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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1부 예배

 

십자가를 지워

  • 성경말씀 : 누가복음 23:26
  • 설교자 : 방영철 담임목사
  • 설교일 : 2021-03-14

 

 

2021년 3월 14일 주일낮 예배

성경 : 눅가복음23:26

제목 : 십자가를 지워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은 몹시 지치셨습니다.

한 주간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머무셨는데 그곳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시장하셔서 무화과 열매를 찾으셨다는 기록을 보아도 그러합니다.  

육신으로 지치는 것보다 마음으로 지치는 것이 더욱 심각한데, 이때부터 자신이 지셔야 할 십자가가 더욱 분명해 지기 시작하였고,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에 다른 의미로 호산나를 외치고 있던 군중들을 보시면서도 그리하셨을 것입니다.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서 제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우리 중에 누가 크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주님의 마음이 지치셨을 것입니다. 목요일 유월절 만찬 중에 여전히 주님을 팔 것을 마음에 품고 있는 가룟 유다를 보시면서도 지치셨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시도 깨어있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제자들을 보고서도 지치셨을 것입니다. 체포당하셨을 때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바쁜 제자들을 보시면서도 지치셨을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신성모독죄와 성전모독죄로 사형 판결을 받으시고 이어진 빌라도의 법정에서 반역죄로 십자형을 받으시고 납과 동물의 뼈가 매달린 채찍에 맞으심으로 기력이 다하셨을 것입니다.

당시 죄수들은 자신이 처형될 십자가를 끌고 형장에 까지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처형 장소인 골고다 언덕까지는 약 1.5km 정도 되는 길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길이 남아 있는데 그 길을 이름하여 비아돌로로사 즉 통곡의 길이라 부릅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와 체포와 재판과 채찍에 맞으심으로 지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하시고 계속 넘어지시자 십자가형을 집행하던 군병들이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올라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시몬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시므온의 헬라식 표현으로 베드로의 히브리 이름도 시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구레네 시몬이라 부른 것은 그가 구레네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구레네는 지금의 아프리카 리비아의 지중해 쪽에 있는 해안도시로 오래전부터 이곳에도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여 살 던 곳입니다.

사도행전2:10에 오순절 사건이후 사도들의 선포를 들은 사람들 중에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이 있고, 사도행전6:9에는 구레네에서 살다가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이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고, 사도행전11:20에는 구레네 몇 사람이 복음을 듣고는 수리아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헬라인에게도 처음으로 말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사도행전13:1에는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 중에 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가복음15:21에는 구레네 시몬에게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아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의 이름이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헬라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도 그가 구레네에서 살다 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이 시골에서 예루살렘에 온 것은 아마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였을 것이고 그러던 중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자마자 자기 길을 가버렸다면 그가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아마도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듯이 보입니다. 그러하니 마치 자석에 끌리듯이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로마 군병이 계속 쓰러지시는 예수님 대신에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은 우연이란 말도 쓰고 운명이란 말도 쓰지만 믿음 안에서는 예정이요 필연입니다.

분명 이 일이 자원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마태도 마가도 누가도 로마 군병이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억지로 지웠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서가 구레네 시몬을 기록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렇지만 추정해 보면 구레네 시몬은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갔을 것이고,

그 길은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었으며 골고다에서 그 십자가를 다시 주님께 넘겨 드렸을 것입니다. 또 가정입니다만 십자가를 넘겨 받으시는 주님께서 구레네 시몬에게 고맙다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냥 그 십자가를 받으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 시간동안 진행된 주님의 십자가형 기간에 아마도 그는 가까이에서 주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온 그를 로마 병사들도 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가상칠언의 말씀도 사도 요한과 함께 들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과 관련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은 로마서 16:13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고 사도 바울이 문안한 부분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졌을 때가 주후 33년경이었고 바울이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기록한 때가 주후 58년경입니다. 십자가 사건이 있고나서 25년 후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기 전에 그의 마음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다른 유대인들처럼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유대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고 억지로지만 그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고

주님의 십자가형을 보게 되었고 그 과정 어느 순간에 혹은 그 후에 믿음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의 이름과 큰 아들이었을 알렉산더의 이름이 있었는데 로마서의 문안 인사에서는 그 둘의 이름은 없고 부인과 둘째 아들 루포의 이름만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순교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구레네 시몬의 믿음은 그의 가족들에게 전달되어 로마에 있는 믿는 자들이 그의 부인과 루포의 이름을 널리 알고 있을 정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구레네 시몬의 부인을 자기 어머니라고까지 하였는데 이는 믿음 안에서 그러하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이 계시적 사건은 믿음의 길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가가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의 죄 값을 치르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형이 옳았느냐 혹은 합당하냐 와는 다르게 십자가는 죄의 댓가를 치르게 하는 형틀이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하스몬왕조의 얀나이우스가 당시에 반역자라고 여겼던 유대인 800명을 십자가형에 처한 것이 그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서 함께 처형되었던 두 강도의 십자가가 그러합니다.

한 강도는 누가복음23:41에서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우리에게 부여된 징계의 의미로서 십자가가 있다면 부인하지 말고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이 참으로 고통스럽고 곤혹스럽기는 할 것이나 그 과정을 통하여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둘째는 강제로 지게 되는 십자가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진 십자가입니다. 원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 십자가가 자기에 다가옴을 보고 피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지게 되는 십자가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자에게 베푼 일이 억지로 지게 된 십자가에 가까울 것입니다. 상황이 주는 강제로 인하여 지게 되는 십자가입니다.

 

셋째는 대속적으로 지는 십자가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아무나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어야 질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유일하게 세상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있으셨기 때문에 지실 수 있는 십자가였습니다.

타자의 구원을 위하여 피할 수 없을 때 자격이 있는자가 기꺼이 지는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도 저 겟세마네 기도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셔야 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신 후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지신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지신 십자가로 인하여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눅9:23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첫째 죄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로 이기는 일입니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갈라디아서 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둘째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셋째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에베소서 2: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골로새서 1: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넷째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일입니다.

빌립보서 2: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3: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히브리서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다섯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비움입니다.

요한복음19:34에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비우셨습니다.

십자가는 자신을 비울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자신으로 가득채우며 살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무엇을 주려 하셔도 받을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자기 비움이 이루어질 때 그곳에 주님으로 채워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 드립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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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가를 지워
  • 2021-03-16
  • 방영철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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