의 잡신들과 같지 아니하다는 말씀입니다.

귀신 숭배는 귀신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어떤 귀신이든간에 나에게 무엇을 주느냐 줄 수 있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거기에는 도덕과 윤리가 없고 무조건적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것입니다.

어느집에 애가 아프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합니다.

굿이라고 하는 것은 귀신을 달래는 행위입니다.

제물을 바치고 굿을 하면 무조건적으로 병이 나아야 합니다.

그런데 귀신을 달래도 듣지 않으면 다시 굿을 하는데 이번에는 더 센 귀신을 불어들이는 굿입니다. 더 센 귀신을 불러들여 현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귀신을 내어 쫒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신 숭배의 속성입니다.

무조건 비인격 비윤리적 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그렇게 믿고 섬겨서는 않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또 하시는 말씀은 나는 저 황제와도 같은 자가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속에도 예수님을 로마 황제와 같은 힘있는 자로 여기고 기대하고 있었던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들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을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오시자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무력하게 체포당하고 재판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자 기대가 실망으로 원망으로 돌변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와 비할데 없는 힘과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지만 그 힘과 권위를 로마 황제와 같이 섬김을 받는데 쓰는자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데 그 힘과 그 권위를 사용하는 자이셨습니다.

그 말씀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은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로다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마음에 합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인간 베드로의 대답이 아니요 하나님의 드러내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이라는 것은 나의 주인이시라는 부름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임종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속자인 아들은 먼곳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죽으면서 모든 재산을 자신의 하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봉한 상자에 아들을 위한 유언을 남겨 놓았습니다.

아들이 오랜후에 돌아와서 보니 아버지는 죽었고 재산은 모두 하인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라 하면서 상자를 하나 줄 뿐이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지금 재산을 차지하고 있는 하인을 유산으로 준다는 유언이 들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뜻을 몰라 당황했는데 곰곰이 아버지의 뜻을 살펴보니 하인이 재산을 관리하고 있지만 그 하인의 주인이 자신이니 모든 재산이 자신의 것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왜 나의 주님이신가하면

하나님이 창조주시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나의 주님이십니다.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애굽에 있는 모든 생명의 장자가 죽임을 당할때에 양의 피를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른 집의 장자들은 죽음의 사자가 유월하였는데 그 이후로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있던 우리들을 예수님의 핏값으로 대속하심으로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일만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의 비유를 주님께서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았으니 내가 무엇을 가졌다 하면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주님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 인간이 동물과 이점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동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세 가지를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첫째는 먹는 것이요 둘째는 외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요 셋째는 새끼를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동물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서 동물과 다른 것은 잉여물이 있다는 것, 남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은 이 남는 물질과 시간과 생각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을 내것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주님의 것이라 고백하며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삶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인데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직위에 세움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은 온 인류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은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중보하실 오직 한분으로서의 우리의 제사장이심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다르지만 같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은 아니시지만 하나님과 같은 분입니다.

동일본질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주님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다고 하는 것은 이 계시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고백되어지는 일입니다.

그러한 고백이 날로 새로워지시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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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200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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